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10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0/31
    수다수다수다수다(1)
    칸나일파
  2. 2006/10/26
    12/1 평화수감자의 날 함께해요(5)
    칸나일파
  3. 2006/10/15
    김영하 [빛의제국]
    칸나일파
  4. 2006/10/01
    추석 연휴는 길다...(1)
    칸나일파

수다수다수다수다


 

>> 유럽여행...어느 성당에서 정원을 배경으로

 

 

1. 어릴 때 그러니까 초딩 정도까지는, 다락방에  쌓아둔 책을 보며 하루를 보내도 지겹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 중 단연 백과사전이 백미. 15권짜리 동아백과사전에는 10살짜리 소년에게는 흘러넘칠만큼 다양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특히 나는 동물편을 즐겨 봤는데 먼 이국땅의 동물을 대할 때는 마치 세계를 다 품에 안은 것처럼 즐거워서 상상조차 하기 힘들던 미지의 세계를 와작와작 다 씹어 먹을 기세로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 곳에서 선데이서울도 처음 봤다. 15권짜리 계몽사 위인전집과 몇 권 인지 모르지만 그림 하나 없이 수백페이지를 빼곡히 글자로 채운 한국문한전집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낡고 퀴퀴한 먼지 냄새, 닳아가는 책냄새...그 냄새가 낯설지 않아서인지 난 헌책방이 좋다. 거기서 그림없는 책들을 읽기 시작하던 무렵에 난 세상이 좀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직관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무엇인가가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느낌. 그 느낌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온갖 추상명사들의 의미를 생각했던 거 같다.

 

 

 

 

>> 베트남이 생각난다. 빨간 모자에 노란별, 미치겠다. 나 저거 사줘~

 

 

 

2. 오늘 수업 시간에 '성개방형 결혼'이란 주제로 10여명이 토론을 벌였다. 요즘 이 주제로 비교적 고민이 많은 관계로 사회자를 떠맡고. 남자와 여자의 생각을 골고루 들으며 비교분석에 들어갔다. 뭐든 기존 통념에 반하면 대체로 좋아하지만서도,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은 이후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딱 하나 있었다. 자유로운 연애와 다양한 성관계를 원한다면 대체 왜 결혼을 한단 말이냐? 굳이 같이 살고 싶으면 동거를 하던지. 그래서 난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왜 굳이 결혼이란 제도적 구속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성개방을 추구하는지. 몇몇 사람들의 답을 듣고 좀 이해가 갔다. 요컨대 서른 넘어서 결혼을 하지 않는 여자가 받게 되는 각종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종합해볼 때 결혼은 상당히 현실적인 요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 따위의 환타지는 없고, 다양한 사람과 자고 싶고 사랑이란 감정도 여기 저기 생겨나는데 동시에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원하면... 성개방형 결혼도 가능하지 싶다. 뚜시쿵. 처음엔 그 안정감의 실체가 대체 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었으니. 일단 결혼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고(아~~노처녀는 공격적이고 히스테리컬하다는 주위의 평을 어찌나 많이 들었던지), 결혼하라는 스트레스 안받아도 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하나같이 결혼을 해야 돈이 모인다고들 한다. 더 정확히는 결혼해야 돈을 미친듯이 벌게 되는 거 같다.), 국가에서 혜택도 더 많이 주고(하다못해 전세대출 받을래도 결혼한 사람이 유리하다는 친구의 한탄), 무엇보다 출산과 육아 문제를 생각할 때 경제적 안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아무리 혼자 키운다해도 서포터없이 이겨내기는 힘겨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욕구들을 제대로 고민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상당히 간편하게 '그냥 동거를 하면 되는거지'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듣고보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 싶다. 상대가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거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도 엄청난 압력이 되겠구나 싶었다. 남자 입장에선 성개방을 허용한다면 동거가 편한 점이 많겠지만, 이것도 은근히 남성중심적인 사고겠구나 싶었다. 돈없이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보다 결혼해서 집도 마련하고 제대로 갖춰놓고 사는걸 원하는 심리를 뭐라하기도 어렵고... 사랑과 안정, 두가지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싶다는데 뭐라고해. 그래서 난 오늘 이후로 '성개방형 결혼'을 심증적으로가 아니라 제대로 지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토론자들에게 이해시켜줘서 고맙다는 말도 했다.

 

근데 어지간히 성숙하지 않고서야 쌍방간에 저걸 견뎌낼 사람, 특히 남자가 얼마나 될까? ㅋㅋ..진짜 재밌는 거는 이런 토론 하다보면 꼭 얼굴 빨개지고 흥분해서 자기 얘기 주절주절하는 사람이 나온다는거다. 난 점잖게 사회봤는데 중간에 강사가 끼어들어서 여기 저기 들쑤시며 도발한 덕분에 몇 명은 완전 바닥드러내고 만신창이 됐다. 처음엔 다들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육아 문제 나오니까 슬슬 일부 남자 애들이 조건부 찬성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아빠나 엄마가 둘이면 애가 받게 될 상처는 어쩌냐? 게다가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받게 될 상처는? 그 비난을 어떻게 감수하냐? 사회적으로 너무나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등등... 그러다 차츰 속내가 다 드러나기 시작. 지지입장에 선 학생이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했다. 아는 사람 중에 남자쪽에 문제가 있어 임신이 불가능한 부부가 있는데 여자 쪽에서 이혼을 해야 하는건지, 아님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같이 살아야 하는건지, 그럼 성관계는 어떻게 되는건지 고민이란다. 그러자 한 남학생이 '사랑한다면 당연히 평생 함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흥분. 그러자 한 여학생이 '그건 여자를 지나치게 무성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편견 때문'이라고 반박. 그러자 옆에 앉은 남학생이 한술 더떠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결혼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숨긴 것이라면 이혼해도 할 말이 없다'고 흥분. 이 때다 싶은 강사 바로 공격. '그럼 입장을 바꿔 여자 때문에 임신이 불가능한데 남자가 다른 사람이랑 섹스하는 건 어찌 생각하나요? 가령 성매매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러자 순간 당황한 남학생. 그건 인정할 수 있다고 말을 꺼내다가 이내 분위기 파악하고 말을 바꾼다. '전 그래도 사랑한다면 평생 같이 살 수 있어요. 당연히 평생 참아야죠' 아구야~~아서라...급기야는!! '전 아직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애초에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잖아요. 그 정도는 평생 이겨내야죠!"  

 

OTL

orz

T.T

 

쿵~~~~게임 오버. 유유히 사라지는 강사. KO승. 얼굴이 화끈 화끈. 벌겋게 달아오른 남학생. 쯔비~~

 

 아무튼 덕분에 생각이 많이 정리됐다. 유쾌했다. 이젠 결혼 하는 사람들 뭐라 안하기로 했다. 자의식 때문인지, 아님 갈수록 동료가 줄어들어 불안한건지 결혼식 때마다 '결혼은 뭐하러 하냐?'고 초치고 다녔는데. 이젠 그 짓도 그만해야겠다. 그러면서 끝내는 마지 못해 결혼한 것이라는 답을 얻어내고야 마는 그 심술도 그만둬야겠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미안해하며 날 격려하게 만드는 짓도 그만~~그만!! 다들 심각하고, 진지하다. 자기 인생이 걸린 문제니까. 그래서 나름 그렇게 결심한 것을...괜히 상처주면서 혼자 강한 척하는 것도 지겹다. 내가 결혼의 이유를 못 찾으면 그 뿐이지. 강요는 왜...

 

성개방형 결혼...나쁘지 않다. 그런데 결국 항상 제일 중요한 문제는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

 

 

 

 

>> 가을이다...

 

 

3. 오늘 '신화와 역사' 수업 시간에 또 잤다. 이런 것도 일종의 조건반사인가? 처음에 한 번 두 번 눈치보며 졸았는데, 이젠 이 수업시간만 되면 자동으로 잠이 온다. 처음엔 자다깨다 반복하면서 강사 눈치도 보고, 중간중간 수업 들어보려고 애쓰며 버티기도 했는데...요즘은 거의 기절하다시피 1시간 15분을 내리 잔다. 자다 깨기가 싫을 정도로 혼곤하게 잔다. 그리고 급기야 오늘은 자다가 이 수업을 듣는 꿈을 꿨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 나는 가끔 내 무의식의 세계가 궁금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2/1 평화수감자의 날 함께해요


 

참여를 원하시면 www.corights.net/brokenrifle 로~

 


평화수감자의 날 소개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의 '평화수감자의 날(Prisoners for Peace Day)' 행사는 1956년 12월 1일에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이날에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에서 집계한 전 세계 평화수감자들의 명단이 발표되고 특별히 한 국가나 지역 혹은 평화이슈를 선정해 그 곳의 평화수감자들의 현황과 평화이슈 현안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의 평화수감자는 전쟁 혹은 전쟁준비에 반대하여 비폭력 행동을 하다 수감된 사람이면 누구라도 명단에 포함될 수 있으며 특히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공공연히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명단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평화수감자들은 병역거부자들이며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체포된 다수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과 함께 2003년에 처음 평화수감자의 날 행사가 시작되었고, 올해도 역시 12월 1일에 평화를 원하는 다양한 활동가들이 준비하는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2003년 12월 1일 행사


 

 

 

2003년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문화제 부러진 총 이야기

일시: 2003년 12월 1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장소: 서울 고려대학교 제2학생회관 강당
주최: 12.1 평화수감자의 날 문화제 준비하는 사람들


함께하는 사람들:
동성애자인권연대 / 문화연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 사회당 / 성공회대학교 인권평화센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여성해방연대 / 월곡교회 / 인권운동사랑방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 전쟁없는세상 / 좋은벗들 / 참여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 /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 평화인권연대

 

 

 

 

 

 

2004년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평화의 페달을 밟자'

 

 

 

 

 

 

 

 

2005년 12월 1일 평화수감자의 날
Prisners for Peace Day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영하 [빛의제국]

1.

빛의 제국은 뭐야? 그렇지. 이젠 더 이상 나에게 이념 따위는,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고정간첩이 국정원 프락치가 되어 동해 앞바다에서 잠수정을 타고 들어오는 동료들을, 아니지 그들은 더 이상 동료는 아니지, 팔아먹었어. 새벽 바다에 쏟아지던 써치라이트 빛은 미친듯이 강렬해. 빛의 제국. 아주 환하더군. 그리고 동료들을, 아니지 그들은 더 이상 동료는 아니지, 그들을 향해 미친듯이 쏟아지는 총알들. 그건 내가 쏜 건 아니지. 난 이제 국정원 프락치가 되어 동료들을 팔아먹었지. 그리고 난 아버지고 남편이고, 끝내는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난 여기 살아. 이제 더 이상 이념 따위는,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아무튼 난 여기 눌러 살기 위해, 프락치가 되었지.


빛의 제국은 뭐야? 사방을 밝히는 네온사인. 기쁨도, 외로움도, 상실감도, 비겁함도 이 빛 아래에선 아무 것도 아냐. 이 빛은 그저 감각이고, 돈이고, 권태지. 그럼 내가 찾던 빛은 이건가? 마음 속에 빛나던 이념의 빛은 이미 오래 전에 꺼졌어. 지금 북에는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데, 거긴 내가 갈 곳이 아닌데, 여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남겨지 있고, 그렇지 나는 소유하고 집착하게 되었어. 그것이 내가 가진 전부야. 내가 찾던 빛은 뭐야? 그런 게 있긴 한건가? 그건 아무 것도 아니야. 난 그냥 여기 살아. 애가 있고, 부인이 있고, 아파트도 있고, 돈도 있어. 난 솔직히 지금이 좋아. 도대체, 빛의 제국은 뭐야?

 

2.

영화 [살인의 추억]을, 몇 년 전에 봤을 때, 송강호가 첫번째 희생자를 발견했던 그 장소에서, 하염없이 슬픈 눈으로 빈 공간을 응시하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순간, 난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했다. 줄줄흐르지도 않고, 엉엉 소리가 나지도 않는, 그 눈물은, 꼭 그럴 때 그렁그렁하게 맺힌다. 그리고 [빛의 제국]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렇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송강호의 눈빛이 떠올랐다. 맹목적이었든, 합리적이었든, 지나간 열정은, 이유없는 회한과 서글픔을, 아주 오랫 동안 남긴다.

 

3.

후일담 소설이 많았다. 90년대 중반에는 부정하든, 긍정하든, 타협하든, 외면하든, 부채의식이 시달리든, 계속 지난 날들을 의식했다. 오랫동안 거부감 때문에 외면했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되었고, 그러니까 그 엇비슷한 소설들을 줄줄이 읽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김소진같은 소설가들을 아겼고, 한 편으로는 '그 상실감의 실체는 아무 것도 없다'고 화를 내면서도 묘하게 씨니컬해지게 멜랑꼬리해지는 순간 순간에 빠져드는 불편한 감정 속에 있었다.

그게 10년도 더 지나 송강호의 눈빛으로 되살아 났을 때, 막연한 상실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빛의 제국]도 그런 상실감에 관한 소설이고, 참 많이도 팔리던 후일담 소설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많다.

 

4.

그런게 참 지겨울 때가 지났다. 어느새 후일담의 후일담도 지겨운 시절이 되고, 김영하처럼 너무나 재밌고, 재치발랄하고, 빠르며, 감각적인, 그러니까 여기서 감각적이란 마치 영화 컷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영하 단편소설은 다 그렇게 재밌었다. 가끔 소설책을 읽는 속도가 영화 한 편을 보는 속도와 비슷한 날이 있는데, 그런 때는 적어도 작가의 말발 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장정일이 말했듯이, 나에게 맞는 소설이란 거침없이 읽어나갈 수 있는 소설이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까먹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소설은 피하는 게 좋다. 그러니까 중학교 때 말도 안되게 어려운 해외 고전소설을 필독서란 이유만으로, 꾸역꾸역 읽어내려갈 때 '무슨무슨스키'로 끝나는 등장인물 이름 맞추느라 시도 때도 없이 뒤로 돌아보게 만든, 그 소설은 뭐냐? 중학교 때 그런 책 읽히면 독서에 정나미 떨어진다. 어휘력도, 철학도, 역사도, 받쳐주지 않는 소설을 어떻게 읽냐고?

 

그러다 김영하가 장편을 쓰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검은꽃]. 애니깽으로 불리운 멕시코 에네켄 농장. 한국 최초 계약 노동자로 팔려간 이들의 삶은, 여전히 빠르고 감각적으로, 그러니까 마치 영화 컷을 보는 것처럼 지나갔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역사적 상상력은, 이전 단편소설과는 다른, 그러니까 서사적 구조가 가능한 이야기의 맛에 푹 빠져들게 했다.

빛의 제국은 그런 소설이다. 김영하가 단편을 거쳐 장편으로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장점들이 골고루 배어나오면서, 역사적 무게 때문에 또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다. 이미 이 소재도 영화로 팔린 적 있으니 [간첩 리철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런 소설 참 지겨웠는데, 그래도 이 소설이 재밌는 이유는 순전히 김영하의 능력 때문인가? 자의식 때문인가? 이젠 잘 모르겠다. 한 편으로 권태에 지치고, 한 편으로 경제적 욕구 때문에 눌러앉아버린 이들에게, 꾸준히 반복되는 이런 소설들은 재앙인가? 위로인가? 자학인가? 성찰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추석 연휴는 길다...

 

 

1.

어제 우연히 대학가요제를 봤다. 80년대만 해도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의 파워는 대단했다. 상을 탄 사람들은 물론 가끔 상을 못 탄 사람들도 유명한 가수가 되고는 했으니까. 가끔 괜찮은 옛날 노래를 아무 사전 지식없이 찾아 들었는데 우연히 가요제 출전곡인 경우도 왕왕 있다. 아무튼 말로 할 수는 없지만 그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그들만의, 뭔가가 있었다, 고 생각이 든다, 괜히 서글프거나, 괜히 허탈해지는. 센치해진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마추어리즘은, 열 살 때부터 합숙으로 프로를 키워내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누군가 '산울림'을 아마추어리즘의 절정이라고 했었는데, 그런 아마추어리즘도 찾기 어렵다. 힘들게 흉내내서 따라가는 느낌.

그러다 어제 우연히 대학가요제를 봤다. 장애인이 함께 노래부르는 밴드가 나왔다. 또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독창곡이 있었는데 그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채널을 돌렸다. 오늘 뉴스를 보니 그 노래가 금상을 탔다.

 

오늘은 소리바다에서 가요제 출전곡들을 다운 받아 듣는다. 역시 좋은 곡들이 많은데, 하나같이 뭔가 서글프고 가슴 답답해진다. 과도하게 진지하고 서정적이고 순진하다. 어제 들었던 노래는 대체로 밝고 희망적인 어조였다.

엠피쓰리 플레이어가 없는 요즘은, 담배없는 흡연자처럼 금단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2.

내가 사는 동네에는 대형마트가 없다. 성북K마트라고 그나마 조금 큰 슈퍼가 하나 있는데 언제부턴가 고객카드를 만들면 0.1%를 적립해주고 있다. 계산을 해보니 1천만원을 쓰면 1만원이 적립되는거다. 만원어치를 공짜로 받아먹으려고 1천만원을 슈퍼에 갖다 바쳐야 하는 인생이라니. 평생 참 많이도 갖다 주겠구나, 생각했다. 괜히 다른 슈퍼로 가고 싶다.

 

 

3.

음악이 없을 땐 소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최근에는 장정일의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와 김영하의 [빛의제국]을 읽었다. 추석 연휴 기간도 무지 긴데 음악이 없는 자리를 소설이 대신할 수 있을까? 서점에 가봐야지. 근데 돈이 없어(-.-;;) 월급을 타려고 기다리는 한 달은 마치 0.1%적립카드처럼, 천만년을 기다려 만원이 쌓이듯, 감질맛나게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추석 연휴는 올드송과 함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