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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27회)
1
지난 일요일, 밭에 가셨던 아버지가 짜증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월요일부터 쪽파 작업을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기 위해 가셨는데
누가 몰래 다 자란 쪽파를 뽑아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우리 밭은 마을 외곽에 있는데 바로 옆에 별장 몇 채와 허름한 아파트가 있습니다.
마을과 떨어져 외진 곳에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살다보니 해마다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밭 한쪽에서 몰래 쓰레기를 태우다가 쌓아놓은 비료까지 태워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밭 한편에 몰래 텃밭을 만들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애써 키운 작물을 몰래 뽑아가다가 다 자라지 않은 작물들까지 밟아버리는 일도 처음이 아닙니다.
힘들 게 키워놓은 쪽파 밭의 한쪽이 뽑혀나간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지으시는 늙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짜증이 확 일었습니다.
가격으로 따지면 몇 천원 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해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까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일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우습고
밭에다가 CCTV를 설치할 수도 없고
별장과 아파트를 일일이 다 방문할 수도 없고...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모질게 마음먹으면 누가 그랬는지 찾아낼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남에게 싫은 소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시는 부모님은 그런 걸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늙으신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짓고 있는 밭입니다. 몰래 뽑아가지 말아주세요”라고 팻말을 만들어서 붙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괜히 아파트와 별장에 사는 주민들을 도둑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고
토요일 밤에 몰래 남의 밭에서 쪽파를 뽑아가는 그 사람의 삶이 어떤 삶인지도 예상이 되기 때문에
그냥 상한 속만 달래고 말았습니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사려 깊은 신부님이었다면 은촛대를 훔친 장발장에게 돈까지 얹어서 줬겠지만
속 좁은 저는 그렇게는 못하겠고
까치들을 위해 가지 끝에 감을 몇 개 남겨두는 농부의 지혜로 생각해보자고 위안을 삼아보다가도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만 밀려올 뿐입니다.
그렇게 짜증나는 일요일을 보낸 그날 밤
한 가지 생각에 애써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덕분에 내 문제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네...”
김정호의 ‘하얀 나비’ 듣겠습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음~~~~~~~ 음~~~~~~ 음~~~~~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음~~~~~~~ 음~~~~~~ 음~~~~~
2
짜증나는 일요일을 보낸 다음날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차가운 바람까지 몰아치는 추위다운 추위가 닥친 것입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었지만 쪽파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그적 어그적 밭으로 향했습니다.
밭에 들어서면 항상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우정이가 보이지 않아서
개집을 들여다봤더니
와~
우정이가 밤사이에 새끼를 낳았습니다.
제 주먹만 한 조그만 새끼 다섯 마리가 우정이 품속에서 열심히 젖을 빨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우정이는 개 나이로 환갑이 지난 8살에 또 새끼를 낳은 것이라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 1주일 정도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새끼들을 돌봐야 하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어미 품속에서 젖만 빨고 있는 새끼들이 앙증맞기도 해서
쪽파 작업을 하다가도 수시로 우정이를 보러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우정이는 가만히 웅크린 채 저를 바라봤습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을 품고 있는 우정이 머리를 쓰다듬어줬더니
고개를 숙이고 살며시 눈을 감더군요.
우정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마음속으로 “우정아, 수고했다”라고 얘기해줬습니다.
3
쪽파 작업에 대한 얘기를 해드릴까요?
쪽파는 심어서 2~3달이 지나면 어느 정도 자라서 작업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1년에 두 번을 할 수 있는데
봄에 심어서 여름에 작업을 하거나
가을에 심어서 겨울에 작업을 합니다.
비교적 쉽게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기는 하지만
작업을 하는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대량재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작물에 비해 가격등락이 심한 편이 아니라서
나이 드신 분들이 부지런하기만 하면 재배하기에 좋은 작물이기도 합니다.
먼저 밭에 가서 다 자란 쪽파들을 조심스럽게 뽑아서 담아옵니다.
창고로 와서는 면도칼로 뿌리 부분을 2~3mm 정도 잘라냅니다.
그리고는 콘프레션이라는 공기압축기를 이용해서 뿌리 쪽에 묻어 있는 흙을 털어냅니다.
여기까지 하는데 보통 2~3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 다음부터가 본격적인 작업입니다.
가느다란 쪽파 하나하나를 일일이 살피면서
뭉개 진 부분을 때어내고
줄기 끝에 누렇게 된 부분이 있으면 손으로 잘라냅니다.
일이 익숙해지기 전에는 하나씩 하느라고 시간이 엄청 걸렸는데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면 몇 개를 한 손에 잡고 해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 무수한 쪽파들을 일일이 다 다듬어야 하는 일은 시간이 꽤 많이 걸립니다.
그렇게 다 다듬은 쪽파는 1kg씩 띠로 묶고
그 묵음이 10개가 되면 상자에 조심스럽게 넣습니다.
부모님 두 분이 하루 종일 작업을 하면 2~3상자 정도 작업을 할 수 있고
제가 거들면 1~2 상자 정도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업을 해서 대형마트로 보내는데
시세가 좋지 않을 때는 상자 당 5천원에서 1만원까지 나오기도 하고
시세가 좋을 때는 5~6만원이 나오기도 합니다.
겨울 쪽파는 눈이 오면 작업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상태도 나빠지기 때문에
육지에 폭설이 와서 물량이 줄어들면 때로는 10만원 이상이 나가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난로를 피우게 되면 쪽파가 금방 시들기 때문에 발밑에 조그만 전기스토브를 켜고 온기만 조금 느끼면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또 일일이 쪽파를 다듬다보면 눈이 맵기 때문에 문을 닫고 작업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의 추위는 각오하고 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춥다고 해도 실내에서 하는 작업인데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추위에 익숙해져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쪽파 작업의 최고의 장점은 시간이 정말 잘 간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신경을 집중해서 일일이 쪽파를 다듬고 있다 보면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렇게 작업을 하고나면 고개와 허리가 조금 뻐근하기는 하지만
추운 겨울에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재미없는 TV만 보는 것보다는 몇 배는 났습니다.
부모님은 쪽파 작업을 하고 있으면 이런 저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 합니다.
저도 쪽파 작업을 하는 순간만큼은 이런 저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너무 좋습니다.
4
짜증나는 일요일과
매서운 월요일을 보내고 난
화요일은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기온도 올라가고 오후에는 햇빛도 볼 수 있었습니다.
강아지들은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채 어미 품속에서 젖을 빨고 있지만
하루 사이에 애기 울음소리가 조금 커졌고 움직임도 조금 활발해졌습니다.
월요일 작업을 해서 보낸 쪽파 가격이 한 상자에 5만5천원이 나왔다고 합니다.
어제는 두 상자를 보냈는데, 오늘은 세 상자를 보냈습니다.
밭에서 똥을 쌌는데 굵은 똥을 시원하게 쌌습니다.
치질 때문에 똥을 싸고 나면 제대로 걷기가 힘든데, 이렇게 굵은 똥을 싸고 나면 아주 개운합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봤더니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얘기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제작을 위한 펀드모금이 목표액인 1억원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한 달 만에 소액모금으로 1억원을 넘길 수 있는 대중의 힘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추리소설을 읽다가 재미없어서 다른 책으로 바꿔 들었는데 이 책이 재미가 있습니다.
혁신학교의 모델로 떠오른 남한산초등학교를 졸업해서 성인이 된 7명의 경험들을 모아놓은 책인데, 나름대로 진지하고 활기 있는 글들이 제게 활력을 전해줍니다.
1년 내내 계속되는 정치놀음에 신물이 나고 있는데, 오늘부터 시작하는 대통령 선거에 모처럼 마음에 드는 후보가 등록을 했습니다.
2008년 여름 기륭전자 앞에서의 숨 막힐 것 같았던 농성장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저로서는 김소연이라는 이름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햇살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몸과 마음으로 마음껏 느낀 오늘
울산과 평택의 송전탑 위에 올라가 있는 이들도 온기를 느꼈을까요?
자우림의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를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아저씨 어서 일어나요
길에서 자면 큰일나~
무슨 일이 있었나?
빗속을 거닐었나?
저 까만 발로
꿈꾸고 있는 걸까?
뭐 할 말이 있을까?
어디 얘기를 들어볼까
길에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 버릴 거예요
아저씨 일어나 기운 내요
아저씨 어서 일어나요
길에서 자면 큰일나~
무슨 일이 있었나?
빗속을 거닐었나?
저 까만 발로
꿈꾸고 있는 걸까?
뭐 할 말이 있을까?
어디 얘기를 들어볼까
길에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 버릴 거예요
아저씨 일어나 기운 내요
무슨 일이 있었나?
빗속을 거닐었나?
저 까만 발로
꿈꾸고 있는 걸까?
뭐 할 말이 있을까?
어디 얘기를 들어볼까
길에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 버릴 거예요
아저씨 일어나
아저씨 일어나
아저씨 일어나 기운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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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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