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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살인적이다- Die Armee ist tödlich

 

군대는 살인적이다- Die Armee ist tödlich

 

 
Thanks to 글 쓴 페터 빅셀

Thanks to 옮긴 백인옥

Sorry to 저작권

 

 

 "젊은 시절 어느 날 군복무 소집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양심상의 이유로 거부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전쟁에 나가는 게 아니라 이 년 동안 몇 가지 간단한 군사훈련만 받으면 된다고, 군사교육은 신체를 단련시키고 품성을 계발시켜줄 거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기능이 기관을 발달시킵니다. 소집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년간 간단한 군사훈련을 마치고 나면 제가 사람을 죽이고, 노파를 찔러 죽이고, 소녀를 겁탈하고,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교회를 약탈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이 글을 쓴 사람-[밤에 쓴 일기]의 엔니오 플라야노(Ennio Flaiano)-도 실제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닙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 원정에 하사관으로 참전했으며, 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책 중 하나인 [살해의 시간 Tempo di uccidere]이라는 소설에서 그 원정에 대해 썼습니다.

 

 앞서 [일기]에서 인용한 부분은 훨씬 뒤에 씌어진 것입니다. 허구로, 이상향으로, 상상으로 말입니다.

 

 갈 수도, 가야 할 필요도, 가야 할 의무도 없다는 것, 그것을 저는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병영에 징집되었던 그때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군대 시절 하면 할말 많겠지요. 뻔뻔스런 가학성 변태 상사 이야기(그 앞에서는 누구도 우리를 보호해줄 수 없었죠), 착한 동료들 이야기, 친절한 소위 이야기. 이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 기억합니다. 저녁에 전차를 놓치거나 술집에서 계산이 좀 잘못되었을 때 우리가 얼마나 목숨을 걸고 뛰었는지를.

 

 한번은 제 옆침대를 쓰는 동료가 제 시간에 귀대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일 분 늦었던 거죠-밤중에 그가 지붕창으로 기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달려 올라갔지요. 그의 발을 잡았습니다. 그는 뛰쳐나가 뛰어내리려고 했습니다. 도와달라고 소리쳤어요. 어느새 저도 지붕 위에 있었습니다. 전 그의 발을 잡고 다른 동료들은 제 발을 잡고, 우린 그를 구해냈습니다. 그는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우린 더이상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겁이 났던 겁니다.

 

 단지 일 분 늦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목숨을 내던질 만한 이유였습니다.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규율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군대는 평화시에도 살인적입니다.

 

 군대는 미적이기도 합니다. 금속으로 된 까만 군대식 라이터. 저에게는 오디오가 하나 있는데, 이것도 군대식 검은색입니다. 군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모두 소름이 끼치는데 군대식 미적 감각만큼은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전 람슈타인에 가지 않았습니다. 에어쇼 사고가 났던 곳 말입니다. 그런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거기에 간 사람들도 전쟁과 죽음을 보러 간 게 아니라 단지 군대가 지닌 미적 감각, 비행의 멋을 즐기러 간 것이었지요. 어쨌든 비행기는 정말 근사합니다.

 

 비행기가 추락한 건 인간의 실수였다고 합니다. 아주 멋진 비행기들을 아주 멋지게 시범 보이던 아주 멋진 어느 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거죠. 그러나 살인을 위해 만들어진 비행기가 살인을 한다면 그건 결코 실수가 아닙니다. 때때로 비행기 자체가 살인을 합니다. 인간의 명령이나 규정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요. 

 

 군대는 살인적입니다.

 

 다른 나라에도 군대가 있고, 살인도 하지요. 우리가 죽일 태세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그들이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즉 다른 나라들은 중립이 아니고, 인도적이지 않고, 자유주의적이지 않으며, 민병대가 아니고 민주적 군대도 아닙니다. 제가 여기 이 병사에서 군대생활을 한 지 몇 년 후에 프라하에서 군인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체코군 아니면 러시아군인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가 여기 바젤에서 하는 훈련과 너무나 똑같았습니다. 장교가 똑같이 소리를 질렀고 군화도 똑같이 저벅거렸습니다. 이 행렬에서 저는 몇몇 동료들을 알아보았습니다. 뒤에서 두번째 줄, 왼쪽 가운데. 나처럼 언제나 반 발짝 늦는 어설픈 친구.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점점 더 불안도 더해가서 더욱 서툴러지더군요.

 

 어쩌면 가서 말해줄 수도 있었겠지요.

 

 "내가 한번 해보지, 이거 스위스에서 배웠다네. 잘할 수도 있고 자네처럼 못할 수도 있겠지."

 

 난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며 러시아어나 체코어를 한마디도 몰라도 명령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다만 다른 나라에 군대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다만 다른 나라 군대들이 위험하기 때문에 있어야 하는 군대는 왜 있는 겁니까? 군대는 어째서 모두 똑같습니까? 모두 평화를 위해서, 모두 국방을 위해서? 모두 훈련을, 그것도 똑같은 훈련을 받기 위해서?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스위스 국민이요 스위스 군인인 제가 어째서 우리나라 군대에 대해 러시아 비밀 정보기관보다 더 알면 안 됩니까. 또한 어째서 러시아 군인은 자기 군대에 대해 미국 비밀 정보기관보다 더 많이 알아서는 안 됩니까?

 

 비밀 유지라는 건 언제나 자기 나라 국민들에 대한 비밀 유지인가 봅니다.

 

 자기 나라 국민이 군대를 위협한다, 자국민만큼 위험한 게 없다는 거군요. 
 

 혹 반대로 뒤집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자리에서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차라리 지금 독감이라도 앓고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군복무만큼 기꺼이 이 모임을 회피했을 겁니다. 유감슬럽게도 전 군복무를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도 마찬가지군요.

 

 하지만 두렵고 불안한 게 사실입니다.

 

 저는 군대를 생각할 때마다 늘 불안했습니다. 밤이면 종종 군대 꿈을 꿉니다. 칼에 묻은 조그만 녹 얼룩이나 작은 실수에 관한 자질구레한 꿈들이지요. 그런데 바로 이 작은 실수가 한 사람을 감옥으로 보낼 수도 있고 병영 지붕 위로 내몰 수도 있는 것입니다.....

(손목이 아파져서... 내일 마저 치겠다. -베껴치던 포카)
... 이 글을 씀으로써 다시금 편하게 잠들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또다시 일 분 늦게 귀대하는 꿈을 꾸고 땀에 흠뻑 젖어 깨어날 것입니다.
 
 이 일을 떨쳐버리고 싶습니다. 군대 폐지 발기운동에 서명하지 않은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거기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는 게 싫었고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그 운동은 발족되었고, 제가 어느 쪽에 표를 던질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군대는 내 친구 프란츠의 목숨까지 끊게 했으니까요. 그는 결코 저처럼 소심한 성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장교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그래서 그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기왕 군대 얘기가 나왔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죠. 알프스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병들은 걸어서, 장교들은 지프차를 타고 산을 올랐죠. 밤 열한시에 다시 계곡으로 돌아왔을 때, 대위가 말했습니다.
 
 " 보병 사격수 아스트 군, 깜빡 잊고 모자를 저 위에 두고 왔네. 아직 거기 있는지 가보고 오게."
 
 프란츠는 산을 오르는 데 네 시간, 내려오는 데 두 시간 걸려 아침 점호 시간에야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대위에게 가서 보고했지요. 
 
 "보병 아스트, 명령 수행하고 돌아왔습니다. 모자는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완전 멋진 프란츠 아스트씨 ㅠ.ㅠ- 소름돋은 포카)
 
 그 대가로 그는 당연하게도 감방에 갔고 그로 인해 유명해졌습니다. 이 일화는 종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프란츠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침통한 이야기지요- 우리의 민주줒의 국가 스위스에는 이런 일을 저지르는 대위를 막을 만한 법이 전혀 없으니까요.
 
 일 년 뒤 프란츠는 다시 징집되었습니다. 그는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군장을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두 갖춰서 짐을 꾸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제시간에 일어나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는데 군화끈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갑자기 화가 난 그는 군화를 구석에 던져버리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데리러 오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지요. 저도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용기있는 이야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그렇게 용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환장이 오기까지는 몇 주가 걸렸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직 그가 살아있었어요. 소환장이 오자 그는 목을 맸습니다. 이제 그는 산 사람이 아닙니다. 군대는 살인적입니다.
 
 대위는 아직 살아 있을 겁니다. 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쨌거나 생각해봐야 할 것은 누군가 스위스에서 군대를 없애면 이 대위한테서도 군대를 빼앗는 셈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 군대 동료 르네한테서만큼은 군대를 뺏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군인병원에서 위생병으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지요. 그는 이야기를 잘 하는 재간이 있어서 자기 집 대가족이나 공장 콘베이어 벨트에서 하는 일 등에 대해 곧잘 이야기했습니다. 벌써 삼십년째라더군요. 그는 제 손으로는 궤짝 하나 못 나르게 했습니다. 혼자서 청소하고 정리하고, 뭐든지 다했습니다. 그리곤 "이봐, 난 이런 일이 좋아, 어쨌든 콘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자네한테야 분명 좀 다를 테지." 그가 한 말입니다.
 
 군대에서 하는 일이 평소 집에서 하는 일보다도 소외감을 덜 준다니. 그런 세상이 있다니요.
 
 안 되지요. 르네에게서 군대를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르네도 몰래 군대를 반대하는 쪽에 표를 던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그에게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의 회사 사장도 여기서 하사로, 고작 하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가 대령이었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병과 하사는 서로 너나없이 반말을 합니다. 그거 참 멋진 일 아닙니까. 사장과 노동자가 말입니다. 르네는 삼 주 동안 서로 피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논쟁거리가 못 됩니다. 결코 아닙니다. 아니고말고요.
 
 이젠 르네를 만나지 못하지만 전 알고 있스빈다. 르네는 군대에 찬성표를 던질 겁니다.
 
 논쟁거리는 바로 이런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를 찬성할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논쟁거리가 될 것입니다.
 
 르네는 내가 때때로 상상하는,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그래서 그대로 믿고 싶은 그런 국가를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에게 국가란 세금고지서를 보내고, 주차금지 표시를 세우며, 그것을 무시했을 때는 당연하게도 벌금을 물리는 그런 것입니다. 그네한테 국가란 봄 여름 가을 겨울과도 같습니다. 그냥 돌아가는 것이지요. 국가가 고지서를 보내면 내야 됩니다. 심지어 투표도 해야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말입니다.
 
 르네는 국가란 민주적이고 자유로우며 훌륭한 거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그 국가를 잘 모릅니다. 군대만큼 그가 국가와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맺어본 곳은 없습니다.
 
 그가 상상하는 국가는 군대와 같습니다. 즉 하나의 '의무'인 것입니다. 그는 군대가 없어지면 국가도 없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꼭 필요하다는 거죠. 구가가 사라진다면 누구나 제멋대로 주차하게 될 테니까요.
 
 이것이 바로 불행입니다. 르네는 자신이 민주주의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민주주의자가 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어디에서도 군대에서만큼 국가가 가깝게 느껴진 곳이 없고, 어디에서도 군대에서만큼 공포를 자아내지 않았으며, 국가가 어디에서도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이처럼 군대는 자기가 수호하고자 하는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위협합니다.
 
 군대에서 민주국가는 절대주의적, 즉 봉건주의적 외형을 지닙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군대는 사회주의를 상대화시킬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모든 것을 말하기란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에 기장 장군과 악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1940년 루체른에서였죠. 저는 아주 오래된, 담배연기 자욱한 술집을 좋아합니다. 아직도 장군 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술집 말입니다. 그걸 보고 군인이나 군대를 떠올리는 건 아닙니다. 기장 장군도 마찬가지구요. 그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담배연기 가득한 술집의 부속품일 뿐입니다. 이런 일들을 깊이 생각할 때마다 저 자신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느끼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가 1939년에 군에 징집되었던 게 기억납니다. 정식 군인으로 말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면회를 갔지요. 아버지는 가까운 데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일요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4미터 이내는 접근할 수 없었어요. 아버지를 만질 수도, 쓰다듬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저를 만질 수 없었습니다. 다섯 살배기에겐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었죠. 군대는 감정 따위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비인간적이고 살인적입니다. 군대는 아버지들을 앗아가고 그들을 몰인정하게 만듭니다.
 
 최근 러시아가 자국의 모든 화학 무기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하자 베른과 스위스는 서둘러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러시아의 선언에 기대를 거는 것은 위험하다고요. 잔재 위험요소가 남아있다는 거였죠.
 (잔재 위험요소란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입니다. 그 위험요소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가 있는가 하면, 그 치명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수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군비 축소가 시도되기라도 하면 언제나 제일 먼저 목소리를 높이는 건 스위스입니다. 대개 혼자서이죠. 우리 나라는 전쟁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혹시 군대가 쓸모없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군대는 평화군입니다. 평화시에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다합니다. 그런데 전세계적인 군비 축소는 이 기능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군대는 폐지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이상 전쟁을 이유로 군대를 존속시킬 수 없을지 모른다는 원천적 불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실제로 평화로운 세계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전쟁, 좋지요. 좋구말구요. 하지만 여기서만은 안 됩니다' 라고 구호를 외칩니다. 우리 스위스인들은 늘 전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다만 부재중일 뿐이지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거의 아무것도 말입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 토론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남들만이 아니라는 게 두렵습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이니까요.
 
 하지만 말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엔니오 플라야노가 그랬듯이.
 
 "젊은 시절 어느 날 군복무 소집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양심상의 이유로 거부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전쟁에 나가는 게 아니라 이 년 동안 몇 가지 간단한 군사훈련만 받으면 된다고, 그 교육은 신체를 단련시키고 품성을 계발시켜줄 거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기능이 기관을 발달시킵니다. 소집명령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년간 간단한 군사훈련을 마치고 나면 제가 사람을 죽이고, 노파를 찔러 죽이고, 소녀를 겁탈하고,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교회를 약탈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셔야 합니다.'"
 
 저는 군대 없는 스위스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상상할 수 없다면 이상향으로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딴 사람들, 그 사람들, 민중, 관중들이......
 
 그러니까 다시 한번 엔니오 플라야노의 말을 빌려야겠습니다.
 
 "집합명사란 혼란을 조장하는 데 기여한다. '민중, 관중.....' 어느 화창한 날 그대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대가 '남들'이라고 믿고 있는 그 장본인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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