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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7
    2. 고립
    포카혼타스

2. 고립

당신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벽에 부딪혀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경악했어요.

이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얻기 위해 조언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는게

단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서로 끊임없이 의식하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하는 불편 뿐 아니라

관계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상대방이 아니면 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더군요.

특히 이번처럼 상대방은 별 불편을 못느끼고 있는 상황에서는

고민의 생성부터 해결까지, 온전히 나만의 몫이 되는거죠.

 

내가 '비밀' 이 주는 특유의 스릴을 즐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처음에 당신이 이걸 비밀로 하고 싶어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당신의 그 의도가 마음에 들진 않아요.

당신은 이게 알려지면 이러저러한 놀림과 핀잔을 들을 것이 너무 싫고,

사람들이 당신과 나를 '당신-나'로 묶어서 생각하게 되고,

각자에게 이성인 사람들이 우리들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두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댔죠.

나는 (어려서 그런지) 이런 작은 것에도 내 존재와 행동이 모순되는 걸 못견뎌하는 편이라 당신한테 'Deal with it!' 해버리고 싶었지만, 당신이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었어요.

이해가 된 건 아니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뭔가가 있다면 그건 내가 양보해야 하는 부분일테니까요.

그런데 막상 실전에 돌입했을 땐 오히려 내가 더 훌륭한 연기자였어요. -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그렇게 열연을 하다보니, 정말 아무도 눈치 못채네요.

 

그래서 지금은 좀 후회돼요. 조금 덜 열심히 연기할 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쳐다보고 싶을 때 쳐다보고, 괜히 옆에 가서 서있기도 하고, 잠깐 같이 편의점 가자고 하고, 당신이 화들짝 놀라건 말건 (다른 땐 당신이 먼저 하듯이) 덥석 손을 잡기도 하고, (다른 땐 당신이 먼저 달라고 하는) 가방을 들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짝사랑처럼 보이면 안되니까 '어제 밤에 전화했었죠? 미안 자고있었어요.' 도 확 질러주고.

아니, 난 원래 훌륭한 연기자니까 내가 이런 짓을 한다면 그건

'허술한 연기자'를 연기하는 셈이네요.

(이런식으로 당신을 물먹이는 상상을 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군요. 그렇지만 이정도의 복수심은 애교로 봐주시길.)

 

그랬더라면 나도 힘들었을 때 하소연 할 사람이 있었을텐데.

그 하소연이란게 '션섕님, 쟤가 나한테 모래 뿌렸쩌요!' 수준과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예전에 수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연애상담처럼, 모두가 그보다 더 절실할 수 없고,

들어주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Therapy이고,

나머지는 결국 그 둘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만 하는 그런 고민들을.

 

'결국 이렇게 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바로 이것이 이 관계를 알리지 말아야 했던 하나의 이유' 라고 할 수도 있겠죠. 불편해진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동안 해 왔듯이 계속 '아무 일 없었던 관계'를 연기해야한다는 거예요. 나야 좋은 배우니까 이것 또한 잘 해낼거지만, 참 괴로운 연극이 되겠죠. 그래서 난 '바로 지금의 상황이 이 관계를 숨기지 말았어야 할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곧 만나게 될텐데, 그 때 내 연기가 능청스럽다고 날 미워하지 말아요.

그동안의 것은 당신을 위해서 한 연기였으니까요.

 

 

 

다음번에는 고립되지 않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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