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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94회

 

1


읽는 라디오 ‘살자’ 아흔 네 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성민입니다.
중부지방은 막바지 장마가 요란을 떨었다는데 이곳 제주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올 여름은 예년에 비해 견딜만 한 것 같으니까 앞으로 보름 정도만 견뎌보자고요.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이것저것 감사를 한 후 의사와 상담을 하는데 내용이 좋아서 안심하고 돌아왔지요.
그러고나서 감귤나무랑 씨름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대변검사결과 양성반응이 나와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전화를 받고도 심드렁했습니다.
매일 확인하는 대변상태는 여전히 괜찮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오히려 다음날 감귤나무에 약을 치는 게 걱정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서 농약을 치기 시작하는데
머릿속에 자꾸 ‘양성반응’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으려 하는 거였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읽었던 대장암 환자의 항암일지 내용이 떠오르고
주위에서 전해지는 암환자들에 대한 소식들이 되새김질되더군요.
암환자들의 고통이 자꾸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어갔던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농약을 치려면 다섯 시간이 걸리는데 그동안 내내 이 생각들과 싸워야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도망가야한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한 싸움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평소 명상을 하면서 자주 되새겼던 보왕삼매론을 암송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잠시 편안해졌지만 곧 다른 무기로 새로운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내가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사랑이는 어떻하나’하는 걱정이 자리를 잡고 앉는데
그에 대해 대처방안을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감귤나무야 병 걸리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라’하며 약을 치는데 집중할라치면
‘가족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얘기를 풀어가야하나’하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이밉니다.
그런 식으로 다섯 시간 동안 약을 치면서 외면하고 도망가기를 반복하다보니
몸이 지쳐서 마음이 더 이상 싸움을 걸어오지 않더군요.


약을 다 치고 샤워를 하고나서는 침대에 누워 잠시 피곤한 몸을 쉬었습니다.
피곤한게 도움이 됐는지 그 순간에는 별다른 고민이 따라붙질 않더군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먹고나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다섯 시간 동안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지만 막상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와 상담을 하는데
“대변검사로는 피가 섞여있는지 여부만 확인하는데 이것만으로 암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다른 요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짜로 대장내시경 검사 받는다고 생각해라”
라고 가볍게 얘기를 하더니 검사날자만 정하고 끝났습니다.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더니 역시나 사랑이가 꼬리를 흔들며 저를 반기더군요.
그런 사랑이를 쓰다듬으면서 얘기를 했습니다.
“사랑아, 내가 니 걱정 많이 했거든. 우리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보자.”

 

2


이번 태풍에 피해가 없었는지요? 제주도에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고 해서요..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해서 댓글 남깁니다.^^

 


곰탱이님이 지난 방송에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답글을 달았습니다.

 


제주도에서 그 정도 태풍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비가 많이 내리 정도지요.
아... 궁금하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좋네요.
이 기운으로 방송 더 열심히해야겠네요. 하하하

 


그랬더니 곰탱이님이 다시 댓글을 달어주셨어요.

 


큰 피해가 없어 보여 다행입니다.^^ 사랑이가 참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답글을 달았지요.

 


이 얘기 사랑이한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나서 사랑이에게 이 얘기를 해줬습니다.
“사랑아, 인터넷에 너 사진이랑 너에 대한 얘기를 써서 올렸거든. 근데 누가 그걸 보고 니가 사랑스럽다고 얘기했어. 기분 어때?”
처음에는 저를 바라보면서 제 얘기를 듣던 사랑이는 제 얘기가 길어지니까 딴곳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더군요. 하하하

 

3


얼마전부터 사랑이가 집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더울 때 나는 집안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지내는데 사랑이는 밖에 묶어놓고 지내는 게 너무 미안했거든요.
집안에 들어오는 걸 두려워하는 사랑이를 살살 달래면서 마루에 들어오는 것까지 성공했더니 이제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걸 즐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집안에 들어와서는 별로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지내던 사랑이가 얼마전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방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방앞으로 다가와서는 이렇게 물끄러미 저를 바라봅니다.
아직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까지는 하지못하고 여기까지가 마지노선이지요.
심심하니까 놀아달라고 무언의 압력을 보내는 사랑이를 보고 있으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갑니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사랑이를 위해서 제가 좀더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보지요.

 


(DJ Okawari의 ‘Flower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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