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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와 트라우마

 

1. 

잊을 만하면 다시 쓰는 수감일기다.

요즘 사람들이 하도 ‘재밌다, 재밌다.’ 해서 드라마 <하얀거탑>을 다운 받아 보고 있다. 봤더니 재밌다. 2회까지 봤는데 하루 두 편씩 다운 받아 볼 작정이다. 재밌는 걸 보면 나는 가만있지 않고 ‘왜 재밌나?’ 분석한다. 병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캐릭터마다 정치하는 방식이 그대로 들어난다. 젊고 패기 넘치는 김명민은 무엇이든 거침이 없다. 그러나 점점 권력관계의 속성을 이해하면서 행동도 노련해진다. 외과 과장으로 퇴직을 앞둔 이정길은 매사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만 뒤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권력자들에게 줄을 대서 김명민을 몰아내려 한다. 역시 가장 노회한 인물은 김창완이다. 부원장이라는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절대 드러내놓고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입장을 다 들어주는 척, 자신은 인간적이고 털털한 척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의 결점을 잡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놓은 다음 결정타를 날린다. 여기에 비중이 다른 캐릭터들이 여럿 가세해서 세상사 돌아가는 복잡 미묘한 이치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재밌다’는 건 결국 공감대가 크다는 이야기니까 ‘왜 공감대가 클까’ 하는 문제로 고민이 이어진다. 왜 크긴. 아주 단순하다. 세상이 온통 크고 작은 정치판이다. 인간 세상에서 순진하다는 말은 멍청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착하다는 말도 다분히 모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 만큼 영리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2.

‘사람이 그저 도구에 불과한 취급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지만 어느 조직이건 그 자체적으로는 자기완결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 느낌까지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있다.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 항상 도구적으로 존재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도구적 관계가 일상을 압도할 때 생긴다. 정치는 그래서 야박하다. 일상이 온통 정치적인 관계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보자.

정치적이라는 건 기본 권력관계를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내 이야기가 힘을 얻을까? 입지를 강화하려면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까? 윗선에 찍히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관계를 견뎌야 하는 걸까? 어디까지 저항해야 할까, 저항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구치소 생활 초반에는 항상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그래서 참 피곤했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괴로웠다. 더러 착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환경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동화시킨다. 외로움도 즐길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외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마음을 주지 않다 뿐이지 일상적으로 너무나 많은 갈등이 존재한다. 병역거부자들이 보내는 편지를 읽어보면 대개가 그런 이야기다. 사람들 이야기. 그 가운데 적응하고 견뎌내는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쌓여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냉소.


3. 

가장 무서운 것은 냉소다.

얼마 전 책읽기를 함께했던 권인숙 씨가 해준 이야기다. 심리학 관련 강의를 맡고 있는데 마지막 시간에 트라우마(내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써내는 것으로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그나마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된 것도 한 학기 수업의 결과라고 했다. 결론이 어떻게 되었을까? 남학생들은 80% 이상이 군대 관련 경험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군대와 같은 압도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소 분산되는 경향은 있었지만 30% 정도가 성폭력 내지는 유사 성폭력1)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두 가지로 놀랍다. 하나, 여성들에게 성폭력의 위협이란 일상적인 공포구나. 둘, 남성들에게 군대는 엄청난 상처로 남아 있는데 대다수 남성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반대로 표현하고 있구나. 가령 영광으로.

안타깝게 나 역시 감옥 관련 경험을 빼놓고는 상처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군대 다녀온 사람들과 쉽게 말은 못하지만 비슷한 종류의 상처를 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남는 건 냉소. 그걸 극복할 방법이 별로 없는 현실이다.


4. 

근래 들어 우울증, 정서불안, 욕구불만, 심리적 내상 등 여러 가지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한 사람 이야기가 아닌 거 같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분명히 심각한 정서적 결핍이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인간관계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남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 점점 피곤하게만 느껴지고 인간관계에 대해 냉소적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거라 생각하고 반대로 나 역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방어심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서서히 누적된 결과물이다. 이걸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고통스런 자기 성찰 과정이 필요하다. 우월감, 열등감, 피해의식, 분노, 공포, 자기모멸감 등등. 이런 감정들에 솔직해지고 아파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회복이 힘들다.


요즘 들어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힘든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서로 상처받거나 예민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고 자기감정이 앞서다보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방법은 지난한 대화와 소통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나 상담 과정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80% 이상이 가지고 있는 내상을 사람들이 마음속에 꼭꼭 감춰두고 있으니 이것도 참 대단한 일이다. 국가라는 괴물이 답을 주지 않는다면 자신들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책읽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개인적인 치유가 아니라 운동으로서 공론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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