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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3
    2010/04/03
    포카혼타스
  2. 2010/01/13
    2010/01/13
    포카혼타스
  3. 2009/11/25
    Don't visit me(1)
    포카혼타스
  4. 2009/11/23
    가을 다갔는데
    포카혼타스
  5. 2009/11/16
    (1)
    포카혼타스
  6. 2009/07/20
    AVERAGE
    포카혼타스
  7. 2009/07/17
    2. 고립
    포카혼타스
  8. 2009/07/15
    1 .
    포카혼타스
  9. 2009/07/15
    Intro
    포카혼타스

2010/04/03

신경질이었다.

말하는 것도 글쓰는 것도 버거워

마음먹은 것이 웃는것이었다.

목이 쉬도록 웃고 

기진맥진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개나리도 목련도 검은 주황색이었다.

그것은 눈을 감아도 그대로였고

집으로 가는 길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또다시 병이 도지고 있었다.

갈구. 틈만 나면 비집고 나오는

이 무의미를 끝내자는

그 죽음에의 갈구.

내가 창조하지 않은 이 병은 

그러나 나의 죄악이 되어 내 손발을 묶는다.

욕망이 시작되었을 때 종교는 나에게 원죄가 되었다.

붉은 가로등을 등지고, 저기 장례의 행렬이 다가온다.

가운데 선 소년의 팔에 작은 관이 들려있다.

그들의 흐느낌은 내 귓속의 음악과 어울려

검은 행렬의 실루엣을 따라 커져가고

마침내 그들의 앞에 섰을 때

그 관에는 '썬키스트 오렌지' 라 씌어있었고

흐느낌은 음악을 압도하며 웃음소리로 변했다.

나는 죽음에 다가가다

삶에게 조롱받고

도망쳤다.

언제부턴가

죽음도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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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3

이틀에 한번은 오프를 줘서

오랫동안 못갔던 공부모임에 가게됐다.

 

가면서 한 생각이라고는

'앗 늦었다 어쩌지?'

'겁나춥네 뻐쓰 빨리와라'

'앗 이쪽 전철이 온거였어! 뛰어!'

'전철안도 춥구낭 ㅡㅜ'

'공부좀 할려그랬더니 볼펜을 안가져왔네 ㅜㅜ'

'졸려... 꾸벅꾸벅....'

'여기 어디야.... 종각? 종각? 정말? 내려내려내려!!'

'앗 겁나춥네 발시려 볼펜사야되는데... 에 몰라 빌려써.'

'몇층이더라'

'이 방이 맞던가?'

 

노크 똑똑똑...

안에서 들리는 반가운 사람들 목소리

'네에~~'

문 열고 들어갔더니

그가 있다.

 

워메. 제길제길

이런 상황에 대비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생각해두지 않았거늘.

원래 그사람도 속해있는 모임이니까 그가 올 가능성이 없었던건 아니고

그걸 미리 생각하지 못한건 날씨가 너무 추워서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왔기 때문이야

그치만 문을 열기 전부터 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반가워서 방긋 웃을 예정이던 터라 

이미 방긋 웃고 있었고 그를 발견하고도 걍 계속 방긋 웃고 있을수밖에

문제는 사람들이 하필 그 옆자리를 내어줘서

내 발은 내 마음의 원망을 받으며 그 자리를 향해 거침없이 움직이고있는 거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보며 '안녕하세요~~ 올만이에요~~' 하면서

그에게 '오랜만이에요' 라고 말하려다가 그간 문자 씹힌게 떠오르면서

'그랬다가 인사 씹히면 어떡하지?'

'그러면 분위기 완전 썰렁해질텐데?'

'에이 그냥 하지 말자'

'인사도 안하면 계속 어색할텐데 어쩌지?'

'어차피 어색하겠구나... 걍 안전하게 가자'

그래서 인사는 안하기로하구

긴장해서 어디 걸려 넘어지거나 뭐 떨어뜨리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토론모임도 그렇고 이런 토론 주제도 그렇고

너무 오랜만이라 급 낯설어보이면서 이거 내가 잘 이해할 수 있을까도 걱정인데

고개를 저사람쪽으로 너무 안돌려도 부자연스럽고 

엄마가 사람이 말할 땐 쳐다봐야된다고 했는데 쳐다보긴 완전 껄끄럽고

고개와 시선에 너무 신경쓰면 가뜩이나 좀 어려운 토론내용이 머리에 한개도 안들어올테니

아예 신경을 쓰지말자 신경을 쓰지말자 신경을 쓰지말자 신경 쓰지말자 쓰지말자.... 하다보니 어랏, 지금 어디하고있었지?

막 이러고 있고...

 

그래도 내가 자칭 적달(적응의 달인)이라

한 삼십분 지나자 이 불편한 사태가 익숙해졌고 토론도 재미있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끼기'의 느낌.

느끼라는 말을 세개 연속 쓰고보니 좀 변태스러운 구석이 있긴 하네.

어쨌든 사고하기와 느끼기에 대한 이야기도 메인 띰 중 하나였다.

그리구 'When singularities rise up as a Common body, the Ungovernable can become revolutionary process.' 라는 문장은 좋아서 원문을 메모도 해왔구

뼈bone랑 살flash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라쪼가 나한테 갑자기 '그래 뼈속에도 골수랑 그런게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 이 비유의 의미는...!!' 하고 크게 말할 때 사실 나는 속으로 '그래 비유로서의 의미로 받아들여야지... 뼈속에 있는 stem cell이니, 피랑 뼈가 파골세포와 조골세포에 의해 끊임없이 생기고 변화하고있다는 지식은 이 이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안돼. 의학지식아 셔떠ㅃ~' 이러고 있었는데 어찌 내 생각을 알았단 말인가 나는 아무말도 안했는데. ㅋㅋㅋ 완전 깜짝놀랐다. 귀여운라쪼.

리바이어던 그림에는 왠지 월리가 숨어있을 것 같기도...

그리고 시간은 엄청 빨리 갔다.

 

건물을 다같이 나와서 헤어지면서

손 흔들흔들 안녕히가세요~를 하는데

아 이놈에 인사할 때가 문제구나 싶다.

한명 한명 얼굴을 쳐다보면서 손을 흔드는게 인사인데

그를 쳐다볼 차례가 되었을 때 기껏 쳐다봤더니

손목이 안움직이네 ㅋ

이뭐병

 

 

아놔

 

인사가 문제야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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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visit me

주황색 가로등불빛과 검은 아스팔트,

그 위를 수놓은 주황색 얼굴과 검은 머리칼의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찬 저 시간이 나에게 무엇을 앗아가고 무엇을 주었는가

 

나는 날고있는걸까

아니면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걸까

 

나를 정신차릴 수 없게 하는 이 압력에

나는 저항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적응해야하는 것인가

짓이겨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괜찮은 시간이 잠깐씩 찾아온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달콤한 쌉싸름한 다크초콜릿같은 죽음의 유혹이 다시 찾아온다.

허리를 뒤로 조금 더 꺾어, 에스컬레이터들 사이 심연으로 다이빙하고싶은 

그 충동으로부터 도망치는 고통의 순간.

대리석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환자가 변을 다 보기를 기다리며

나는 알콜중독자가 술병에서 고개를 돌리듯 애써 저 먼 1층 바닥에서 눈을 돌린다.

그러나 이미 하얀 가운을 입고 누워있는

한 여자를 상상하며 그 위로 번지는 피는 아 이번에야 말로 남이 아닌

그 자신의 것이라고 마지막 대사를 중얼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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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다갔는데

실내에만 있다보니 허구헌날 꽃을 피워대는 꽃처럼 계절을 착각했는지

여태 가을을 타고 있다. 가을 다갔는데.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단조에만 반응하는 줄 알았더니

도레미쏭 듣고도 운다. 뭐 이런... 조낸 패쏠로직해. ㅡ.ㅡ

 

지금은 무려... 베싸메무쵸가 나와.... 아흑 어쩔꺼...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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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이렇게 예리한 통증을 느낀 건 참 오랜만이야.

 

평소에 느끼는 불쾌감, 화남, 이런건 꼭 설사하기 전에 배아픈 것처럼 부글부글 끓긴 해도 이렇게 '헉' 소리가 날 정도는 아니거든.

 

근데 니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누운 채로 천정에서 난데없이 떨어진 칼을 가슴에 맞은 것 같았어.

 

참 신기한 일이야. 어떻게 감정상태가 신체적인 고통과 그렇게 비슷하게 느껴지는지.

내가 들은 말은 분명 청각 신경을 통해 뇌로 들어갔는데

가슴 한가운데 느껴진 그 통증은 정체가 뭘까?

어쩌면, 가슴 한가운데를 담당하는 감각중추에 심한 충격, 슬픔을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몇가닥 뻗쳐 연결되어있나봐. (아니면 그거 정말 너무 열받아서 관상동맥이 수축해서 심장이 아팠던건지도 몰라 ㅋ)

 

하루정도 지나면서 어제 일을 자꾸 생각해보는데,

어제도 너는 니가 원하는 것만 하려고 했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하겠다고 했고

그러다가 너도 나도 상처만 받은 것 같아.

근데 니가 더 많이 상처받았나봐. 나한테 그런 말까지 한 걸 보니까.

나를 너만큼 상처받게 하려고 그런거라고 이해할게.

근데.. 그렇게 아팠냐?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참 바보같다. 그게 뭐냐? 으이그.

(그리고 말이야... 그때 난 계속 졸다 깨다 했거든... 반쯤 잠들었을 때 니가 뭔가 물어본 거 같은데 깨보면 니가 막 한숨쉬고 있고 그랬어. 그래서 완전 자다가 날벼락 맞은 기분이야..... 역시, 내가 맨날 졸린게 졸라 큰 문제야.)

 

 

아마 지금 넌 나에 관한 흔적들을 피하고 있을거야.

기억은 무의식 속으로 밀어내고,  인터넷에 뿌려진 내 파편들은 외면하면서.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란 걸 알아.

그렇지만, 잘 해내길 바래.

그게 널 치유하고 화를 풀어줄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 관계가 조금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다면.

 

음... 덤으로

저주의 문자같은거 보내도.... 봐줄게. ㅡ.ㅡ

 

 

아오~~ 딴엔 뭔가 나아지게 해보려고 한건데

더더 힘겨워진 날들이 앞에 딱버티고 있다.

젠장.

 

 

 

 

그런데 쓰고 다시 생각해보니까

니가 이 글 보면 기분나빠할 것 같아.

왜냐면 내가 이해한다고 했잖아.

너는 내가 너를 이해하기를 바란게 아니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머리털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기를 바란 건지도 몰라.

게다가 나 갑자기 반말 막 하고 있다.

니가 그렇게 반만하라고 했는데 굳이굳이 존댓말쓰다가....

근데 이제 반말하고싶어졌어.

지금 존댓말하면 왠지 너를 어른대접 해야할 것 같아서.

이 상황에서 널 어른대접까지하잖아? 그럼 나 속병난다.

 

여기다 이런 얘기를 쓰고싶어진거,

어쩌면 내 자기치유의 본능 때문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듣고싶지 않은 말을 여기다 주절거린 걸 어쩌다 발견하더라도,

그리고 그 말이 반말지거리라도,

게다가 나의 오해와 아집투성이 잠꼬대 같더라도

이게 얘의 방법이구나...

하고 지나쳐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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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RAGE

모든 것은 술 때문이었다.

 

정작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서는 싫은 것을 싫다고 잘 못하고, 남 기분 상하게 할까봐 눈치도 많이 보고, 그렇다고 눈에 안띄게 요령피우는 것도 할 줄 몰라서, 억지로 술 많이 먹이는 선배나 손윗사람들과 술을 마시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많이 취하고 만다.

 

그날도 그랬다.

동문의 까마득한 선배들이 테이블 양쪽으로 주루룩 앉아있었는데,

2차였던가, 맥주집에 갔을 때 옆에 앉은 선배가 하필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먹어보는 그 폭탄주를 석잔인가 넉잔인가 먹여지고 나서

나는 몽롱해진 정신에도 평소 취하는 속도보다 너무 빨리 취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집에 가기 위해 무작정 자리를 떴다.

 

지하철로 가는 도중에도 땅이 점점 더 많이 흔들리고 주위가 빙빙 돌아갔다.

집까지 가는 지하철에 타서 맨 가장자리 자리에 앉아 철봉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나선 아마 잠이 들었을거다.

 

다음 순간 기억나는 것은,

누군가 나를 부축해 지하철 역사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지?' 얼핏 보니 선배 같았다.

나는 선배 이름을 부르며 집에 가야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뭘 벌써 가냐며, 다들 이 근처에 있는데 그리로 가자고 했다. 자리 옮겨서 또 술마시러 간댄다.

바깥에 나와서 찬바람을 쐬니 정신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 때 난 그의 팔에 팔짱이 끼워진 상태로 이미 어떤 건물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술집이 아니었다.

머리속에서 알람이 울었다.

순간 그의 팔에서 몸을 빼내려고 해보았지만, 내가 똑바로 걷기도 힘든 상태라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었다.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밝은 불빛을 보자 이게,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바로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데 여긴 어디지? 이 사람은 누구지? 선배인데? 아닌가? 다들 어디간거지? 이게 어떻게 된거야! 나는 혼란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머리속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엘레베이터에서 이끌려나와 어떤 문 앞에 서있었고 그는 그 문에 키를 꽂고 있었다.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왜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았냐고 물으면, 나는 너무 취해있었기 때문에 도망치다가 잡혔을 것이 뻔하다고 항변해야 한다. 글쎄, 그가 정말 나를 잡으러 왔을까? 그리고 나는 잡혔을까? 모른다. 하지만 잡으러 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도망치다 잡히면 왠지 나를 죽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모텔인 것 같은 이 곳에서 어떤놈한테 죽는 것은, 그래, 저 안에 들어가 이새끼한테 당하는 것보다 끔찍하게 싫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도망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도 할 수는 없었다. 안했는지 못했는지, 나 자신에게 자꾸만 묻지만,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질문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 뿐이다. 안한 것이기도, 못한 것이기도 하다. 인생 최악의 무력감을 느끼던 그 순간에도, 그래, 나는 분명 선택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될지 모를 선택을.

그런데 말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놈들은 대개 죄책감을 못느끼는 것 같단 말이다. 그래서 빌어먹을 죄책감은 그놈들 주려고 잘 놔뒀다. 늬들 분실물 내가 보관하고 있으니, 제발 좀 찾아가라고.

그래도 누군가는 빙글빙글 웃으며 이렇게 말할테지. '뭘, 사실 니가 원해서 도망치기 싫었던 거 아니야?' 

..... 엿먹어라 씨발놈아.

 

 

그래도 팔 다리 다 달려있는 몸뚱인데 내 몸이 이렇게 무력할 수가 없었다. 덩치도 커다란 그는,  버텨보려는 나를 방안에 밀어넣고, 그리고 나서 어찌어찌해서 나는 침대 위로 던져졌다. 그러는 동안 내 머리는 거의 알코올에 잠겨있는 상태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보기 위해서 불을 켜려고 했지만 그는 스위치 쪽으로 뻗는 내 팔을 결사코 막아냈다. '어쩌면 얼굴 보면 죽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에 나는 더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내게 남은 무기가 정말이지, 정말 우습게도 말이지, 말할 수 있는 입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나를 강간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그가 내 몸 위로 올아와서 침이 흐르는 입술을 얼굴 여기 저기에 들이대려고 했을 때, 나는 도무지 누구인지조차 모르겠는 그에게 무작정 선배라고 부르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 잠깐만요 선배. 좀 진정하고 저리 가봐요. 술취한 후배 데리고 와서 이게 뭐예요. 지금이야 선배도 취해서 이러고싶겠지만, 내일을 생각해봐요. 내일 아침. 쪽팔리겠죠? 아니라구? 뭐가 아니에요, 내가 다 말하고 다니면 어쩌려고. 선배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다 아는데. 그리고 선배 배나온거 봐요. 에그. 결혼 안했다 그러면 누가 믿겠다. 정말 지금 관두면 내가 아무한테도 얘기 안하고 용서해줄게요. 네? 걱정마요. 네?'

이런 소리를 푼수같이 조잘 조잘 떠드는 동안도 그는 나를 찍어누르고 윽박지르기도 했고 나는 나름 그를 밀어내려고 바빴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의 목표는,

'너의 발기를 막겠다' 였다.

그러던 중 그가 셔츠를 벗었는데 내 계획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는 흰 런닝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때부터 낄낄낄 웃으며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 아 근데 웬 난닝구에요! 완전 챙피하게! ㅋㅋㅋ 선배 패션감각 진짜 죽인다. ㅋㅋㅋ 누가 요즘 난닝구 입어요! 아오 선배 진짜 실맹이야. 아, 진짜 이제 됐어요. 난닝구 입고 달려들면 어떡해요, 챙피해요 빨리 셔츠 입어요. 좀. ㅋㅋㅋㅋ 선배 나 진짜 난닝구 입는것도 비밀로 해줄게요. 셔츠 입고 빨리 집에 가요. 네?'

 

 

그러자, 그는 욕을 하면서 물러났다.

 

그는 날더러 앉으라고 해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좀 더 하다가 나를 보내줬다.

그 방을 나오면서 그래도 그놈에게 한마디 했다.

'앞으로는 이런짓 하지 마라.'

방문을 나서는데, 뒷덜미를 낚아채여 다시 끌려들어가는 환상이 내 머리채를 잡고 딸려나와

아스팔트 길바닥에 까지 따라 왔다.

뒤를 돌아보고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한테 신경 안쓰고 지나쳐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리가 풀려서 웅크려 앉아 손으로 바닥을 짚고

눈물은 적고 숨만 요란한 이상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직후부터 또다른 충격을 경험해야했다.

내 전화를 받고 거의 정신이 나간 나를 도와주러 온, 내가 정말 믿고 있었던 사람은, 사건 전말을 듣더니 내가 주체못할 정도로,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술을 많이 마신걸 나무랐다. 그리고 내가 차마 부모님이 계신 집에 못들어가겠다고 해서 그는 다른 모텔로 나를 데리고 갔는데, 울다 잠든 그 다음날 나에게 자는 모습이 어땠다느니, 남자인 자기와 단둘이 모텔에 가는데 아무 두려움이 없었던 걸 보면 자기를 정말 믿는가보다느니, 요즘 어린 애들이 모르는 사람이랑 성관계 갖는 거에 대해 엄청 개방적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가 정신이 나갔거나 내가 정신이 나간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얼마동안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ease에서, 진단받은 건 아니니까 disease는 빼고, 대충 그것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고생을 좀 했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그 때 일이 반복해서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분노에 차서 부들부들 떨고있고(자신에 대한 분노도 포함해서)

뒤에서 누가 날 부른답시고 건드리면 옷속에 벌레라도 들어간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

그리고 덩치 큰 남자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어찌보면 그런 일 끝에 겪는 것이 너무 당연한 증상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서 바쁘게 사느라고 증상과 기억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점차 흐릿해졌다.

 

그런데 말이다.

결코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모양이다.

 

 

정말 절망스러운 것은,

내가 겪은 특별한 불행이,

어쩌면 이 술먹은 세상의 따악 보통치 평균인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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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립

당신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벽에 부딪혀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경악했어요.

이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얻기 위해 조언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는게

단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서로 끊임없이 의식하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하는 불편 뿐 아니라

관계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상대방이 아니면 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더군요.

특히 이번처럼 상대방은 별 불편을 못느끼고 있는 상황에서는

고민의 생성부터 해결까지, 온전히 나만의 몫이 되는거죠.

 

내가 '비밀' 이 주는 특유의 스릴을 즐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처음에 당신이 이걸 비밀로 하고 싶어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당신의 그 의도가 마음에 들진 않아요.

당신은 이게 알려지면 이러저러한 놀림과 핀잔을 들을 것이 너무 싫고,

사람들이 당신과 나를 '당신-나'로 묶어서 생각하게 되고,

각자에게 이성인 사람들이 우리들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두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댔죠.

나는 (어려서 그런지) 이런 작은 것에도 내 존재와 행동이 모순되는 걸 못견뎌하는 편이라 당신한테 'Deal with it!' 해버리고 싶었지만, 당신이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었어요.

이해가 된 건 아니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뭔가가 있다면 그건 내가 양보해야 하는 부분일테니까요.

그런데 막상 실전에 돌입했을 땐 오히려 내가 더 훌륭한 연기자였어요. -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그렇게 열연을 하다보니, 정말 아무도 눈치 못채네요.

 

그래서 지금은 좀 후회돼요. 조금 덜 열심히 연기할 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쳐다보고 싶을 때 쳐다보고, 괜히 옆에 가서 서있기도 하고, 잠깐 같이 편의점 가자고 하고, 당신이 화들짝 놀라건 말건 (다른 땐 당신이 먼저 하듯이) 덥석 손을 잡기도 하고, (다른 땐 당신이 먼저 달라고 하는) 가방을 들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짝사랑처럼 보이면 안되니까 '어제 밤에 전화했었죠? 미안 자고있었어요.' 도 확 질러주고.

아니, 난 원래 훌륭한 연기자니까 내가 이런 짓을 한다면 그건

'허술한 연기자'를 연기하는 셈이네요.

(이런식으로 당신을 물먹이는 상상을 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군요. 그렇지만 이정도의 복수심은 애교로 봐주시길.)

 

그랬더라면 나도 힘들었을 때 하소연 할 사람이 있었을텐데.

그 하소연이란게 '션섕님, 쟤가 나한테 모래 뿌렸쩌요!' 수준과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예전에 수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연애상담처럼, 모두가 그보다 더 절실할 수 없고,

들어주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Therapy이고,

나머지는 결국 그 둘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만 하는 그런 고민들을.

 

'결국 이렇게 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바로 이것이 이 관계를 알리지 말아야 했던 하나의 이유' 라고 할 수도 있겠죠. 불편해진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동안 해 왔듯이 계속 '아무 일 없었던 관계'를 연기해야한다는 거예요. 나야 좋은 배우니까 이것 또한 잘 해낼거지만, 참 괴로운 연극이 되겠죠. 그래서 난 '바로 지금의 상황이 이 관계를 숨기지 말았어야 할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곧 만나게 될텐데, 그 때 내 연기가 능청스럽다고 날 미워하지 말아요.

그동안의 것은 당신을 위해서 한 연기였으니까요.

 

 

 

다음번에는 고립되지 않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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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당신은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있는 사람이랑 사귀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좋아지면 그 때 가서 헤어지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었죠.
 
    이 말에 제가 꼭 반박을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말실수 하신 걸 내가 걸고 넘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터무니없는 말이라. 당신은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스스로 들어간 그 ‘다른 시간계’를 정말 군대나 감옥에 비유하고 싶으신가요? 그 어떤 외적인 속박과 당신의 삶을 제한하는 것들에 ‘아니오’라 외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모든걸 당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이 상황을 군대나 감옥에 끌려간 것에 비교하시다니...
    그곳에 갇힌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은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당신을 비웃을지도 몰라요.
 
     나는 내가 무수한 갈림길로 짜여진 이 삶의 순간들을 최대한 의식 위로 끌어올려 한 땀 한 땀 짚어가며 살 수 있기를 바래요. 물론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매일 무료하고 불만족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몸이 안 따라준다’는 당신의 말을 이해해야만 하게 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한계 그 끝까지를 느끼고 경험하며 살고 싶어요. 그 곳이 바로 내 자유의 영역이고 내가 뛰어 놀 수 있는 나의 무대라고 여기면서.
    그런데 당신은 왜 당신의 무대에, 그리고 필연적으로 나의 무대에까지 그러한 무기력한 관계의 울타리를 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거부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관계 사이에 군대의 경비초소나 교도소 담벼락을 세우려는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닌 나를 감옥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거니까요. 당신은 한평짜리 몸 누일 곳만 있으면 불편을 못 느낄 지 모르지만,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있는 나는, ‘봐요 내 안에 이런 세상이 있어요!’ ‘봐요 저것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봐요! 저건 대체 왜 저런거죠?’ ‘당신 때문에 난 이걸 새로 발견했어요, 들어볼래요?’ 로 가득 차있는 나는,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마치 잡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막상 잡힌 것은 쇠창살인 듯한 절망감이 들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실제로 갇힌 건 내가 아닌가요?
 
 
    여기까지 들으셨으면,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무심코 한 비유를 가지고 너무 깊게 판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원래 좀 한가지가 머리에 꽂히면 계속 파대는 버릇이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말에 내가 갖는 신뢰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되고, 당신이 뭔가를 ‘비유’씩이나 할 때는 그렇게 무심코 하지는 않는다는 걸 봐왔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냥 오래 연락하지 못하는 상황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그리 비유한 것’ 이라고 하신다면 제 대답도 간단해요. ‘그 오래 연락 못하는 상황이란 게 전혀 비슷비슷하지 않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여태까지.’
 
 
    아, 당신이 한 말의 뒷부분을 까먹고 있었네요.
    ‘다른 사람이 좋아지면 그 때 가서 헤어지면 되잖아요.’
    그럼 나는 그분이 나를 구하러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으라는 건가요, 그것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나한테 연애라는 것은,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귀기로 한 그 날부터 하루씩 날짜를 더하는, 그래서 100일이 되고 1년이 되고 '오래 한 연애'가 되는 그런 status가 아니에요. 그보다 매 순간이, 내가 하고 있는, ‘연애질’인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로 헤어진다’ 는 선언이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나는 이 순간 연애를 하고 있거나, 하지 않고 있거나, 그래요. 
    그래서 '그 때 가서 헤어지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지난 한달 남짓한 시간이, 연애를 하고 있던 나한테는 매 순간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어요.
 
    ‘잘 모르니까 그냥 가르쳐달라’고 하셔서 한가지만 그렇게 가르쳐드릴게요. 이런 경우, 이건 당신이 나를 떠난 거예요. 그치만 자존심 땜에 내가 당신을 떠난 형식을 취하고 싶어지면 말을 바꿀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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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이건 당신한테 말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에요.
‘후기’를 남기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이 이야기들을 쓰기로 했어요.
당신, 여기 와서 이 글을 발견했다고 너무 놀라지 말아요. 어차피 당신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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