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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9/17
    근본적 대책
    나그네
  2. 2010/09/10
    -헤겔생각-
    나그네
  3. 2010/09/07
    아마도..
    나그네
  4. 2010/09/02
    북한 - 변화준비
    나그네
  5. 2010/09/01
    혼란스럽군..
    나그네

근본적 대책

 

 

 

 

 극동의 한 서생이 갑자기 한참 전 한양의 보성대학교에서 있었던 유생 김예슬 선언이 생각이 나 이에 따르는 생각을 잠깐 풀어놓고자 한다.

 

선언이 있은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 어느 일각에서도 잘 먹고, 잘 살고, 다스린다는 위정자 중에서 이 일을 언급하는 선비가 없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보성대학교의 총장이라는 자는 자신의 대학교에서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음에도 히히덕거리며 '보성학'이라는 수업을 만들어 지네 학교 자랑에 열을 올리지 않나, 연희대학교에 가서 학위 쪼가리 하나 받고 역시 헤헤 거리니 이게 정말 위민위덕의 위정자라고 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의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학문을 닦음에 이미 함양과 성찰은 물 건너 갔고, 자구 하나하나에 열을 올려 이것을 빌미로 과거급제나 입신양명에 이용만 하려 하니 이러한 세태가 이미 각 대학교에 찌들고 찌들었다. 물론 세상이 바뀌어 밥을 곯아가며 글을 읽는 선비는 이제 세상에서 존경치 아니하며, 글을 읽는 선비도 손수 농사를 짓고, 물건을 팔아 사대강 육대주를 오고가는 시대이니 만큼, 실사구시의 학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 법인 것은 사실일지어다.

 

허나 그것이 어느 덧, 한 사람의 인성수양의 시간마저 빼앗을 정도로 광풍처럼 몰아쳐 정신이 없을 정도이니, 사람이란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하고 조용한 시기도 있어야 하고, 장마처럼 비가 내리고 폭풍도 치는 시절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향교에서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서 매일매일 폭풍우가 몰아치는 생활을 해오던 향교의 도령들이 이제 대학에 와서는 또다시 폭풍우치는 삶을 살아야 하니 이것이 인간인가.

 

양학을 배우는 분위기에 맞춰 누구는 이를 '스펙쌓기'라고 말하기도 하거니와, 대학의 등록비는 계속 올라 이미 소를 팔아 대학을 보낸다는 옛말은 소 값보다 비싼 등록비때문에 자취를 감추었으며, 저 사대강 육대주를 넘나들며 물건을 파는 무슨무슨 상사, 무슨무슨 유통 같은 대기업들은 자꾸만 자꾸만 더더 경쟁하고 싸우라고만 하면서 물건을 팔고 남은 이문은 자기가 다 가지고, 직원은 줄이고 이를 다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니 족벌재벌들의 양심이 이와 같다. 그러면서 '아!~ 이 나라의 교육은 어찌 이리 실력없는 유생들만 양산하는가' 한다.

 

경쟁을 시키려면 그에 따르는 논공행상이 주어져야 하며, 우리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감을 심어줘야 할 위정자와 가진 자들일 진대, 이들은 그런 희망도 하나하나 제거해가면서 오호라~ 아방(我邦)의 경제가 심히 위험하도다~! 하면서 꽹과리를 치고 징과 북을 치며 엄살을 떨면서 오히려 백성들과 조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 문제점을 가지고 한 유생이 한 장의 격문을 붙여 '나는 이러한 대학은 관두려하노라'라고 말한 것은 그 용기 하나로도 강골의 기상이요, 조선 선비의 자랑이다.

 

이를 두고 어느 유생은 '결국 패배자의 한탄이 아니련가'하고 옷고름을 떨치며 비웃고, '이미 황국을 비롯하여 경제가 위기임은 삼척동자가 아는 사실인대, 어찌 복지국가로 회귀하려는고'하면서 비판하는 유생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그 유생도 알마따나 세상이 이리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일진대 언제까지 이를 자신의 탓으로 두리오.

 

극동의 서생이 분노하는 것은 이일이 일어났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모른척하며 계속 하던대로 사는 위정자놈들이다. 보성대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총장은 자중하며, 대학의 훈장들도 신독해야 할 진대, 그런일이 일어난건지 아닌지 아무 상관도 않고 어찌 민낯으로 유생들을 만난단 말인가.

 

저 조선왕조에서는 아무리 높은 벼슬아치라도 성균관 유생과 대간의 비판을 받으면 설사 그것이 억울할 지라도 궁궐에 나아가지 않고 자택에 머무르며 근신하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허나 근간의 관리들은 고개를 뻣뻣히 내들고 이리 허허 저리 헤헤 하면서 풍악을 울리며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만 찍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이제 와서 주상께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해야 한다 말씀하시고, 나라의 근간은 '公正' 두 글자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하시었으며, 못 사는 백성들을 위한다며 여러가지 상책을 말씀하시고계시나 극동의 선비가 보기에 그것은 아직 수박 겉핥기요, 언발에 오줌누기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사, 농, 공, 상의 비정규화를 타개할 근본적 대책은 보이지 않으며, 대학의 올라가는 등록비를 감면할 길은 근정전에서 논의조차 안 되고 있으며, 먹고 살기 힘들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백성들에게 기껏해야 한달에 10만원 정도 지원하는 것이 고작이다.

 

전하. 그런 정책은 의적 몇 사람을 각 마을 마다 배치하면서 자네가 이 마을을 풍요롭게 하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사옵니까.

 

대저 고려가 망한 것은 불교의 병폐와 귀족의 토지겸병을 막지 못하고 왕조는 이를 임시방편으로 막으려 한데서 비롯되었으며 결국 태조대왕이 사대부와 손을 잡고 이를 근본적으로 고치시었습니다.

 

조선왕조가 결국 망한 것은 사대부의 부패와 사대당의 치졸한 싸움에 휘몰려 백성을 돌보지 않고 과거는 특채로 얼룩지고, 양반은 백성의 토지를 빼앗아 백성들이 마을을 떠나고 뜻 있는 선비들이 조정을 등졌기 때문이옵니다. 이를 두고 왕이 눈물을 흘리며 '과인의 반찬은 세 종류를 넘지 않게 하고, 옷은 기워 입으며, 무리한 잡역에 백성이 동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하고 말하였지만 그것이 어찌 근본적인 상책이었겠사옵니까.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일은 작금의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을 상고하는 일이옵니다. 전하, 당파에 가리지 않고 널리 선비들의 뜻을 묻고 의정부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며 백성들의 뜻을 헤아려 이 힘든 세상을 백성들이 참고 견딜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지금 백성들은 바람불고 폭풍우치는 거리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으니 이들은 지금 주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주상전하를 외면하고 전하를 욕하는 자를 바라볼 것이요, 나라가 살기를 바라지 않고 죽기를 바랄 것이옵니다.

신이 극동의 한 서생일지나 죽기를 각오하고 상소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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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그렇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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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생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름 :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레벨 : 100(정예)

 종족 : 게르만 (비유대)

 

대중적인 교양의 세계에서 헤겔은 더이상 읽히지 않는다. 아니 읽혀지는 것이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의 사상은 어렵고, 이제 유행도 많이 지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교양의 세계에서는 아마도 현대 프랑스 철학자나 정신분석과 같은 심리학서가 유행이 아닌가 생각한다. 헤겔은 이제 한국에서도 퇴행길에 오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헤겔 철학에 대한 차분한 반성이 가능해지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광신적인 찬사와 혐오적인 경멸을 떠나서 헤겔 철학의 공과 사를 차분히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헤겔은 하나의 방법만을 가지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였던 철학자인 것 같다. 그 방법이 바로 변증법이다. 변증법은 모든 것은 모순에 부딪쳐 이것을 끊임없이 극복, 지양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중에서 자기 자신은 새롭게 변화한다. 아주 단순한 원리이지만 헤겔은 이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에 적용시키기 때문에 우리가 좀처럼 이해하기가 힘들다.

 

헤겔의 철학은 결국 변증법 하나를 가지고 이것이 어떻게 모순에 부딪쳐 극복지양하면서 발전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일으키는 변증법을 겪는 주체는 바로 '정신'이다. 이 정신이라고 하는 개념은 '인간정신'이라는 말처럼 우리 인간의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집합된 정신, 공동체적 정신에 더 가깝다. 예를 들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고등학교 교실에서 나타나는 반 특유의 분위기, 아우라, 집단적 목적의식, 다른 반이나 학교에 대한 태도 등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정신이다. 물론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이러한 설명이 가능한 것이지, 헤겔의 정신 개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복잡한 논의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헤겔 스스로도 정신에 대하여 신비주의, 종교적인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우리의 단순한 의식이 그러한 공동체적 정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물론 그 세세한 변증법의 과정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헤겔이 설정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헤겔이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 근대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정신(민족정신이건 세계정신이건 시대정신이건)이 나타나기까지 지난한 의식의 변증법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 하나이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젼을 켜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투표도 하고 사회를 까기도 하고 직장에 출근하여 일하는 것은 수많은 의식의 단계가 합쳐서 도달된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말이다. 그 시스템을 헤겔은 '절대정신', 이 한마디로 압축한다. 따라서 이 세계는 과거의 모순이 축적된 하나의 필연이다.

 

그 변증법은 이렇게 인간학의 분야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논리학이라고 하는 헤겔의 저작은 우리의 형이상학적인 존재론, 개념론, 본질론 등의 추상적인 개념에서의 변증법을 다루고 있다. 그 과정은 정신현상학과 방식이 똑 같다. 하지만 이때는 '정신'이라는 말보다는 '이념'이라는 말이 더 많이 등장한다.

 

논리학은 쉽게 보면 헤겔의 변증법적 세계관을 함축한 형이상학 저서이다. 마치 동양의 세계관이 음과 양이 있고 음양의 정동에 의해서 오행이 탄생하고 오행으로부터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이치로 설명되는 것처럼, 헤겔의 형이사학에서는 기본적인 존재의 영역에서도 변증법이 일관되게 통용된다. 존재와 무를 거쳐 생성이 산출되고 이로부터 현존재가 나타나며 또 계속 모순에 부딪치며 새로운 개념에 도달한다. 논리학은 이렇듯 우리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논리 즉, 인과성, 가능성, 필연성,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의 정의, 양과 질이라는 개념 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게 아니라 변증법적인 자기 모순을 거쳐서 탄생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우리가 'A이면 B이다'라고 말했을 때에도 사실은 그 안에 엄청난 양의 모순과 그 모순의 충돌과 분열과 극복, 지양, 통일의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사실 추상적 개념의 발전사이기 때문에 헤겔의 입장을 선뜻 이해하기는 힘들다. 추상적 개념이 발전하는 변증법을 다루는 것이기에 헤겔의 자의적인 설정으로 보이는 것도 많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철학도 있다. 이것은 자연의 영역에서도 변증법적인 모순의 지양과 발전이 이어진다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다. 자연은 외타존재의 영역, 즉 우리 밖에 객관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영역이기에, 논리학 분야처럼 헤겔이 이리저리 썰을 풀 수 있는 여지가 많이 부족하다. 헤겔은 자신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연의 영역에서 어떻게 변증법적 모순이 적용되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재구성 작업에 착수한다.

 

이것은 자연과학적인 작업이 아니라, 기존의 자연과학적인 작업에 변증법을 덧씌워 자연에 적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에 대한 변증법적 파악. 이것이 자연철학의 내용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헤겔은 논리학의 방식에서처럼 단순한 공간, 시간으로부터 출발하여 운동과 물질 개념을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역학, 물리학, 유기학 등으로 나아간다.

 

헤겔의 자연철학체계는 자연과학의 자연 탐구 방식이 아니라, 변증법적 시각에 따라서 자연의 세계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서의 정신의 발전은 어디까지나 자연을 넘어서 정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데에 목적이 있다. 자연 외부에 대한 정신 혹은 이념이 발전하여 결국 자기자신을 이해하는 정신(정신현상학)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헤겔의 자연철학은 자신의 체계에 자연철학을 맞추려 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현대 우리의 자연과학적 상식에는 맞지 않는 서술이 곳곳에 보인다. 이것은 헤겔이 살았던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이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헤겔의 자연철학의 방법 자체가 관념적인 산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헤겔은 이러한 시각에서 뉴턴식의 기계적 자연관을 비판하지만 뉴턴의 자연과학의 엄청난 실용성에 밀려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 한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상대성 이론이후 새로운 주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변증법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통일로서의 물질을 바라본 것과 아인슈타인의 4차원 시공간의 유사성, 유기체적 자연관이 현대 생태학적 자연관과 맞닿을 수 있다는 것 등이 새롭게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헤겔의 철학은 사실 변증법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만들어낸 철학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 변화 혹은 역사라는 개념을 철학의 영역, 진리의 영역에 처음으로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대'라고 하는 하나의 획기적인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변화하는 사회, 변화하는 진리관, 역동적인 민주주의, 변천하는 시대 정신 등 근대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하여 우리는 헤겔에게 '근대철학의 완성자'라는 칭호를 붙인다. 모든 것은 모순에 부딪쳐 변한다는 것, 지금의 진리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이제 우리시대에는 상식이 되었다. 과거에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면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막는다든가, 사회가 말세임을 외치며 보수적으로 대응하였지만, 근대 사회의 특징은 이제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면 이것이 우리를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를 논의하고 연구한다. 헤겔이 말하 듯, 절대정신의 단계에 다다르면 지금까지의 모든 단계를 한 눈에 파악하고 이것이 모든 변화의 과정이었음을 인식한다. 이 절대정신은 곧 근대의 정신에 다름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자면, 이른바 '국가정체성'을 운운하며 사회의 변화상을 탓하거나 낡은 세계관을 고집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아직 정신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근대인이라고 할 수 없게 된다. 

 

이렇듯 헤겔은 근대를 준비하고 그러한 근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마지막 근대 이전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후 니체가 등장하면서 근대 비판의 포문을 열면서 현대철학은 시작된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재해석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헤겔 좌파의 입장에서 근대 사회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떠오른 사회주의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강력한 근거를 제시하였던 마르크스의 사상은 이후 20세기 내내 전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대철학이 헤겔이라는 큰 산을 넘어뜨리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서양철학자들이 그를 비판하며 제기했던 새로운 문제들을 나열하는 것은 또 하나의 글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헤겔은 그렇게 현대철학자들이 밟고 올라서서 극복해야 할 표적이 되어 주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과 독일의 비판철학은 헤겔의 동일성 철학을 하나의 폭력으로 바라보며 탈근대적인 이슈들을 다루면서 크게 유행하였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우리 시대는 여전히 근대와 탈근대의 중간지점에 서 있는 듯 하다. 지나간 세월과 그간 쌓여온 비판의 양 만큼이나 이제 누구도 헤겔의 변증법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헤겔은 거대한 산으로서 아직도 밝혀져야 할 사상이 남아 있는 철학적 발상의 보고이다. 이러한 그의 매력은 헤겔에 대한 많은 비판까지 우리가 섭렵한다면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한 것인가. 오히려 유물론적 함정에 빠짐으로서 근대에게 발목을 잡힌 것은 마르크스 자신이 아닐까. 비동일성을 외치며 동일성을 비판한 해체주의의 시도는 결국 또 다른 동일성에 다다르는 하나의 계기가 아닐까. 그들의 말대로 저 멀리서 헤겔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헤겔이 교양의 세계에서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그의 노년의 초상화에서 나오는 매서운 눈빛을 보듯, 그의 철학은 설득이 아닌 믿음을 강요하는 듯 오만하고 난해하며,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건방짐과 자만이 엿보이며, 관념적이라는 엘리트주의적 향내가 짙게 배어나고, 정반합으로서 모든 반대와 모순을 절충하고 뭉뜽그려버리는 보수적인 변증법 사상가이다.

 

하지만 나는 헤겔의 철학을 단번에 무시할 정도의 자신감은 없다. 헤겔을 알면 알 수록 기존의 이미지가 많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스 고전에 열광하였고, 프랑스 혁명을 일평생 지지하였으며, 프로이센의 왕정복고의 반동 속에서도 저항하는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던 헤겔이었다. 그의 변증법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절충과 봉합이 아니라 새로운 자기 자신으로 탄생하는 것, 모순을 모두 받아들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일신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다. 변증법은 역동적인 방법론인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그냥 정반합이라는 보수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고, 해석학적 순환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마르크스식의 진보로 이해할 수도 있고, 자아 속의 타자와 타자 안의 자아라는 실존주의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처럼 아이러니한 의존관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정도 되면 헤겔이라는 산을 무시할 수가 없게 된다. 서양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헤겔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등뒤의 헤겔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맞닥드려야 할 던전의 보스로서 헤겔이 등뒤에 버티고 서 있다. 그는 참 두려운 철학자이다.

 

처음으로 돌아오면, 헤겔은 이제 그 누구도 읽지 않지만, 오히려 헤겔을 차분하게 읽을 만한 여유가 생겼다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서양의 고전철학자 중에서 유독 헤겔만이 주목을 받고 대접을 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헤겔은 '과도한' 주목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이라는 서양철학의 불모지에서 아직도 주목받고 여러모로 밝혀져야 할 철학자들은 수두룩하다. 예를들어 쉘링, 피히테나 볼프,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는 지나가는 말로 다룰 뿐, 그들의 사상의 진수는 아직 완전히 소개되었다고 할 수 없다.

 

아직도 헤겔의 사상이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제 계몽의 시대는 끝난 것인지, 탈계몽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마저도 계몽에 대한 계몽으로서, 즉 계몽의 연장선으로 봐야하는지에 대한 물음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계몽과 탈계몽의 대립과 그로 인해 탄생할 새로운 사상을 고민한다면, 역시 출구에서 웃으며 기다리고 있는 헤겔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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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모두가 행복한 사회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 자체가 하나의 관념이다. 간혹 가다가 우리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그 스스로도 그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면서 그 이상한 행동이 먹혀들 것을 요구하는 황당한 자들이 있다. 특히 윗사람 중에 이런 사람 만나면 골치아픈 일이다.

 

뜽금없이 남의 인생을 모독하는 자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세치 혀를 놀리는 자들, 아무리 낮은 곳에 있더라도 존중해야 할 텐데 전혀 존중하지 않는 자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않는 자들,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것이 순간의 모습일 지라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쾌한 경험이다.

 

한창 사회에서 활동할 나이에 나는 서원에 남았다. 이 결정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욕을 먹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에 대해 가장 많은 욕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욕을 먹을 지라도 그것이 막되먹은 대접을 받을 정도의 중죄에 해당하는 것인가...서원에서 공부하면 안 되는 것인가..

 

새삼 나는 참 많은 무시를 받으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회의 인륜이 땅에 떨어졌음을 느낀다. 그것은 흔히들 생각하는 대로 젊은 세대의 예의없음이 아니라 기성 세대의 폭력이다. 형세를 보아하니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무시를 받으며 살 것 같다. 이정도로 많이 받았으면 이제 좀 적응할 만도 한데, 자꾸 화가 나니 나는 아직 수양이 덜 되었나 보다. 맞은 놈이 때린다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 내가 남을 무시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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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 변화준비

북한의 당대표자회의가 9월 초에 열린다고 한다. 뉴스 기사에서는 9월 4~7일 동안 열린다고 보도되었다. 당대표자회의는 공식적인 당내 의사결정 기구인 당대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 당 내의 중요한 사항을 의사결정하는 기구로서 당의 주요 대표자들이 참석하는 회의에 해당한다. 조선로동당에서 당대표자회의에 참여하는 인사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들, 당 중앙군사위원, 당 비서국원, 등 당의 상층 인사들이 해당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당대회는 물론, 당대표자회의도 20년이 넘게 열렸던 적이 없어서, 당의 새로운 인사를 임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 정치국위원도 이미 다 사망하여 김정일 혼자 남아 있다고 한다.(김정일은 당 총비서, 당 정치국 위원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당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주요 인사들을 새롭게 확충하면서 그동안 선군정치에 밀려 한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당의 기능을 다시금 정상화시키는 노력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것은 당연히 김정일 사후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김정은(김정일의 3남)이 후계자로서 어떤 중요한 당내 직책을 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예상은 어까지나 김정일 이후의 시대는 김정은일 것이라는 대내외의 예상에 기대고 있다.

 

따라서 이번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이 다른 여타 사람들과 함께 최소한 당 정치국 위원이나 당 비서국위원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단지도체제를 예상하는 사람들도 김정은이 최소한 당이나 군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김정은이 완벽히 김정일만큼의 권력은 얻지 못하더라도 일정한 권력을 잡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후계체제 구축이건, 집단지도체제 구축이건 간에, 이제 북한은 중요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북한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해에 가서야 비로서 드러날 것이며, 이번 당대표자회의는 이를 위한 포석, 혹은 준비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집단지도체제가 구축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입장에 서서, 나는 이번 당대표자회의를 통해서 김정은이 어떠한 당내 직책을 맡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후계체제 구축이네 뭐네 떠들어도 실상 김정은의 이름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시작되었네 뭐네 하는 소문을 믿지 않는다.

 

북한 내부에서 이미 김정은으로의 후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나는 믿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2012년에 가봐야 드러날 것이지, 벌써 부터 이러쿵 저러쿵 떠들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김정은이 김정일에게 가장 맘에 드는 귀염둥이 우리 왕자라면, 그가 주로 활동할 곳은 당이라기 보다는 국방위원회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라면 후계자인 김정은도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도 당 중앙 군사위원직을 차지할 수도 있긴 하다.

 

오히려 당대표자회의에서 당내 직책에 오를 수 있는 김정일의 측근은 오히려 차남 김정철이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공직을 맡을 만큼 나이가 찼으며(아마 29세?)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할 때 필요한 인물은 아무래도 김정일의 자식'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김정일의 사후의 북한을 책임지는 것은 북한 당내 엘리트 계층과 김영남, 장성택을 비롯한 김정일의 측근, 그리고 북한의 군부, 그리고 김정일의 자식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들이 김정일 사후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이들 간에 당연히 정치적인 충돌이 일어날 여지가 크기 때문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조선로동당의 기능을 다시금 정상화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당대표자회의에서 이루어질 것은 당의 새로운 인물들에게 당 직책을 주는 것과 당의 기능을 다시금 정상화시켜 당내 협의 기구와 협의 절차를 확립하는 것이 될 것이다.

 

북한도 사회주의 초기에는 당내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나름대로 운영되었던 국가였다. 중요한 당의 결정사항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결정하였고, 이것은 곧 언론에도 알려지고 정책에 반영되었으며, 김일성 이외에도 각기 다양한 정치세력이 존재하였다. 바로 그러한 유연한 상태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김정일이 최근 중국을 방문한 것은 여러가지로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 치루어질 당대표자회의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정일은 중국에게서 집단지도체제의 운영방식을 배우려 하며, 앞으로의 북한 집단지도체제의 안정화 방안에 대하여 조언을 구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근거없는 완전한 예상에 불과하다.

 

북한이 3대 세습이 아닌,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북한의 변화에 대한 인민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겉으로는 김정일에 충성한다 하지만, 사실상 인민들은 북한이 자랑하는 사회주의 대가정이 실패하였다는 것, 인민들의 기본적인 생계보장이 이미 후퇴하였다는 것, 많은 수가 굶고 있으며 북한을 탈출하고 있다는 것, 남조선이 사실 중국이 부러워 할 정도로 잘 살고 있다는 것 등등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미 인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3대 세습을 하며 다시금 누구누구의 영도 아래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인민대중들에게 나타나면, 앞으로는 장군님이 10명도 넘겠다면서 냉소짓는 인민들이 늘어날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 북한이 만들어온 국가 정체성이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가는데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도 집단지도체제구축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공존하던 시절, 소련-중국 간 갈등에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사회주의 권내에서 대외적으로 유연하되 강한 결집력을 갖고 있었던 국가였다. 북한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주체사상을 만들어내면서 북한만의 사회주의 청사진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일관된 투쟁적 입장, 모든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순수한 사회주의 이상국가 실현, 스탈린식 사회주의 영도를 표방하고 있었다.

 

특히 순수한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것은 당시 유럽의 수정주의적 입장, 소련의 미국과의 화해, 중국 문화혁명의 급진적 혁명 모두를 배격하고 맑스-레닌주의적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고집이었다. 이러한 정통적 방식을 고수하는 북한의 국가 정체성으로 인해, 중국-베트남과 같이 북한은 경제개혁과 개방에도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며 90년대 경제위기를 맞이할 때까지 북한은 개혁,개방을 거부해 왔다. 그리고 그 필요성을 느낀 이후에도 결국 이것은 자신들, 특히 아버지처럼 떠받드는 김일성의 '교시'를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은 결국 북한 자신이었다.

 

미국에 대한 일관된 반대도 북한의 앞날을 생각하면 어두운 것이었다. 이미 중국, 베트남의 예를 통해서 북한은 사회주의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도 미국과 수교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확인하였다. 그러나 온 사회가 반미의 물결로 도배가 되어 있는 마당에 갑자기 미국에게 설설 길 수도 없는 일이고,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이것을 막는 것은 역시나 김일성, 김정일이 만들어 놓은 반미라는 국가 정체성이었다. 북한은 핵을 만들면서 '자존심에 상처받지 않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였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대 세습을 시행한다면 그것은 곧 지금까지의 북한의 국가정체성을 계속 고집하겠다는 절망적인 정치적 제스처일 수밖에 없다. 반미, 핵개발, 개혁개방 반대라는 기존의 북한의 정체성은 인민들에게도 충분히 지겨워질만 해졌다. 따라서 북한이 3대세습을 선택한다면, 북한의 미래는 없다. 자신들의 고집만을 딱딱하게 고집하다가 결국에는 부러지고 말 국가가 바로 조선이 된다. 그리고 그 부러진 가지에 남조선도 아작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북한의 당대표자회의를 관심있게 지켜보고자 한다. 물론 상세하게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이 인민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최소한 집단지도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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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군..

1. 도무지 새로운 블로그 타입에 적응을 못하것다. 스킨도 영 맘에 들지 않고, 관리하기도 역시나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소소한 것들에서 왜이리 맘에 들지 않는 것이 많은지....;;;;; 마이너적인 블로그의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은 적응이 잘 안된다.

 

2. 아침에 '희랍어' 수업을 청강하고 있다. 이게 글씨인지조차 의심이 가는 이상한 그림의 글자들을 배우는데 또 왜그렇게 진도는 빠른지 아직 알파벳도 다 못외웠는데 벌써 명사1변화, 2변화, 동사변화, 정관사 변화 등의 절세무공을 펼치니 따라가기가 힘들다. 차라리 고전어 수업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가서 돈을 주고 친절하게 공부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골천번도 더 했다. 대학의 이 수업은 학생 배려가 많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결국 돈이다..돈...;;

 

오전에는 늦잠자기 일쑤인지라 졸린 것을 간신히 참고 수업을 들었는데, 오후에 정신이 조금씩 또렷해지면서 문득, '오늘 아침이 들은 그 수업은 대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문자가 오고가고 꿍시랑 꽁시랑 뭐라뭐라 떠든 것 같긴 한데 말이다...뭐 그래도 청강이니 긴장 확 풀고 그냥 들어야 겠다.

 

3. 할 말이 없다. 완연한 여름날씨의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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