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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의 자리

내가 나에게 짐스러우면 사는 일이 버거워집니다.

그럴 때는 한강으로 나가봅니다.

 

강가에 앉아 빨래하듯 나를 강물에 설렁설렁 헹구어냅니다.

난쟁이 제비꽃도 나와 함께 강을 보고 앉았습니다.

 

비탈진 시멘트 블록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습니다.

아무래도 제자리가 아닌 듯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웠습니다.

 

냉이도 봄빛을 머금고 그 둑 아래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물물각득기소(物物各得其所).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모든 사물은 각각 제자리에 있다고 성인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꽃은 거기에 피어있지 않으면 안 되고,

저 나비는 저 꽃에 앉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한 마리의 새도 자기 자리 아닌 곳에서 울지 않으며,

냇가의 조약돌 하나도 자기 자리 아닌 곳에 있을 수 없는 이치가

우주 안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어느 하나도 엉뚱한 시공간(時空間)에 자리한 것은 없습니다.

참으로 경이롭고 은혜로운 생명입니다. '김재일 수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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