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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끝나고, 나는 배운다.

 지난 2006년 9월 1일 동국대학교 자본은 경주캠퍼스 청소 용역 노동자 28명을 전격적으로 해고했다. 50여명의 청소용역 노동자 중 해고된 28명은 모두 경북지역 일반노조의 조합원이었다. 명목상으로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했다는 이유였지만 어렵게 건설한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명백한 탄압행위였다. 동국대학교 자본은 청소용역회사인 (주)영원씨엔에스를 앞세워 단체협약을 완전 무시한 부당해고를 자행했으며, 이후에도 교묘한 술책을 동원하여 노조를 말살하려는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해고된 28명의 노동자들은 곧바로 교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무려 61일간에 걸친 장기 농성이 진행되었고 치열한 투쟁 끝에 마침내 힘겨운 승리를 얻어내었다. 10월 31일 오후 5시 해고된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속해있는 경북일반노조(위원장 최해술)과 동국대 청소를 맡고 있는 용역업체 영원씨앤에스는 ▲11월 1일부로 해고자 전원(28명) 원직복직 ▲해고기간 임금 지급 ▲고소고발 철회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진행 등 11개 항목에 합의했다. 이로써 해고 노동자 28명은 11월 1일 부로 천막농성장을 철거하고 모두 일터로 돌아갔다.


 동국대학교 자본은 두 달이 넘는 농성기간 동안 60이 넘는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을 차가운 아스팔트에 방치했다. 전기를 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으며, 학생회를 동원하여 천막철거를 종용하는가 하면 몰래 현수막과 대자보를 훼손하는 치졸한 수법도 서슴지 않았다.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에게 청소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용역회사와의 계약관계만을 앞세워 뒷짐 지는 것으로 일관했다. 장기농성으로 여론이 불리해지자 자본력을 동원해 지역 언론에 노조가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 광고를 했다. 동국대학교 자본에게 노동조합은 없어져야할 걸림돌이었고, 고령의 힘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28명은 귀찮고 하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동국대학교 자본은 학생회마저 노조 탄압의 도구로 삼아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학생들의 수업권 확보와 학교의 이미지 실추를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노동조합의 농성을 방해하도록 배후 조종했다. 


 나는 이 부끄러운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이다. 게다가 비록 지금은 후배들이 학교 측의 구사대가 되어 말아먹고 있지만 한때는 투쟁의 중심에 있던 학생회를 건설하고 운영했던 학생회장 출신이다. 한동안 먹고 사는 것에 바빠서 투쟁의 전선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가 이 투쟁에 처음으로 결합하게 된 것은 후배 학생회 일꾼들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노동자의 벗으로 사회적 약자의 진정한 피신처의 역할을 수행해 왔던 대학이 노동운동 탄압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꼴사나웠기도 했지만 그 선두에 한때 내가 몸담았던 학생회가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수치였다. 노학연대를 외치며, 미래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노동운동에 헌신해 왔던 선배로서 후배들의 한심한 작태를 그냥 지켜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천막을 찾아가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우선 그나마 학교에 남아있는 후배들을 조직하고 온라인을 통해 졸업생들의 의견을 모아 성명서를 제작해서 학교에 부착했다. 성명서는 학교 측에 의해 무참히 찢겼고 우리는 항의 방문과 항의 전화 운동을 전개하면서 학교 측을 압박했다. 실로 오랜만에 유인물을 만들고 학내에서 선전전을 전개했다. 이렇게 학교를 오가며 연대 투쟁을 하는 내내 혼란의 90년대를 관통하며 학생운동을 했던 나는 지금의 학생회가 학교 측의 꼭두각시가 되어 노조 탄압의 선봉대가 되어 버린 지금의 현실이 이해할 수 없었고, 남한 사회의 미래가 너무나 암울하게 느껴졌다. 투쟁이 장기화될수록 너무 미약해진 아니 거의 없어져 버린 학생운동의 기풍과 투혼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싸움에서 그동안 몰랐던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끝나버린 서른 언저리의 잔치판을 아쉬워하며 무기력해하는 동안에도 생존권 사수를 위한 힘없는 노동자 28명의 처절한 싸움은 계속되었고, 그들에게 싸움은 곧 삶은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내가 연대해야 할 곳은 이젠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후배 재학생들의 학생운동이 아니라 더 이상 한 발짝도 물러설 곳이 없는 저 노동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진정한 연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이젠 좀 찾은 듯하다. 투쟁에 연대하는 동안 나는 퇴색해버린 학생운동을, 무기력해진 학생회를, 상식을 잃어버린 모교를 걱정했지만 이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28명의 노동자들의 삶을 내 것처럼 느끼진 못했던 것이었다. 


 지난 10월 25일 발레오만도, IHL, 일진베어링 등 금속노조 경주지부와 아폴로산업노조 등 금속 12개 사업장 2천5백명이 오후 1시부터 4시간 파업을 벌였고, 1천여명의 노동자가 동국대 앞에 집결해 청소노동자 해고 철회를 요구했었다. 경주지역 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연대 총파업이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28명을 위해 정규직 금속 노동자들이 기계를 멈추고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집회에 참석 해 준 것이다. 나는 그 집회에서 ‘진정한 연대의 힘’을 다시 한번 보았다. 경주지역에서 그나마 정규직 노동자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최저생계비를 겨우 맞추고 있는 힘없고 늙은 여성 노동자 28명을 위해 어렵고 힘든 결단을 내리고 함께 연대해 준 덕분에 이 싸움의 승리를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집회에서 그동안 학교의 탄압으로 죽은 듯이 지내던 일부 후배들도 ‘학생연대’라는 이름으로 지지 현수막을 내걸고 함께 참여하였다. 소수이기 때문에 더욱 강한 탄압을 견뎌내야 하는 후배들이었기에 자랑스러웠다.

 해고 노동자 중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웠던 최인순 조합원은 이번에 복직하면서 “노동자의 노자도 몰랐는데 이번 싸움으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이번 싸움에 한쪽 발만 걸치고 있던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한때 노동운동에 복무하고자 했던 나는, 지금 그나마 변혁적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나는, 노동자의 노자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연대 투쟁의 연자나 알고 설쳐대고 있는지 많이 반성했다. 저들의 삶이 내 것으로 느껴질 때 진정한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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