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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부두를 거쳐 오는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_김진숙단식농성



흑자와 호황에도 불구, 무능함을 노출한 한진중공업 경영진의 정리해고 시도

해고자 명단의 발표가 연기된 가운데 김진숙 지도위원 천막에서 단식농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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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한진중공업 동지들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입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들이 깔리고 다치는 걸 제가 어떻게 맨정신으로 지켜보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거밖에 없었습니다. 안 싸우고 후회하느니 끝까지 힘껏 싸워 후회 없는 투쟁 만들겠습니다. "

 

지난 28일 공장 초입에서 집회를 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함께 먹고 싸우기 위해 콩국 한그릇을 들자"며 회사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동지'를 만류했다. 그러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결연했다. 2월 1일 현재 그의 단식은 20일을 넘기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당초 1월 26일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려 했으나 일단 연기됐다. 하지만 그 직후부터 집중 교섭에 들어갔음에도 사태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보이지 않았고 노조는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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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여년간 한진중공업은 흑자를 거뒀다. 오히려 이런 호황을 잘 타지 못한 건 경영진의 무능. 조남호 회장은 120억이라는 배당금을 챙기기에 급급했고 조원국 상무의 수주 실적은 부진했다. 이른바 3세 경영이 난국에 봉착했다. 그럼에도 경영진은 30퍼센트의 인원을 구조조정해야 회사가 살아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그것도 물량을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빼돌린 다음이었다.

 

천막에서 만난 김 위원은 오랜 단식으로 지쳐 있었으나, 인사할 때만큼은 씩씩했고 목소리가 잦아들었을 때도 승리하겠다는 투지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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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과정과 정당성 못지 않게 시기도 중요하다. 정리해고 투쟁은 명단 발표 전에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걸 다 해봐야 한다. 한진중공업이 2003년도에 이미 구조조정을 겪어보았고 두 명(김주익, 곽재규)을 잃었다. 그때 조합원들이 처절하게 깨달은 게 있다면, 어쨌든 명단이 발표되면 힘들다는 거 하고, 조합원들이 싸우지 않음으로 두 사람을 잃었다는 자책감이다. 이제는 잘 모인다. 그게 승리를 낙관하는 근거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단식 농성을 하는 동안 "적의 문제보다 내부의 문제가 훨씬 더 크다는 생각을 절박하게 했다"고 밝혔다. 투쟁하고 구속당하고 누군가가 죽고 장례를 치르는 일이 단순히 운동의 한 부분이자 일상이 되어 버렸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반성은 자연스레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관련 투쟁에 닿았다. 한진중공업 노조에서도 비정규직 투쟁의 절박함을 느끼지만 몇명이 해고되었고 해고된 이들의 삶이 어떤지 통계조차 내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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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과 만난 조합원들은 한진중공업 사옥에서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남포동에서의 집회가 끝난 뒤 입사 40년차의 한 노동자를 만났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와 어용노조 시기, 민주노조운동과 열사들의 자결을 쭉 겪어온 그에게 '정년은퇴하시기 전 꼭 쟁취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진숙이가 꼭 복직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부당해고라고 판결이 났다." 그는 김 위원이 한진중공업에 입사하고 노조활동을 하다가 해고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본 동료다. 민주노조운동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열심히 일만 하다가 때가 되면 둘 모두 회사에서 잘려나갔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인연을 지속하지 못하기 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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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시위 도중 한 야채상 트럭운전자는 "파업은 좋은데!"라며 길이 막힌 것에 화를 냈다. 김진숙 위원이 인터뷰 말미에 언급한 내용이 떠올랐다. "산별 또는 업종별 노조는 한계가 많다. 지역별로 가야 한다." 이것은 현재 중앙집중적인 노동운동을 혁신하는 동시에, 그동안 다 같이 생계와 존엄을 위협받으면서도 서로 반목했던 사람들을 이어줄 길이기도 하다. 트럭 야채상이 잠깐의 도로 정체에 흥분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사회,  노동자가 여러 해법을 통해 권리와 자유를 쟁취하는 노동 민주주의, 이를 향해 가는 길은 결국 하나다. 연안 부두를 거쳐 한진 중공업과 부산 일대를 다녀오는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   

 

 

/ 숨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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