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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47회 – 겨울의 한복판에서

 

 

 

1

 

읽는 라디오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마흔 일곱 번째 불을 켭니다.

안녕하세요, 들풀입니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조금 악화된 위염이 발견됐습니다.

당시 검진 통보서에 의하면 “위암발생 가능성이 증가할 수 있다”라고 했고

1년 후에 내시경 검사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당연히 긴장을 했죠.

평소에 먹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서 이런 진단이 나온 것이 의아하기는 했지만

좀 더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먹는 것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술도 많이 줄이며 살았습니다.

가끔 맥주를 마실 때 약간의 더부룩함이 느껴져 신경이 쓰였지만 평소에 별다른 자각증상이 없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해가 바뀌고 병원에서 권장한 ‘1년 후 내시경 검사’ 기한이 되니 괜히 신경이 쓰이더군요.

“특별한 증상이 없으니 괜찮겠지” 하면서도

“위암발생 가능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려서 불편했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갖고 지내다보니 마음속에서 불안이 스멀스멀 자라나기 시작했고

그 불안 때문에 괜히 위암이나 위염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하며 불안을 키워가게 됐습니다.

내 마음속 불안은 내 스스로 만들어낸 걱정이 키우는 것이라며 마음을 달래봤지만

마음속에 꽈리를 튼 불안은 이미 뿌리를 내려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느니 그냥 내시경 검사를 받아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병원을 찾아 의사와 상담을 했습니다.

덤덤하게,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의사에게 얘기를 했더니

의사는 “내시경 결과를 보고 얘기하자”고 짧게 대답하고 말더군요.

내시경을 하고 다시 의사 앞으로 갔더니

의사는 “염증들이 곳곳에 보이기는 하지만 심각한 것들은 아니다. 다음 주에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니까 그때 다시 와달라”고 무미건조하게 결과를 얘기했습니다.

그 정도 얘기라면 이미 건강점진에서도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더 물어봤지만

의사는 짧게 단답형으로만 대답할 뿐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원무과에서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허탈과 안심과 짜증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괜히 불안하게 사람을 만들어놓고

정작 그 불안 때문에 찾았을 때는

속 시원한 답변 없이 찜찜함만 안겨주는 곳이 병원이었습니다.

이렇게 천박한 의료시스템에 대해 욕을 퍼붓고 났더니

내 마음속 불안은 불쾌감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불편한 내 마음을 쓰다듬었습니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하니 괜한 걱정은 덜었네.”

“덕분에 술도 줄이고 건강도 챙겼으니 이득을 본거 아니야?”

“이번 기회에 내 마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지.”

“그냥 이렇게 출렁이면서 살아가는 거야.”

불쾌감은 불안보다 온순해서 얼마 후 마음이 진정됐습니다.

 

 

2

 

추위가 막 시작되는 12월에는 따뜻한 차 한 잔으로도 온기가 전해집니다.

거기에 연말분위기까지 더해지면 평소에 차갑던 마음에도 훈훈한 기운이 퍼집니다.

반면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1월에는 뜨거운 국물로도 냉기를 몰아내기 힘듭니다.

새해가 되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차가운 칼바람까지 더해지면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버립니다.

 

춥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빠듯하기도 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입니다.

그러다보니

움츠러드는 몸만큼

마음도 움츠러드는데

움츠러들면 들수록 더 추워지기만 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려고 하지만

내 마음은 이런저런 불안과 불만을 쏟아내기 일쑤고

세상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워보기라도 하면

불편하고 불쾌한 소음들만이 들려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낯선청춘의 페이스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있는데

sns에서 이 사진을 보니

마음이 펑 뚫리더군요.

춥고 흐리고 외롭고 불안한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백예린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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