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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회)

 

1

 

tv를 켜면 채널이 무진장 있습니다. 얼마 전에 종합편성채널까지 개국을 해서 취향대로 골라볼 거리는 더 다양해졌다고 하는데, 막상 볼만한 거는 정말 없습니다. 그렇게 재미없는 것들을 만들어서 무수히 쏟아내는 능력을 보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 tv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돌리고 나서 꺼버립니다. 그리고 라디오를 켭니다. 라디오 채널도 많아서 여기저기 돌려봅니다. 다행히 괜찮은 음악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듣다보면 tv보다는 여유로워집니다. 하지만 진행자들끼리만 히히거리면서 농담을 주고받거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상적인 멘트로만 일관하는 프로그램이 곧 실증이 납니다.

 

인터넷에도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많은 방송들이 널려 있습니다. 너무 많아서 정보를 알고 있지 않으면 어떤 방송이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소문을 통해서든 웹서핑을 통해서든 재미있는 방송을 찾게 되면 즐겨찾기를 해두고 자주 듣게 됩니다. 그 자유로움과 깊이에 금방 빠져버려서 광팬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유로운 인터넷 방송도 잘난 사람들의 재능이나 기술을 자랑하는 공간 이상은 아니더라고요.

 

저는 돈도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고, 세상에서 먹어주는 명성도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나이 사십을 넘겨서도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서 쓰는 한심한 노총각입니다. 한마디로 허접한 인간이죠. 인터넷도 안 되는 집에는 15년 정도는 된 낡은 노트북이 하나 있는데, 저한테는 tv, 라디오와 함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이 낡은 도구를 갖고, 자판을 빨리 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을 사용해서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같이 허접한 사람도 진행할 수 있는 라디오를 생각해봤고, 오늘 첫 방송을 시도해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의 역사적인 첫 방송을 자축하는 노래를 하나 듣겠습니다.

롤러코스터의 ‘힘을 내요 미스터 김’

 

 

오늘도 많이 바쁜 가요

또 자꾸 짜증이 나나 봐요

벌써 몇 번째 한숨 쉬고

끊었던 담배 다시 피우 나요

 

거울을 봐요 충혈 된 두 눈에 언제나 용모단정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등만 대면 잠이 와요

이름을 말해 봐요 미스터 김

당신이 꿈꾸던 삶은 어디에

 

하고 싶었던 일 뭔가요

아직도 늦지 않았어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세요

멋있게 행복하게 사는 거죠-

 

어어우 어어~ 어어우 어어~

 

잘 다려진 와이셔츠에 번쩍이는 검은 구두

무표정한 얼굴 뒤에는 무슨 생각 하나요

이름을 말해 봐요 미스터 김

당신이 꿈꾸던 삶은 어디에

 

기죽지 말아요

어깨를 쫙 펴고 당당히 맞서요

이제부터라도 신나게 맘대로 멋지게 사는 거죠

 

하고 싶었던 일 뭔가요

아직도 늦지 않았어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세요

멋있게 힘을 내요 미스터 김

 

 

2

 

며칠 전 엄청 추운 날이었습니다.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채 재미없는 tv를 보면서 하루를 게기고 있었죠.

오후 늦게 밭일을 마치고 들어오신 부모님이 목욕을 하러 간다기에 나도 따라나섰습니다.

목욕하고 싶고 싶어서가 아니라 너무 길어버린 머리를 자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사는 촌 동네는 목욕이나 이발을 하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마침 이날 동생이 데리러 온다고 해서 끼어서 나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부모님과 동생과 조카는 목욕을 하러가고

저는 동생 동네를 두리번거리면서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커다란 간판의 미용실이 보여서 들어갔습니다.

아파트단지라서 그런지 내부도 깔끔하더군요.

제가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이 머리를 깎고 있어서 저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죠.

조금 있으려니까 어떤 여자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애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첫 눈에도 우아하고 도도해 보이는 그 여자가 들어오자 다른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던 주인이 잠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미용사가 안쪽에서 나오더니 나보다 뒤에 온 그 여자의 아이를 의자에 앉히는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제가 먼저 왔는데요”라고 한 마디 했더니, 그제야 주인이 저를 보면서 “조금 있다 제가 해드릴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가슴 속에서 ‘욱’하고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나가서 다른 미용실로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추운 날씨에 미용실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도 귀찮고

그렇게 성질부려봐야 나만 더 짜증날 거 같아서

‘이런 일 처음도 아닌데...’라면서 마음을 식혔습니다.

 

금방 마음은 진정됐고, 내 앞에 머리를 깎던 사람이 끝나서 제가 의자에 앉았습니다.

주인은 아주 숙달된 솜씨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기다리던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 만에 머리를 깎고 나서 거울을 보니 아주 깔끔해보였습니다.

‘가격이 비싸면 어떡하나’ 하고 잠시 걱정했는데, 8천 원이면 비싼 편도 아니어서 좋았습니다.

상쾌한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부모님과 동생과 조카가 목욕을 마치고 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근처 갈빗집으로 향했습니다.

조카가 “삼촌, 손 잡아줘”라고 해서 환하게 웃으면서 조카의 손을 잡았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갈빗집에 가서는 양념갈비와 홍어를 시키고 맥주도 한 잔 했습니다.

매일 꾸역꾸역 집어넣는 밥이 아니라 꼭꼭 씹어 먹는 갈비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술이 얼마나 달았는지...

세상 사람들이 다 우습게 대하는 삼촌에게서 고기를 받아먹는 조카가 얼마나 귀여운지...

잘못했다가는 주책없이 울 뻔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성민이 오늘 갈비에 맥주 한 잔 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밤에 혼자서 술을 먹고 있을 사람들...

술로도 잠이 오지 않아서 야동을 보면서 밤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행복한 순간에 왜 하필 그런 사람들이...

 

오늘도 그런 분들이 많겠지요?

 

혼자서 술을 먹고 있을 분들, 야동 보면서 딸딸이 치고 있는 분들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자우림의 ‘그래, 제길!’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해놓은 것 없이

가진 것 하나 없이

그럭저럭 되는대로

그런 하루 하루

 

나도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나도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뜻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믿는 사람 없이

진짜 사랑 한 번 없이

그럭저럭 되는대로 그런 하루 하루

 

나도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나도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뜻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맘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3

 

영화 얘기 하나 할까요?

제가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제 막내 동생이 영화 쪽 일을 하기 때문에 가끔 동생이 저를 위해서 영화를 보내줍니다.

그렇게 봤던 영화 중에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몇 편 있었습니다.

벨기에 출신 형제 감독인데요, 저도 동생이 구워준 영화를 보면서 이런 감독이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유럽에서는 꽤 유명한 감독이더군요.

원래 다큐멘터리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극영화를 다큐멘터리처럼 찍어서 영화가 아니라 실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사회의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를 다루는 데, 너무 사실적이어서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그중에 ‘로제타’라는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배경과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 얘기를 따라가기가 좀 어렵습니다.

프랑스 어딘 쯤인 거 같은데, 10대 후반인지 20대 초반인지 잘 모르지만 한 여자가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 됩니다.

수습 기간이 끝났다는 게 해고의 이유죠.

그래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데 그게 쉽나요.

그 여자의 이름이 로제타입니다.

 

로제타가 사는 동네는 어느 외각 공터에 트레일러들로 집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동네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허가 판자촌 정도 될까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사십대로 보이는 엄마는 심한 알콜중독자입니다.

어딘가에서 구해온 헌 옷을 수선해서 파는 일로 살아가는데, 술 먹을 돈이 없으면 주변 남자들에게 몸을 내주고는 술을 얻어먹습니다.

일자리는 구하지 못하고, 엄마가 수선한 옷은 헐값에 떨이로 처리하고, 알 수 없는 병으로 배는 엄청 아픈데, 엄마는 맥주 하나만 먹게 해달라고 조르고, 창틈으로는 찬바람이 들어와서 휴지로 막고는 드라이어로 아픈 배 위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구질구질한 삶 그 자체입니다.

 

그렇게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데 어느 길거리 와플판매대에 있는 남자아이가 로제타에게 관심을 보여서 일자리를 소개해줍니다.

자기 사장이 한 사람을 해고 했는데 그 자리에 로제타를 소개한 거죠.

누군가가 쫓겨나야 그 자리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게 그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로제타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 아이는 트레일러가 아닌 건물에 살지만, 그 건물은 로제타가 살아가는 트레일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살아가는 그도 중학교 때는 마루운동 선수였고, 지금은 드럼을 배우면서 꿈이라는 걸 갖고 있습니다.

 

술을 먹기 위해 몸을 파는 엄마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진 로제타는 “엄마는 술 하고 그 짓 밖에 모르냐”면서 엄마를 알콜중독자 치료소 같은 곳으로 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곳이 끔찍하게 싫었던지 도망을 가려고 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로제타는 “갔다 오면 중고 재봉틀이라도 사줄께”라고 달래보지만 엄마는 “나 정말 거기 가기 싫어”라고 할 뿐입니다.

엄마가 밀치는 바람에 진흙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로제타를 두고 엄마는 어디론가 도망쳐 버립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로제타가 또 해고됩니다.

이유는 사장의 아들이 방학 동안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에 로제타가 하던 일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또 일자리를 찾아서 돌아다녀야 하는데 배는 수시로 아프기만 합니다.

그런 로제타를 보고 로제타의 일자리를 소개해줬던 남자가 ‘자신이 와플을 몰래 만들어서 팔고 있는데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로제타는 밤에 몰래하는 부업 말고 진짜 직업을 원한다면서 거절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사장을 찾아가 그 남자 아이의 행동을 꼬질러서 쫓아내고는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남자가 퇴근하는 로제타를 쫓아가서 “왜 그랬어?”라고 물으니 로제타는 망설임 없이 “일이 필요해서”라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비열하게 일자리를 차지해서 집으로 돌아 왔는데, 엄마가 술이 떡이 돼서는 집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던 로제타는 공중전화로 가서 사장에게 전화를 겁니다.

“로제타예요. 저 이제부터 일하러 가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짧게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서 다시 트레일러로 돌아옵니다.

달걀 하나를 삶아서 먹고는 아픈 배를 쓸면서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깁니다.

 

그때 가스가 떨어져서 무거운 가스통을 들고는 관리인에게 가서 가스를 사 옵니다.

더 무거워진 가스통을 킹킹거리면서 들고 오는데, 로제타 때문에 잘린 남자가 시끄러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로제타 주위를 빙빙 돕니다.

애써 무표정하게 걸어가던 로제타가 가스통을 떨어뜨리고 배를 만지며 쓰러져서 울고 맙니다.

꾹꾹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고마는 로제타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로제타의 소원은 “보통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직업이 있고 친구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로제타에게 말을 걸어봤습니다.

 

“너랑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에 살고 있고, 나이도 니 엄마 또래이지만,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게 소원이거든.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그렇게라도 울 수 있는 니가 부럽더라. 세상에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

 

 

4

 

저한테 편지 두 통이 왔습니다.

물론, 제 쪼대로 아무렇게나 해보는 이 방송을 위해서 보내온 편지는 아니지만 소개해 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답장 한 번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이렇게 두 해가 지나고 년말이 다되어서야 글을 올립니다.

편지를 꼭 한번쯤은 해야하겠다고 마음을 갖고 있었음에도 하루하루 지나다보니 그만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래전 책을 보내주셨을 때 답장을 꼭 해야겠다며 스크랩을 할려고 빼놓았던 신문지 하단 한 귀퉁이에 주소를 옮겨 적어놓고는 깜빡 읽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저께 우연히 그때 그 신문을 뒤척이다가 주소를 발견하고는 정말.. 정말...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급히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염려 덕분에 이곳에 있는 저도 잘 지내고 있답니다.

요즘 들어 싸늘한 기온에 점점 추운 겨울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합니다. 주소를 보니 집이 제도주이시네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때 한 번 가보고는 그 뒤로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못가 보았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 TV 프로 1박2일을 통해 제주도의 멋진 경치와.. 올래길, 해수욕장, 폭포 등등을 보았지요. 혹시라도 제가 출소 후 제주도에 갈 일이 생긴다면 한 번 찾아 뵈었으면 해요.... ^ ^

어느 새 용산참사가 발생한지도 3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2012년 여름쯤은 아마도 특사가 있어 출소하지 않겠어요? 새로운 대통령을 야당쪽에서 출마해 당선되는 날 저희의 억울함과 말도 안되는 재판부의 판결을 뒤엎기 위해 재심 청구를 하고 무죄임을 밝혀야 되지 않겠어요. 그래야 불에 타 죽은 동지들의 한을 풀어주지요. 그리고 억울하게 지금도 감옥 안에서 구속 수감된 많은 동지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옵니다. 세월 앞에 모든 것들은 서서히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가봅니다.

저는 공주교도소로 이감되어 장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지루함을 잊기 위해 출력을 했더니 그래서 시간이 잘 흘러 가는 것 같네요. 얼마 있으면 년말 크리스마스네요. 성민씨는 하나님을 믿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옛날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지냈던 일이 많이 생각납니다. 송년회와 신정... 곧이어 구정이 있지요. 이맘 때 쯤되면 시골에 계시는 연로하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합니다.

제 고향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 이라고 합니다. 현재 제가 살고 있던 곳은 서울 용산이구요. 지금은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 둘만 살고 있어요. 딸아이는 벌써 사춘기가 되어 아빠인 저로서는 많이 걱정이 됩니다.

뒤늦게 결혼을 하여 아직 아이가 어려요. 그래도 후회는 않아요.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한 번도 빠짐없이 면회를 오고 있어요. 아내와 어린 딸아이에게는 미안함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지요. 이제 조금만 고생하면 좋은 날이 있지 않겠어요.

성민씨도 힘내세요. 환절기에 감기조심 하시고 건강하세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공주에서 재호 드림

 

 

안녕하세요.

담장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쌓다보니 또 한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바다를 건너고 산 넘어온 따뜻한 마음 많이 감사했습니다.

사극 대사처럼 우라질 놈의 세상, 국익만 있고 국민은 없는 세상을 담이 높아 보지도 듣지도 못해 아무 생각 없이 밥만 축내며 어제 같은 오늘을 덧없이 보내고 있습니다.

운동장 구석에는 이름 모를 잡초가 지치지도 않고 초록을 지키고 있습니다.

삭풍이라도 몰아쳐야 필부의 가슴이 다시금 뜨거워질텐데 말입니다.

평화의 땅 제주도 옹이처럼 굳어있는 뉴스와 웃음을 준 소식들이 교차하는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신혼여행도 못시켜준 아내랑 함께 말입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불쑥 찾아가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금년 한해는 잘 보내셨나요. 아쉬움보다 작은 성취들의 기쁨 주는 일상이였으리라 믿습니다.

壬辰 새해에는 조금 더 자주 웃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카와 그 수족들, 천박하고 파렴치한 이 땅 자본들까지 정리해고 시킬 생각하니 생기가 돌기도 합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해고시키는 세상도 반드시 올거라 믿습니다.

내일부터는 공장을 포위하는 투쟁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한진에서 불어오는 동남풍을 들불로 만들어야 할텐데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응원 많이 해 주세요.

오지 않을 행운 따윈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하고 고맙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며 공장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뜻 하시는 일 모두 무탈하게 성취하는 멋진 한 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1. 12. 6

화성옥에서 한상균 書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나 같은 놈을 생각해주는 사람은 전과자들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짝 웃어봤습니다.

 

이번 연말에 구속된 분들에게 책을 한 권씩 보내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책도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속상했었는데

두 통의 편지를 받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전국 여기저기에 있는 교도소의 담장 안으로 제 목소리가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가 직접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워낙 노래를 못 하기 때문에

음정과 박자가 개판이겠지만

제 성의라고 생각해서 들어주세요.

 

음.... 음....

지...

지...

흐~음!

지난 밤...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음...

 

 

지난 밤 꿈속에서 온종일 비 내리더니

창밖에 키 작은 목련꽃이 하얗게 봄을 피웠네

 

무심코 바라보다

빙그레 웃음 흘리다

문득 가슴 저미게 불러봤소

창살 아래 사랑아

 

그대와 함께 있기에 내 삶은 더욱 의미가 있고

그대와 함께 걷기에 우리 갈 길이 뚜렷해지네

 

사무치는 그리움 따라 밤새도록 비바람 불더니

창밖에 키 작은 목련꽃이 하얗게 봄을 피웠네

 

 

5

 

이제 첫 방송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게 뭐야!”라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음...”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뭐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이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저처럼 허접한 사람이 혼자서 주절거려보는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는 것만 해도 고맙습니다.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는

잘난 사람들만 나대는 게 아니라

개나 소나 허접한 것들도

한번쯤은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싶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도 하루를 그냥 버틴 사람들...

술로 밤을 견디는 사람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

답답함으로 꽉 찬 가슴에 다시 답답함을 구겨 넣는 사람들...

이런 사람이 한 분이라도 오셔서 제 손을 잡아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연주음악을 하나 들으면서 첫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읽는 라디오이기 때문에 가사가 없는 연주음악을 들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악기 하나를 생각해 보세요.

피아노여도 되고, 바이올린이나 트럼펫도 상관없고, 전자기타나 드럼도 괜찮습니다.

그 악기 하나로 여러분이 혼자서 연주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저는 그 연주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적어보겠습니다.

 

 

잔잔한 바다 위에 요트가 하나 떠있습니다.

겨울치고는 따듯한 날이라서 참 좋습니다.

맑고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속에

하얀 돛을 단 갈색 요트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너무 편안하고 아름답습니다.

저기 수평선 쪽을 보세요. 뭔가 움직이고 있어요.

돌고래일까요?

가까이 가보죠.

 

앗!

아~ 사람이었군요.

혼자서 수영하고 있는 거겠죠.

이렇게 맑은 날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아무래도 겨울바다라서 조금 쌀쌀하네요.

 

저기 보세요!

갈매기 한 쌍이 날아가고 있어요.

사랑하는 연인 갈매기인가 봐요.

너무 사랑스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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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방송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방송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공개합니다.

성민이 mk1029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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