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두 교황, 흔들리고 실수하면서 버티고 있는 성직자의 고백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교황 선출을 둘러싼 보수파와 혁신파의 대립을 다룬 영화인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그런데 교황선출 과정이 보수파의 승리로 너무도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그렇다면 이후 바티칸의 부패를 둘러싼 보수파와 혁신파의 대립으로 이어지겠거니 했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이야기는 그렇게 흘렀다.

 

 

보수파를 대표하는 교황과 혁신파를 대표하는 아르헨티나 추기경이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

성직자답게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그들의 대화에는 긴장감이 서려있다.

서로의 입장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팽팽한 접전이 이뤄지지만 누가 먼저 섣불리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둘의 대립이 살기가 느껴지기 보다는 스파링 하듯이 여유로운 게 아닌가.

까칠한 원칙주의자 교황에 비해 온화한 현실주의자 추기경의 태도가 유연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둘의 밀고 당기는 대립이 이어지다가 다음날 2라운드가 시작됐다.

그런데 2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교황의 태도가 돌변했다.

자기는 교황을 그만하고 싶으니까 추기경더러 교황을 하라는 거다.

‘이건 뭐야? 정치적 술수와 계산이 뒤에 있나?’ 싶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보니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 것이었다.

 

 

그 뒤로 이야기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교황자리를 둘러싼 둘의 대립은 여전한데

교황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대립이 아니라 교황자리를 넘겨주기 위한 대립이 돼 버렸다.

그리고 그래야하는 이유를 서로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왜 내가 교황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추기경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고백해야 했고

‘왜 내가 교황을 그만둬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교황은 고해성사를 해야 했다.

혼탁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왔던 교황과 추기경도 끝임 없이 흔들리고 실수하면서 겨우겨우 버텨왔던 한 인간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었다.

팽팽한 대립은 여전한데 그 둘의 얘기를 듣다보니 어느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완전히 영화에 빠져들었다.

신파는 1도 없이 덤덤하게 이야기가 이어지는데도 코를 훌쩍여야 했고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풀어놓고 서로 품어주는 모습에 심장이 벌렁거렸고

그 힘겨운 삶의 무게 속에서 자신을 내려놓고 삶을 성찰하는 모습에 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종교를 다루지만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성찰과 속죄를 얘기하지만 너무나 편안했고, 보수와 혁신의 대립을 드러내지만 그 차원은 너무나 깊었다.

거의 대부분을 두 사람의 대화로 채워 넣으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대화가 중심인데도 말은 그리 많지 않으면서도 그 안이 꽉 차있는 정말 알찬영화였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차를 마시는데

두 개의 질문이 가슴 속에서 맴도는 것이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니가 저질렀던 잘못들을 주워담으려고는 했냐?”

“너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으로 속죄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