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9/05

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5/29
    벌써 여름이야..개같은 하장군..(2)
    나그네
  2. 2009/05/26
    더워....난 내일 입을 여름 옷이 없어....(2)
    나그네
  3. 2009/05/19
    영원한 불만
    나그네
  4. 2009/05/08
    착찹이(4)
    나그네

벌써 여름이야..개같은 하장군..

뜽금없이 묻는다. 북한이 정말로 원하는 건 뭐야?? 그동안 북한에 대한 글을 심심 삼삼하게 써왔던 나로서도 언제나 느끼는 낯선 감정이 아닐 수 없다.  뭔가 일이 터질 때마다 드는 이상야리꾸리한 감정말이다.

 

주변의 언론같은 뉴스, 신문에서 이야기하는 북에 대한 보도, 칼럼, 사설은 나의 시각과는 꽤나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시각에 은연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북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그러한 통념에 대한 이성적인 초탈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고, 그것은 상당한 노력이 드는 것이었다.

 

이제 또 하나의 질문 거리가 나에게 던져졌다. 북한의 2차 핵실험이 그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인공위성 발사가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자 곧바로 유엔 안보리의 '사죄'를 요구하며 6자 회담에 참석하지 않겠으며 다시 핵활동을 개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예고한 상태이다. 아마 곧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북한이 엄청나게 가난하고, 인민들은 굶주리며, 항상 미국으로부터 이제는 남한으로부터도 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궁지에 몰린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이미 6자회담의 출발부터가 그런 정신에 입각해서 북한의 살 길을 마련해주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그간의 냉전적 시각의 북한관은 이것과는 사뭇 다르다. 예비군 훈련 때 시청각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조금 유치하기는 하지만 북한은 언제나 자나깨나 앉으나서나 남침만을 생각하고 적화통일만을 생각하는 상당히 공세적이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비쳐진다. 게다가 핵을 개발하여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면서 남한을 양보받으려는 심산으로까지 비쳐지기도 하다.

 

어떠한 시각이 옳은 것일까? 우리는 북한을 어떤 유형으로 바라봐야 하는가? 전자는 이른바 최근의 포용정책 하에서의 북한관이었고, 이른바 후자는 전통적인 북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드는 생각은 북한은 전자에서처럼 그 어떤 시기보다도 체제위기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자신을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한정하지 않으며 공세적이고 주동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상황을 자기가 이끌어가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이순신이 "싸울 곳은 우리가 정한다."는 맥락과 일맥상통한다.북한은 이러한 태도를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그래서 자신이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화해모드에 들어설 때에도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과감한 화해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는 모든 상황을 북한이 주도하고 북한이 문제를 이끌어왔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미, 중, 일, 러 할 것없이 모두가 북한의 입과 행동을 주시하게 된다.

 

북한은 이제 6자회담이 실패했다고 보고 있다. 이제 6자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핵을 정말로 '가시적으로' 보유하고 핵폐기가 아닌, 핵 군축 회담으로 판을 다시 짜려 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인공위성 발사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실망하고 이제 미국에 대한 어떠한 미련도 버린 것으로 보인다.

 

의문은 계속된다. 북한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도 그렇고 대부분이 아마도 '체제유지'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북한이 체제유지에 매달리는 것이었다면 핵실험까지 오는 상황은 납득하기가 곤란하다. 이러한 시각에 매어있다면 북한은 말도 안되는 허세를 부리며 벼랑 끝 전술을 쓰며 '죽여~ 죽인당께~!'를 외치는 이상한 미친 국가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러한 북한 막장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북한이 체제유지를 원했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북한은 한마디로 미, 중, 러, 일과 동등한 나라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오늘 외무성 담화에서 우리가 한 핵실험은 세계에서 2054번째이며 그간의 핵실험은 니들 유엔 상임이사국들이 해온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일례로 95년에는 프랑스가 핵실험을 했지만 국제적으로 비난만 샀을 뿐, 유엔의 제재는 당연히도 없었다. 또한 지난 인공위성 발사로 유엔의 비난성명이 발표 되었을 때, 북한은 니들은 위성발사하면서 왜 우리는 발사 못하냐 라며 거친 항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담화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해가 안 되는 발언들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서 '지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엄청난 허세이거나, 정신이 나간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의 사죄를 요구하는 행동은 우리의 외교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어떻게든 유엔을 통해서 우등생이 되려는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씨발 유엔이면 다야?'라고 밑도끝도 없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정리하자면 북한은 체제유지 뿐만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확고히 마련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북한을 제외한 주변 5국에게 북한은 깡패, 꼴통 국가이지만 북한은 깡패, 꼴통 모습 그대로 이를 다른 나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이나 미국이나 조금 덩치가 큰 깡패이지 실상 깡패, 꼴통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핵을 가지고 있잖아, 일본, 니네는 맘만 먹으면 단기기간에 핵 만들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어, 러시아, 말할 것도 없이 핵 있으시지. 그럼 우리라고 갖지 말라는 법 없잖아? 우리도 핵 가질 테니까, 우리를 아시아의 작은 강국으로 인정해주시오."

 

이것이 북한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지난 6자회담에서 핵을 포기하면서 북한은 이러한 지위를 5국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였다. 하지만 주변 국가는 북한을 일종의 관리 대상으로만 삼지, 전혀 아시아의 한 나라, 한 국가로서 존중하고 있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북한은 다음 수순으로 주변국이 스스로 그러한 지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가시적인' 핵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당연히 테러 지원국 해제, 중유 지원, 전력 지원, 식량 지원 등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조선'이라는 나라로서 그 자주적 지위를 인정받고자 한다. 그것도 여러 강대국 틈에섞여서 이리저리 머리 굴리며 살길을 모색하는 약소국이 아니라 절대로 무시못한 강한 나라라는 지위를 얻으려고 하고 있다. 포용정책은 북한을 국제사회에 잘 적응하는 고분고분한 나라로 만들려는 것이었지만 결코 북한은 이에 완벽히 수긍한 것은 아니며, 자신들의 목적과 부합할 때에만 포용정책을 수용하고 이용해왔을 뿐이다.

 

우리는 한때, 북한이 너무 중국에 기대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 북쪽 땅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라는 우려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 걱정은 북한 스스로도 알고 있는 일이며 북한이 체제유지만을 염두해두고 있다면 이미 진행되었을 작업이다. 그러나 북한의 지도자들은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충분히 스스로도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또 경제위기의 해소방안도 이 핵 보유에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경제개방을 해도 핵을 가진 이후에 '편안하게'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 개방을 해도 미국과 같은 강대국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협력을 요구하지 않아도, 자본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특히나 남한에게 구걸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가 이렇다면 그럼 우리의 대응은 어찌해야 하는가?

 

북한은 핵을 보유하려고 작심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자국의 지위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있지, 결코 우리 남한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햇볕정책도 국내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뿐만 아니라 대북 강경으로 돌아선 지금의 모습에서 북한이 미쳤다고 우리를 생각해 줄 것인가?

 

이제 북의 핵보유를 막기 위한 과거 노무현 정권, 혹은 6자회담에서의 등거리 외교는 전혀 먹혀 들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보다 험악해진 분위기는 또 우리나라에 매우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의도를 지지해 줄 것인가? 아니면 지지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이다.

 

북한의 의도를 지지한다는 것은 우리의 지금까지의 상식으로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이제 중,러, 미,일을 상대로 북한이 핵을 가지려하고, 강대국으로 인정해달래요, 라고 설득하는 식으로 외교를 한다면 그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걷어차버리고 북한의 꼬봉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북한을 표용하려 한다고 해도 남한의 외교정책의 기조(우리는 우등생, 미국의 평화를 사랑해) 역시 50년 역사를 이끌어 온 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럼 지지하지 않을 것인가? 이것 역시 험난한 길을 예고하고 있다. 아마도 현 정부는 이러한 노선을 따를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냉전 기의 남북관계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남한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것은 최근의 PSI참여로 이어졌고, 험악한 남북관계를 불러오게 되었다. 북한의 의도를 지지하지 않는 입장은 우리를 더더욱 미국에 대한 의존으로 이어지게 할 수밖에 없다.(불행인지 뭔지 우리 남한에서는 독자적인 핵보유를 주장하는 보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장한다해도 이것 역시 북한과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고 진보의 기조에도 맞지 않다.)

 

제 3의 길은 무엇이 있을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따라서 현 상황이 우리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어떡해서든 막아야 한다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힘으로 이것을 막으려 하며, 당연히 이것은 다시 전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힘이 아닌 대화와 타협, 포용으로 해결하는 것을 우리 진보의 기조로 삼는다면 어느정도 북한의 의도를 이해하는 태도도 있어야 할 것이요,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북한을 이해시키는 태도도 있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정말 핵을 갖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본토까지 향하도록 개발하고, 핵 탑재 역시 가능해 진다면 우리는 앞서의 양자택일의 순간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시간은 있는가? 조금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만 현 정권에게 제3의 길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요구이다. 변수가 되는 것은 북한 국내에서의 변화, 또 남한 국내의 변화, 미국의 외교정책의 변화가 있긴 하다.  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민주노동당과 남한의 자주세력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더워....난 내일 입을 여름 옷이 없어....

아, 상왕전하께오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었다 하나 내가 있는 블로그홈만큼 조용한 곳은 없도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의 장점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나만의 시각을 쓰기에도 참으로 편한 곳이 아닐 수 없다. 각설하고...

 

 

가뜩이나 바빠죽것는데, 또 가만히 있어도 우울한 판에 그런 소식을 들어서 참으로 우울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역대 대한민국의 국왕 중에 가장 인민들과 친숙한 왕이었는데 어이없이 자살하시니 그저 멍~할 뿐이다.

 

이것은 '상왕전하의 복수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의 죽음으로 현 정부에 복수를 한 것이며, 나의 목숨을 내주고 남의 뼈를 깍겠다는 필살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왜 거 있지 않은가...무협소설에, 스승님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이 술법은 반드시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쓰거라..."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것은 나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적에게 다시는 무공을 쓰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타격을 입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목숨을 내놓으면서 상대방의 정치적 입장에 강한 타격을 주겠다는 것. 비록 목숨은 가져갈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죽은 자는 죽을 뿐, 그외 모든 것을 가지고 간다. 이것은 무엇인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죽음을 각오한 자는 모든 것을 버리기에 상대방으로부터 극심한 공포심을 줄 수가 있다.

 

역사 얘기를 해보자. 조선 초기 왕자의 난이 일어나 태조 이성계의 아들인 방원이 아버지의 수하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정권을 차지하였다. 자신이 왕이 되었고, 아버지는 태상왕으로서 이름 뿐인 힘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인 이성계가 아들에게 복수할 길은 완전히 없어졌다.

 

만약 그때 이성계가 자살해버렸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것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버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살펴보면 알게 될지어다.

 

여기 블로그 글 중에 이번 사건을 놓고,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매우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그래, 사람이 죽었다는 것, 매우 슬픈 일이다. 그리고 상왕전하께오서 가지고 있었던 인간적인 면모는 그 모습 그대로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슬픔과 함께 역시 상왕전하는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날린 마지막 필살 무공이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는 매우 미지수이다. 이것은 정말로 무슨 일들을 불러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미래가 너무도 불투명해졌다. 이로인해 우리는 당장 내일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것은 국내문제 뿐만이 아니다. 북한을 비롯한 국제문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25일 오전에 행해진 북한의 2차 핵실험은 징조도 없이 갑자기 터진 일로 상당히 우려스러운 사태로 다가온다.

 

상왕전하의 죽음으로 이땅에 자유주의 세력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성장한 정치세력은 사실상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빛을 발하다가, 열린우리당의 해체로 거품으로 끝났고, 상왕전하의 승하로 완전히 역사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80년대의 자취는 이제 민주당으로, 아니면 한나라당으로 약간씩 흡수되었을 뿐, 이제 사라져 버렸다.

 

광해군 북인정권의 몰락처럼, 자유주의 세력은 북인처럼 다시는 역사에 등장하지 못할 것인가? 나라가 파쇼화되거나 불안해지는 것은 자유주의 세력이 강력하지 못할 때에 일어난다. 과거 독일은 자유주의 세력이 힘을 갖지 못해, 바이마르가 무너지고 나치가 정권을 잡았으며 러시아 혁명도 자유주의 세력의 부재로 인해 좌우의 극심한 대결 끝에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았다. 오스트리아도 합스부르크 왕가를 대신할 자유주의 세력이 부재했고, 이내 나치독일의 충견이 되었다.

 

상왕의 오른팔이라고 하고, 상왕전하의 적자라고 하는 전 보건복지부판서 유판서가 마치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주인공처럼 다시 그들을 일으킬 수 있을까?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인가?

 

제 2의 촛불집회라는 말들? 혹은 현 주상전하의 탄핵에 대해 간간히 들리는데, 만약 혁명을 원하는 자라면 매우 반가운 사건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왠지 불안하다. 사회의 안전판 노릇을 할 자유주의자들이 부재한 상황에, 혹은 현 정부를 대체할 사회정치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뭔가 일이 터진다는 것은 더더욱 불안한 일이다. 이것은 화끈한 혁명과 동시에 화끈한 반혁명도 있을 수 있는 올인게임이다.

 

범 좌파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어야 하는 것인지는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런 글을 쓸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줸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원한 불만

여기 블로그홈에서 이상한 글을 보고 이 글을 쓴다.  아니, 그렇다고 까자는 게 아니라, 그냥 드는 생각이 있어 이 글을 쓴다. 바빠 죽것는데...(여기는 절간이다..)

 

그래 우리 조선에 두 개의 진보세력이 있다지? 이것은 이제 운동세력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 어느정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 되었다.

 

피디들이 보기에 얼마나 자주세력들이 한심해 보일까? 그들은 한물 뿐만 아니라 두물, 세물은 갔다고 하는 민족주의에 아직도 기대고 있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은 그다지 이상적이지도 않다. 통일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 통일이 어떠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확고하게 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우리가 만들어 가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낡고 낡은 구좌파와 맞닿아 있는 그들은 미국에 반대하기는 하지만, 그 미국을 쓰려뜨리고 만드는 것은 또하나의 제국일 뿐이다. 그럴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결국 그들은 결국 서구에 맞선 동양을 얘기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다른 패권을 불러올 뿐이다.

 

내가 보기에, 내가 보기에 말이다. 피디들은 그럼 어떠한가? 그들은 하여튼 뭔가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 그러니까 말이야, 어느날 불현듯이 모든 노동자와 인민 대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을 억압했던 모든 수탈 기관을 철폐하지. 해방구였던 광주를 생각해봐. 파리 꼬뮌을 보자구. 아, 그날이 오면 말이야. 모든 사람들이 성, 인종, 재산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누리며 우리의 위대한 예언자 성 마르크스가 얘기한 대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젖과 꿀이 흐리는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될거야....언젠가는 말이야. 나는 아직도 혁명을 꿈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 나는 영원한 불만자라는 칭호와 함께 '영원한 진보'라는 그들이 좋아할 만한 칭호도 선사하고자 한다. 매우 존경스러우며 숭고한 생각을 가진 당신은 인간을 사랑하는 진정한 휴머니스트, 로맨티스트이다.

 

역사는 단번에 경험계를 뛰어 넘어 예지계로 들어서는 혁명을 경험한 적은 없다. 즉, 정말로 유토피아가 실현된 세상은 역사상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꿈꾸는 유토피아도 우리의 현실 세계에 갇혀 있는 제한적인 꿈일 수 밖에 없다.

 

과거 농본사회에서 이상사회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모든 백성들이 자신만의 땅을 부치고 살며 부족함 없이 살게 되는 요순 시대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농민 반란 때마다 터져 나왔던 농본사회의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상은 실현되었을까? 역사를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의 진전은 있었다. 결코 농민이 주인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양반 대신, 귀족 대신 다른 계층이 시대를, 사회를 주도하게 되었다.

 

노예의 해방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도식화해보자. 서양 고대사회에서는 노예가 속박을 당했고, 그래서 노예해방이 이상이었다. 결국 이것은 실현되지 못하고 더이상 노예가 필요없는 사회로 이행함에 따라 시시껄렁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 다음에는 농노가 속박을 당해서 농노해방이 이상이었지만 결국 시대가 농노가 필요없는 사회로 이행함에 따라 시시껄렁한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이른바 피디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현실 사회에서의 최하층민의 이상을 꿈꾸며 그만큼 이상적이다. 농본사회에서 토지평등분배를 외치던 과거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농민군처럼 그들은 영원히 불만자, 진보주의자로 남을 것 같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을 꿈꾸며 말이다.

 

사회와 역사의 발전은 결코 최선의 형태로 진행되지는 않았으며 차선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차선에 갇혀 있다는 것은 영원한 인류의 한계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꿈꾸지만 그것은 결국 차선으로 미끄러지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 누가 앞으로의 발전에 기여를 할 것인가. 전자와 후자 중에 차라리 나는 전자에 걸겠다. 그들만큼 현실적인 사람들은 없으며,  현실적인 문제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없다. 너무나 현실적이라서 다수의 후자들이 외면해 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구좌파와의 연계는 엄청난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언젠가는 장점으로서 부각될 날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통일은 그 누가 어디에 관심이 있건 마치 수험생이 치러야 하는 필수 과목, 대학생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전공필수처럼 우리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다. 답하지 않으면 졸업이 불가능하다.

 

발전은 현재 진보이지만 앞으로 보수가 될 준비가 된 세력이 주동하게 된다. 그리고 또 후배들에게 진보의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진보는 영원히 막혀 있는 진보로서 그 시대의 메아리만을 울려 제낄 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착찹이

사랑의 계절 5월에(씨발) 급우울 모드로 돌아서고 있다. 최근들어 수업을 들으면서 세미나를 하면서 그리고 혼자 공부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아, 공부할 게 너무 많고,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게르만어는 특히나 강한 자살충동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보통 게르만어도 힘이 든데, 수준 높은(?)언어를 구사하시는 H선생은 주어나 동사는 생략하기 일쑤이며 왠만한 건 다 대명사로 처리해주셔서 공부할 때 과연 이 대명사는 무엇을 받는가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영어 수준으로 따지자면 쉬운 문장은 곧잘 읽는데 어려운 문장은 도무지 뭐가 뭔지 헤메고 있는 중학생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이 주어와 목적어 혹은 부사, 관용구의 뜻을 잡아주지 않으면 잘 모르는 그런 단계 말이다.

 

어느새 학기도 막바지로 넘어가고 있다. 벌써? 이번 학기는 처음 와서 사람 만나 인사하고 게르만어 접하고, 수업 경험하니깐 다 지나가버리는 것 같다. 서원와서 사람만나고 책보고 등산 한번 갔다오니까 이제 거의 끝났단다...

 

이렇게 의기소침한 나를 보고 다른 서생이 찾아와서 가로되, 함께 공부하는 나를 격려한다고

 

" 자네는 나이가 몇 인가? "

"소생, 나이는 xx이옵니다."

"으음, 그럼 젊은 편이군. 결혼은 했는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애인은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자네는 공부할 만 하구만!!"

 

이상하게 서글픈 격려였다. ㅋㅋㅋ

 

막바지이지만 이번 달 중반의 발표와 발제를 통해서 이번 학기는 절정이자 위기를 맞이할 것 같다. 무사히 잘 넘어가기 만을 바랄 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