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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스워 보이냐? (30회)
1
사람들 넘치는 그런 곳은 가기 싫어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면을 쓴 것처럼
사람들 넘치는 그런 곳은 가기 싫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그런 인파에
거기 말고 따뜻한 우리 집에서
그냥 나와 못 다한 얘기나 할까
사람들 넘치는 그런 곳은 가기 싫어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밝혀두고
사람들 넘치는 그런 곳엔 가기 싫어
흐르고 흘러도 멈춰 있는 것 같은 시간 속
크리스마스 이브에 보내드리는 서른 번째 방송은 시와가 부른 ‘크리스마스엔 거기 말고’로 시작했습니다.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도 괜히 가슴이 설레게 만드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됐습니다.
오늘 같은 날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가족이나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계신 분은 열 명 중 1~2명에 불과할 겁니다.
열 명 중 5~6명은 평소와 다름없이 그렇고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고
열 명 중 1~2명은 혼자서라도 이날을 즐기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을 것이고
열 명 중 1명은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무서운 하루를 견디고 있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이 방송을 보내드리고 있는 저는 혼자서라도 이날을 즐기기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 속하겠군요. 하하하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해 보내 드리는 이 방송을 보시고 계신 여러분
이런 날 인터넷으로 이런 방송을 보고 계신 여러분의 삶이 제 눈에 훤히 보입니다.
히히히히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이런 날 이런 방송을 진행하는 저나
이런 날 이런 방송을 들여다보는 여러분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니까요.
그게 더 기분 나쁜가요? 히히히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디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서 허접한 이 방송을 보시고 계신 여러분, 따뜻한 우리 집에서 그냥 나와 못 다한 얘기나 할까요?
2
신을 믿든 안 믿든 서로에게는 예수에 대한 이미지들이 하나씩 있겠지요?
제가 어렸을 때 봤던 만화영화 중에 인상 깊었던 프로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어떤 노인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해주고 떠날 때 꽃씨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불가사의한 일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고, 그 마을이 아름다운 마을이 될 수 있도록 꽃씨를 나눠줘서 희망을 뿌리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인자하고 생각이 깊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가졌던 예수님의 이미지는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세상을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의 세상은 온갖 불의가 판치면서 사람들을 짖누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저항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시대의 요구였습니다.
거짓된 사랑과 희망을 설교하는 타락한 종교를 비판하면서 참된 사랑과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혁명가들이 우상이 되던 시대였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살아 숨 쉬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이나 문익환 목사님이나 로메로 주교님 같은 분들이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제 청춘기의 예수님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울산으로 향했던 시기는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무너지고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혼란과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광풍 속에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목숨을 건 투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한편에서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성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관료들과 출세주의자들이 설쳐대기 시작했고요.
혼란과 변화의 2000년대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중심을 잡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낮은 곳으로 더욱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때는 마음을 기대는 정신적 쉼터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모델로서의 예수님은 사라지고 그냥 삶과 대중들만을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제 삶에서 예수님의 이미지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나이 사십을 넘기고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온몸으로 실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점점 미쳐 날뛰고 있는데 진보는 거짓된 환상만을 심어주고, 서로의 삶은 고립되고 쪼개져 나가기만 했습니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절망이 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때 막연히 예수님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거창한 뭔가를 바라지 않더라도 그냥 내 옆에서 내 손을 잡아주기만 하면 되는 그런 사람
패잔병 같은 중년이 되 버린 제게 예수님은 그런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3
높고 높은 보좌를 떠나
하늘영광 버리고
낮고 낮은 우리를 찾아
내려오신 하나님
절망 속에 헤매는 인간
한사람 또 한사람
만나주시기 위해
내려오신 주님
그분은 예수
아름다운 그 이름 예수
병든 자 고치며
눈먼 자 뜨게 한
능력의 이름 예수
오~ 예수
그의 이름 영원하여라
죽은 자 살리며
모든 눈물 닦아준
하나님 아들 예수
넓고 넓은 편한 길 떠나
세상 영광 버리고
좁고 좁은 고난 길 따라
죽임당한 어린양
죄악 속에 빠진 인간
한사람 또 한사람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
송정미씨가 부른 ‘예수’였습니다.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해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셨을까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들을 이끌고 구원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전지전능한 모세와 같은 모습의 예수님은 이스라엘민족의 호전성이 느껴져서 싫습니다.
시대의 풍랑을 이겨내면서 저 앞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독려하는 문익환 목사님이나 문정현 신부님 같은 예수님은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 먼 곳에 계십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랑의 밥을 나눠주고 계시는 최일도 목사님과 같은 예수님은 왠지 미덥지가 못합니다.
우리 같은 것들을 받아주지 않을 소망교회나 순복음교회 같은 곳에 계신 예수님은...
제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계속 변했듯이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예수님의 모습은 다양하지 않을까요?
이명박 장로님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는 예수님은 저의 예수님은 아닐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예수님도 그렇겠지요.
교회를 나가지도 않고 신을 믿지도 않는 제 곁에도 예수님이 있을까요?
만약 제 곁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벋어날 수 없는 가난 때문에 가난에 익숙해지려고 끝임 없이 노력하고 있을 것이고
외톨이여서 혼자 지내는 것에 몸서리쳐지도록 익숙해져 있을 것이고
기침을 콜록거리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 예수님이 오랫동안 저와 같은 삶을 살아오셨다면
죽을 용기가 없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테고
야동에 빠져서 몸과 마음이 망가졌을 테고
성추행을 저지르고 도망쳤을 테고
다섯 살짜리 조카의 뺨을 후려갈겼을 테고
부모님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마음의 상처를 줬을 테지요.
한마디로 개망나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만약 제 곁에 그런 예수님이 계시다면
그 분은 자신이 예수라는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4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벋어날 길 없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썼던 소설의 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목소리 한 번 들려달라고 애걸복걸 하지 않을 테니까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크크크
웃기는 얘기지만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수한 사람들의 얘기를 그저 듣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하게 기도하던 내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아픈 사람 때문에 아파해야 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혼자 묵묵히 바라보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많이 미안해지더라고요.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해서...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 친구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도 외롭고 힘들고 아플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뭔가 바라지 말고
그냥 나한테 얘기를 하세요.
나도 그냥 듣고만 있을게요.
내가 하나님처럼 마음이 넓지 못해서
어줍지 않게 이것저것 얘기를 해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얘기에 힘들어할지도 모르고
가끔은 나도 힘들어서 짜증을 낼지도 모르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돼서 울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이 외롭고 힘들고 아플 때
그냥 옆에 있어주고 싶어요.
내 말에 동의하는 거죠.
그럼, 우리 지금부터 친구다.
친구끼리는 말 놓고 지내는 거고.
이제부터 우리는 친구니까
너를 그냥 ‘하나’라고 부를게.
내 친구 하나야
우리는 하나잖아.
그치?
5
지난 주에 1주년 특집 방송을 내보내고
이번 방송을 준비하고 있을 때
‘노동목사’님이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성탄축하 메시지인 샘이지요. 히히히
파업77일. 감옥 3년. 철탑 투쟁 중, - - - 뭔가 혁명의 싹이 돋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라디오인터뷰이다.
한상균 동지의 삶은 우리의 희망이다.
노동자세상을 이루는 기운이 감돈다.
투쟁과 혁명의 이야기이다.
한상균 동지와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진 처절한 국민(노동자 민중)들이 철탑주변을 가득 덮어야 한다.
온 민의 한으로 외치는 소리가 하늘을 대포처럼 진동한다.
한상균 동지가 마이크로 연설하는 것이 지방미디어의 연결, 연결된 민중들의 - 라디오를 통하여 소통하고 전국에 울려 퍼지며 전 국민이 일사분란하게 혁명군으로 움직일 때 우리의 혁명은 성공한 것이며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지고 시작된다.
#* 미국에 항의하는 젊은 군인 차베스를 미군 중앙정보국이 체포하려한다.
그 헬기로 잡아가려 출발하는 소식은 언더 라디오(관변방송은 미제국이 사용)로 전국민에게 중계방송이 된다.
헬기가 차베스의 집근처에 왔을 때 조직된 지역라디오 방송을 듣고 몰려나온 국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다.
10만, 20만 점점 - 가득 메운다.
헬기가 내릴 자리가 없었다.
그 헬기를 향하여 국민들은 외친다.
한목소리로 차 붐(차베스를 지키자)을 연호하는 소리가 천둥 치듯 계속된다.
한날. 그날이 차베스가 혁명에 성공하는 세계적인 민중들의 투쟁의 날이다.
글쓰기 라디오가 환상적인 분위기의 각색이 혁명에 필요하다.
투쟁과 혁명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송이 되라는 ‘노동목사’님의 메시지를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봤더니
부산과 울산에서 연이어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고 난 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용역이 투입됐고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가 목숨을 끊었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전 간부가 몸을 내 던졌습니다.
아~
절망을 넘어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발버둥 치고 또 발버둥 쳐 봤지만
세상은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나아가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노동목사’님의 메일을 읽고
두려움에 휩싸인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 방송이 해야 될 일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떨어져 있는 제가
이 방송을 투쟁과 혁명의 방송으로 만들어가기는 어렵겠지만
절망과 두려움 속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이들
타락해서 고통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예수님
바로 나와 같은 이들
그런 이들을 위한 방송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런 날에
절망과 두려움에 몸부림 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방송이 손을 잡아드리겠습니다.
타락한 예수님이 곁에 함께 있을 것이고
그 어떤 일에도 침묵만 지키시는 하나님이 그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고
하나님과 친구라고 우기는 허접한 제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너무 지쳤지만
죽지는 맙시다.
자우림의 ‘낙화’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잠든 새벽 세시
나는 옥상에 올라왔죠
하얀색 십자가 붉은빛 십자가
우리 학교가 보여요
조용한 교정에 어두운 교실이 (우후우후)
엄마 미안해요
아무도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어요
아무런 잘못도 나는 하지 않았어요
왜 나를 미워하나요
난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울어요
왜 나를 미워했나요
꿈에서도 난 달아날 수 없어요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나나나나나나 나나나나나나
모두들 잠든 새벽 세시
나는 옥상에 올라갔죠
하얀색 십자가 붉은빛 십자가
우리학교가 보여요
내일 아침에는 아무도 다시는
나를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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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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