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무간도, 살아남는 게 형벌이 되는 지옥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콩 르와르 영화는 80년대에 영웅본색, 철혈쌍웅, 천장지구, 도신 등에 푹 빠져 있다가 그후에는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비슷비슷한 내용들로 반복되는 것이 지겨웠기도 했지만 민주화투쟁이라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리얼리즘영화들로 눈이 쏠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홍콩 르와르 영화는 오래전 추억으로 밀려나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판 르와르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으로 몇 편을 보기는 했지만 마초들이 폼 잡으로면서 칼부림만 하는 게 싫어서 더 이상 보지 않았다.

그 마저도 과거 홍콩 르와르 영화의 멋을 따라 잡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를 재미있게 봤다.

르와르 영화라기보다는 부패한 권력과 사회에 대한 고발의 성격이 강한 영화였는데

그 영화의 원작이 ‘무간도’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 후에도 ‘무간도’가 걸작이라는 얘기는 여기저기서 듣기는 했지만 마초들이 폼 잡는 영화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걸 봤다.

요즘 영화는 별로 볼게 없어서 옛날 영화를 고르다가 호기심에 보게 됐다.

별 생각 없이 그냥 본거다.

 

 

홍콩 마피아 두목을 잡기 위해 경찰이 역량을 집중하는데

마피아는 경찰 내부에 첩자를 심어놓고 있었고

경찰도 이미 마피아 내부에 첩자를 심어놓고 있었다.

마약밀매 현장을 덮치기 위해 경찰이 기동성 있게 움직이니까

마피아도 그에 질세라 경찰의 수를 읽어가면서 작전을 벌였다.

각각의 첩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두 집단 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초반부터 눈을 확 잡아끌었다.

 

 

그렇게 1라운드 무승부가 벌어진 후 조직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집단은 첩자를 찾아내기 위해 작업을 벌인다.

그런데 그 첩자를 잡아내기 위한 작업의 중심에 그 첩자들이 자리 잡게 되면서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팽팽한 심리전 속에 공작과 역공작이 벌어지면서 영화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게 됐고 그를 지켜보는 내가 조마조마해졌다.

 

 

두 집단을 오고가는 팽팽한 기운이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방아쇠가 당겨지니까 그 긴장감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한 명씩 주요 인물이 죽어갈 때마다 출렁임은 왼쪽과 오른쪽을 급격하게 왔다 갔다 했다.

죽음과 출렁임이 급격하게 진행됐지만 그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았기에 긴장감은 더 높아져만 갔다.

 

 

그렇게 긴장감이 점점 높아지면서 영화의 주제의식도 분명해졌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 상대가 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사람이든, 죽는 순간까지 나를 믿어준 사람이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사람이든 상관없이 내가 살기 위해서는 가차 없이 죽여야 했다.

‘나를 믿고 함께했던 이지만 죽여야 하는 순간 망설이면 내가 죽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최고의 형벌은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곳이 바로 ‘무간지옥’이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보는데 영화가 끝나서도 긴장감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마초들이 아주 멋있게 폼을 잡으면서 진짜지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옥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요즘 뜨는 오디션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싱어게인’을 보면

재야의 고수들을 찾아서 경연을 펼치는데

예선을 통과한 이들이 팀을 이뤄 무진장 연습한 후에 팀대결을 벌인다.

그렇게 다음 라운드에 올라가면 한 팀을 이뤘던 이들끼리 대결을 벌인다.

진행자도 참가자도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만드는 참으로 잔인한 방식’이라고 하면서

피 터지는 경쟁을 밀어붙인다.

그런데 그 중 한 참가자가 “오늘 경연에서 누가 이기든 지든 심사위원들이 패배자가 되게 만들겠다”며 아주 당돌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에 대해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엇갈렸고 그 참가자는 졌다.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발굴하겠다는 취지의 프로그램마저도 이렇게 살벌한 방식으로 몰아붙이면서 인기를 끌어가는 이 현실이 지옥이었다.

‘무간도’는 그 지옥을 폼 잡으면서 냉혹하게 보여줬다면, ‘싱어게인’은 그 지옥을 아름답게 포장하면서 우회적으로 보여줬다.

 

 

예전에 ‘드라마의 제왕’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파렴치한 짓도 냉혹하게 하는 이였고

여자 주인공은 순수한 이상과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이였다.

남자가 여자를 이용해 먹고 버리려 하자

여자가 남자에게 “너 같은 놈은 죽어서 반드시 지옥에 갈 거야”라고 쏘아 붙였다.

그러자 남자는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그 여자를 보며 댓구를 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여기가 지옥이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