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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뻐스데이, 막장을 넘어서 엽기인데 나를 붙잡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큰 아들은 중증장애를 가진 채 가만히 누워서 지내고 있고

가부장적인 둘째 아들은 적당히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채 그냥저냥 살아가고

틱장애를 갖고 있는 셋째 아들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개망나니로 살아가고

여장을 한 넷째 아들은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발현하기 위해 발광하고

동네건달 형에게 빠져 사는 막내 아들은 본드질 하다가 칼 들고 설치고

홍일점인 막내 여동생은 이 모든 게 귀찮아 스마트폰에 빠져 있고

큰 아들을 애지중지 돌보는 어머니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이 가족들 속에서 유일한 며느리는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 하면서 버티고 있는데

종잡을 수 없는 5차원의 여자가 셋째의 여자친구라며 등장한다.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없는데

캐릭터나 이야기들이 너무 작위적이라서

초반부터 흥미가 확 떨어졌다.

 

 

콩가루 가족들이 서로 지지고 볶고 하다가 어떤 사건을 통해 뭉쳐서 가족의 틀로 자연스럽게 합쳐지는 그런 뻔한 영화겠거니 싶었다.

그래서 초반 10여 분만에 그만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캐릭터들이 상상 이상인데다가 이야기의 흐름이 전혀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가서

“그래,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보자”라는 마음으로 따라가 봤다.

 

 

그렇게 그들이 난리치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큰 아들의 생일날 가족들이 전부 모인 거였고

그들이 모인 이유는 큰 아들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단 하나, 큰 아들을 더 이상 돌보기 힘들어서였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그런데 막장은 거기서 시작이었다.

큰 아들의 생일축하 겸 살인을 위해 모인 가족들이 서로 치고받고 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아픈 사연들이 하나씩 드러나는데

그 사연들이라는 게 상상을 초월하는 개망나니 사연들이 아닌가.

이건 막장의 수준을 넘어서 거의 엽기였다.

 

 

그렇게 그들의 사연들이 하나씩 펼쳐지고 보니

그 가족들은 한 핏줄도 아니었고

서로에 대해 애정은 고사하고 애증조차 말라버린 사이였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그런 관계였다.

그런데도 가족이라는 틀은 버리지 않고 모여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은 계속 그렇게 행동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바라보면 살아가는 이들이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 주며 치고받는 과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였다.

들추지 않아도 되는 걸 애써 들춰놓고는 약도 바르지 않고 또 다른 걸 들춰낸다.

그렇게 들춰낼 수 있는 걸 다 들춰내고 나서 난장판이 된 채로 영화를 끝내버렸다.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어정쩡한 화해나 봉합 없이 가족의 틈을 밀어붙일 수 있는 최대한까지 밀어붙여 놓는 거다.

그렇다고 가족을 완전해 해체하지도 않은 채 그 껍데기는 남겨놓는다.

가족이라는 껍데기 속에 난도질당한 시체들의 향연을 보라는 듯이.

 

 

아주 무거운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갔고

코믹한 이야기를 가볍지 않게 엮어갔고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어지럽지 않게 이어갔고

묵직한 주제의 이야기를 요령 있게 잘 펼쳐놓기는 했는데

내 취향의 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감독의 최근작인 ‘세자매’에 대한 기대도 사라져버렸는데

다음날까지 영화의 잔상이 없어지질 않는 거다.

그 잔상이 남아서 계속 내게 말을 걸었다.

“너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얼마나 다른 가족들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냐?”

그 잔상과 질문이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데

막장의 끝판왕인 영화 속 캐릭터들 속에서 내 모습이 문득문득 스치는 게 아닌가.

 

 

영화는 보고 하루가 지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기회가 되면 ‘세자매’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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