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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102회


1


가을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요즘입니다.
낮에는 약간 덥기는 하지만 여름의 끝맛과 함께 가을을 느낄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사는 동네의 가을 풍경을 소개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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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에 태풍까지 지긋지긋하게 비가 내린 뒤에라서 일손들이 바쁩니다.
브로콜리 같은 건 벌써 심었어야하는데 늦어서 더 분주하고
그나마 쪽파는 시기가 적당해서 조금은 여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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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모종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제 새로운 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니까요.
가을장마 전에 심어놓은 모종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갈아엎고 다시 심은 밭도 있지만
그나마 이곳은 파종시기를 놓치지 않아서 조금 늦게라도 심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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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텃밭에도 이것저것 심어봤습니다.
배추도 심고, 무씨랑 시금치씨도 뿌리고, 상추과 쪽파도 심었습니다.
조금있으면 심으려고 마늘씨도 다듬어 놓았고
10월에 양파를 심기 위해서 비닐도 미리 덥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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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겨울작물들을 심느라 바쁜 요즘
한쪽 구석에서 고구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장마가 고구마에게는 갈증을 해소해주었는지 잎사귀가 아중 풍성해졌습니다.
다음달에 고구마 수확이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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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와 산책하는 길에 마주친 감귤나무는 수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 자란 감귤들이 보기좋았는데 하나둘씩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합니다.
한 두 달 있으면 감귤을 수확하느라 바빠지겠지요.
남의 밭에 있는 감귤나무지만 이렇게 잘 자란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래저래 분주한 요즘은 봄과는 다른 가을만의 활력이 넘치고 있습니다.

 

2


가을을 즐기기 위해 문화생활을 했습니다.
제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이라는게 영화보기 정도여서 영화를 봤습니다. 프흐흐흐


두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하나는 케이블에서 틀어주는 ‘가버나움’이라는 걸 봤고
하나는 극장을 찾아가서 ‘벌새’라는 걸 봤습니다.
‘가버나움’은 괜찮았는데, ‘벌새’는 제 취향이 아니더군요.
돈 주고 본 영화가 별로여서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돈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아, 여기서 두 영화에 대한 평을 하려는 건 아니고요
두 영화에서 나오는 어떤 상황이 마음에 남아서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가버나움’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느 빈민가의 구질구질한 집안에서 자라던 12살 소년은
부모의 폭력과 지긋지긋한 가난과 11살 여동생을 팔아버리듯이 결혼시켜버린 현실에 분노해서 집을 뛰쳐나옵니다.
그렇게 집을 나온 후 갈곳없이 헤매던 그 소년은 어느 누나에게 멀을 걸 구걸하는데
그 소년이 측은해보인 그 누나는 자기집에 데려가서 먹을걸 나눠줍니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이고 미등록이주노동자였던 그는 자기 아들을 돌봐주는 조건으로 그 소년에게 집과 음식을 제공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게 된 소년이 아기를 돌보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불법체류신분이었던 아기엄마가 단속에 걸려서 잡혀들어가게 됩니다.
소년은 돌아오지 않는 아기엄마를 찾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해 갓난아이를 돌보게 됩니다.
자기 한몸 버티기도 힘든 12살 소년이 갓난아이를 데리고다니면서 돌보는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어서 ‘벌새’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요.
평범하게 중학교를 다니던 14살 소녀는
가부장적인 가정분위기와 오빠의 폭력, 억압적인 학교와 겉도는 친구들과의 관계, 성에 대한 고민 등으로 힘들어합니다.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단짝친구와의 사이마저 틀어지면서 깊은 절망에 빠져드는데
동네 한문학원에서 알게된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선생님에게 의지를 하게됩니다.
대학을 다니다가 학생운동으로 휴학중이던 선생님은 그 소녀의 고민을 듣고 그저 마음을 쓰다듬어줄 뿐이었지만 그게 소녀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버겁기만한 14살 소녀가 하나님처럼 의지했던 그 선생님도 세상이 혼란스럽고 버겁긴 마찬가지였던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을 뿐입니다.


이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죽을만큼 힘든데
너무 힘들다며 자신에게 의지해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할까요?


그런 상황에서 아주 쿨하게 그 상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없을 겁니다.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적당한 수준에서 거리를 두려하거나
마음이 찔리는게 있으면 적당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면피하려 할지도 모르지요.
그때 어쩔수 없어서든 안타까운 마음때문이든 그의 손을 잡아주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하나님을 얻은 듯이 의지합니다.
그게 더 부담스럽고 힘들겠지만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진짜 하나님이 됩니다.
물론, 그 하나님이 버티기에도 세상의 바람이 너무 거세서 곧 쓰러지기는 하겠지만...


간절한 이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삶의 희망이 된다는 것
그렇게 간절한 손길을 잡아주는 이들은 대부분 그들만큼 힘들고 어려운 이들이라는 것
그 힘만으로 현실의 거대한 벽을 넘기에는 버겁지만 죽지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동아줄이 된다는 것
그렇게 손을 맞잡고 버티고 있는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이라는 것
이런 것들이 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 확인했던 것이고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몸으로 확인해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제 나이쯤되면 여기에 하나의 경험이 더 얹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든든하게 나를 의지하던 사람도 내가 쓰러지거나 내게서 얻을 것이 없어지면 그냥 자기 길을 가버린다는 거죠.
아,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보면 누군가가 간절히 내미는 손을 스스럼없이 잡아는 걸 주저하게 됩니다.


‘이런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인가?’라며 씁쓸한 상념에 잠겨있을 때
30대의 혈기왕성한 성민이가 제 뒤에서 한마디 내뱉습니다.
“아이씨, 이러니까 노친네들하고 같이 다니지말라는거 아냐! 생각은 좆나 많고 행동은 열나 굼뜨고... 그래서 언제 세상을 바꿀건데?”

 

3


가을을 만끽하려 작정하고 지내고 있는데 태풍이 또 올라왔습니다.
지난번 태풍에 찢어진 비닐하우스는 복구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하는수 있나요, 다시 하우스 주변을 꼼꼼히 점검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야지요.


이 방송의 원고를 마무리하는 일요일 오후
아버지는 폐암치료를 위해 서울에 올라가 있고
이곳에는 태풍이 한창 몰아치고 있습니다.
저는 밖에 나가지도 못한 채 사랑이랑 둘이 집안에 있습니다.
밖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에 신경이 쓰이지만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해봅니다.

 


각 노래들이 각기 다른 색깔과 맛을 가지고 있네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장마 피해가 적다니 참 다행입니다.^^

 


지난 방송에 달아주신 곰탱이님의 댓글입니다.
매번 이렇게 방송에 참여해주시니 방송하는 재미가 하나 늘었습니다.
나름 많은 시간을 들여서 노래들을 선곡했는데 각각의 색깔과 맛을 느꼈다니 그 역시 기분 좋습니다.
장마와 태풍에 대한 걱정도 해주셨는데 저는 곰탱이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음에 미안하기도 합니다.


비바람은 거세고
중간중간 전기도 불안정하고
토요일 오후부터 집안에만 있어서 답답하고
심란한 근심거리가 호시탐탐 틈을 노리며 주변을 배회하는 지금
이렇게 방송을 준비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누군가와 간접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동생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랑이가 곁에 있어서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가을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내 삶이 평화로움에 감사합니다.

 


(골든스윙밴드의 ‘Route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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