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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란 무엇인가...쓰벌...나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중요한 개념이긴 하고, 똑 다루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것을 주제로 뭔가를 이야기하기에는 내 머리에 뭔가 개념 탑재가 부족하다는 거....

 

본격적인 탐구를 하기 전에 일단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정말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개 '시간'이라고 말하면 누구든지 '시계'를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시계는 인간이 만든 창조물로서 시간의 흐름을 재기 위한 객관적인 척도로서 만들어 낸 것이다. 인간이 시계를 만들게 된 이유, 즉 시간을 인식하고 그것이 흐른다는 것을 파악한 계기는 무엇일까.

 

시간에 대한 인식의 시초는 뭔가가 변한다는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시시대에서 부터 인간은 낮이 밤이 되고, 유기체가 자라나서 결국 노회하여 죽는 다는 것, 계절이 바뀐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변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변화는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낮이 밤이 되고, 또 밤이 낮이 되며, 과일이 자라서 떨어지고 또 얼마가 지나면 또 과일이 자라고 열린다. 봄에 싹튼 새싹은 여름에 절정으로 이루다가 가을과 겨울을 지나 사라지고, 또 봄이 되면 다시 또 새싹이 열린다.

 

즉, 외부 환경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변화라는 개념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직선 상의 시간의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까지나 원환 과정으로서 변화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부터 직선 상의 시간관념을 가지게 되었을까?

 

시간에 대한 관념은 인간의 '역사'를 인식하면서 부터 싹트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쳐 내가 있고, 내가 이제 늙고 아들과 손자를 두며 이제 내가 죽으면 그렇게 인간 유기체의 운명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 더 나아가 한 나라가 세워지고 왕들이 이어받으며 여러가지 사건과 전쟁을 거쳐 곧 나라가 멸망하기도 한다는 것, 이러한 사건과 사고를 인식하면서 이를 시간이라는 관념을 도입하여 이해하였고, 그것은 변한다는 것, 그리고 예전의 사건은 오늘날 다시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부터였다.

 

물론 시간이 직선 상으로 흐른다는 것은 근대 이후부터 자리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돌고 도는 원환과정으로 시간을 인식하기도 하였고, 금의 시대, 은의 시대, 동.철의 시대를 거쳐서 점점 타락하게 된다고 시간을 인식하기도 하였다. 중세의 시간 개념은 신의 구원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막혀있는 제한 시간의 세상이었다.

 

직선 상의 시간 흐름, 즉 발전적으로 시간을 인식하는 것은 계몽주의자, 그리고 헤겔, 맑스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발전하며 미래에는 더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것, 즉 진보사관은 이러한 직선적 시간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

 

시간은 이렇듯, 뭔가가 변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우리의 인식에 자리잡게 된 하나의 형이상학적 전제이며 이 시간에 대한 성격 규정은 원환론, 발전론, 타락론, 종말론, 예정론 등 다양하고 우리 시대 인식에 중요한 기반을 이루어왔다.

 

시간에 대한 관념은 인과관계와 연관되어 철학과 자연과학의 발전에서 중요한 이론적 논란 거리가 되었다. 시간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가? 변한다는 것이 정말로 변하는 것인가? 뉴튼은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우리의 시대 뿐만 아니라 전 우주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내재적인 관념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내가 잘 모르겠고, 칸트를 언급하자면 칸트의 시간 관념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외부의 감각을 받아들이면서 적용하게 되는 인간의 인식에 불과하다. 칸트에게 있어서 절대적 시간이 존재하느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저 인간이 외부의 사물들을 파악함에 있어서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념인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을 정말 무엇인가? 과거, 현재, 미래는 무엇인가? 어느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내가 '지금!'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순간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 버린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도 흐르는 것이라고 인식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시간이라고 하는 관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닐까? 그저 우리가 사건의 전후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적용한 관념이 아닐까?

 

현대 과학의 성과로 인하여 우리는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물체의 운동에 따라서 시간은 왜곡된다. 더 빨리 가거나 느리게 가기도 한다. 시간에 대한 절대적 인식이 사라지면서 현재 우리에게 일어날 수 없는 다양한 신기한 현상들이 이론적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우주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은 지구의 인간들보다 나이가 덜 들어보인다 어쩐다 하는 이론적 가정을 생각해 보면 시간이라는 것은 어떠한 물리적 법칙으로도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불러일으킨다. 중력의 법칙, 관성의 법칙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 상대성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 각자의 나름의 고유한 시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는 결론도 도출될 수 있다.

 

시간이 절대적, 상대적이냐를 떠나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인간의 환영에 불과한 것이냐 하는 논란은 아직도 그 답을 알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이 주변 사물을 파악하고 인간의 역사와 우주의 변화를 인식하는데에 이미 중요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흘러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에서 흘러들어와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들어가는 것일까? 전자의 견해라면 미래는 예정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게 되며 후자의 견해를 따르면 미래는 언제든 우리가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적극적인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기제가 된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꿀수는 있는가? 시간 여행이 가능하여 우리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가볼 수는 없는 것일까? 시간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현재의 상식은 과거는 바뀔 수 없고, 다만 미래가 불확정적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기에 우리는 주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과거는 주로 반성의 수단으로서 상기될 뿐이다.

과거가 바뀔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과거를 변화시킨다면 우리의 현재는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는 것인가?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서 과거를 바꾼다면 현재로 돌아왔을 때, 마치 영화처럼 모든 것이 바뀐 현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또는 이러한 상상은 공간과도 연관되어 우리의 과거는 불변인 채로 있고 과거를 변화시켰을 때에는 다른 현재라는 새로운 공간이 우리의 기존 현재와 병행하여 존재한다는 것이 될수도 있을까? 그럼 시간 여행을 떠난 자는 자신이 돌아올 현재는 기존의 현재가 될까? 바뀌어버린 새로운 공간 상의 현재가 될까? 혹은 우리가 아무리 과거를 변화시킨다 해도 미래는 하나의 법칙처럼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게 될까? 즉 미래는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일까?

 

시간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상상은 모두다 무용지물일 뿐이다. 우리가 사실 시간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그때 그때의 변화일 뿐이며 그것이 시간이라고 하는 어떤 연속체로 수렴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때 그때의 변화는 거대한 불변함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유일한 하나의 공간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다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인간의 인식에 있어서 중요한 전제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시간에 대한 판단 여부에 따라서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도 천차만별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파악은 자연과학의 연구와 철학적인 탐구를 통해서 이미 많은 것이 드러났으며 앞으로도 그 가능성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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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뻘글이 되었다. 아, 씨발 그냥 잊자.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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