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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소마, 여유롭게 다가와 마음을 죄어오는 올가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생을 잃은 충격과 슬픔에 잠겨있던 여성이 그의 남자친구와 남친의 친구들과 함께 스웨덴의 어느 시골마을의 축제에 참가하게 된다.

남자들끼리는 이미 약속이 돼 있던 여행이었지만 여자가 함께 가가된 것 계획에 없었다.

여자는 깊은 슬픔에 잠겨있었지만 남친을 비롯해 주변의 남자들은 겉으로만 위로할 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여자도 그런 점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자신도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감정을 묻어두려고 노력한다.

 

 

아무튼

그렇게 스웨덴 여행이 시작됐고 아름다운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친구 중 한 명의 고향이라는데 마을사람들은 작은 공동체를 이뤄 살아간다고 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이 하얀 옷을 맞춰 입고 무리지어 행동하는 게 조금 찜찜해 보였다.

‘외지인이 조용한 시골마을에 들어가서 그 마을사람들에게 해코지 당하는 그런 내용 아닐까?’ 했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뻔한 영화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를 급하지 않게 살살 끌어당기길래

덤덤하게 그냥 따라가 봤다.

 

 

온화하고 밝은 표정의 마을사람들 속에서 그곳 공동체의 모습이 하나씩 보여지는데

은근하게 풍기는 묘한 분위기가 조금씩 거슬렸고

그런 과정도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한 전개과정이어서 특별히 긴장되지는 않았다.

뻔히 예상되는 수순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도 살살 끌어당기는 맛에 또 따라가게 됐다.

 

 

그러다가 전체 이야기의 1/3쯤 되는 지점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충격적으로 나왔다.

배우들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그리고 배우들은 그 마을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나는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낚시 바늘에 고기가 물렸는데도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동요하는 사람들을 달래기도 하고, 이해시키려고도 하고, 욕망을 자극하기도 하면서 살살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은 조용히 처리하고, 욕망에 자극된 사람은 그 욕망을 살살 자극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 상태 그래도 놔두면서 그들의 축제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야기는 사이비종교집단의 광기라는 뻔한 수순대로 흘러가는데, 나도 살살 끌어당기는 그 묘한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계속 따라갔다.

 

 

그렇게 축제는 점점 하이라이트를 향해갔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한명씩 사라져 가는데

욕망에 빠져든 이는 욕망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만 했고

옴짝달싹 못하는 이는 조여오는 올가미를 어찌하지 못한 해 끌려가기만 했다.

역시나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수순이었는데

마을사람들은 시종일관 차분하게 일을 진행했고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영화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을 느끼면서 그저 끌려가게 됐다.

 

 

그렇게 축제가 절정에 이르면서

마지막 남은 두 명의 처리만 남겨뒀는데

둘의 위치는 정반대였다.

한 명은 축제의 여왕으로 모셔졌고

한 명은 축제의 희생양으로 지목됐다.

역시나 예상할 수 있었단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끌려가던 이가 여왕이 되고

욕망의 불길로 달려가던 이는 희생양이 됐다.

그리고 여왕이 희생양을 신의 제단에 바치면서 영화가 끝나는데

영화가 끝나기 1초전에 비춰지는 여왕의 미소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가슴 속에 고통과 슬픔과 자격지심 같은 것들을 쌓아두기만 했던 여성은

올가미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에서

고통과 슬픔과 자격지심 같은 것들을 더 꾹꾹 눌러두기만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신의 제단에서 타오르는 희생양을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타인의 고통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던 남성은

욕망의 늪에 빠져들어서 허우적거리면서

타인의 고통과는 점점 멀어진 채 자신의 욕망만을 쫓아가다가

신의 제단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것이었다.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미소 짓는 여왕의 위치에 있을까, 고통 속에 울부짖는 희생양의 위치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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