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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카트’와 같은 영화를 보려면 망설여지는 게 ‘전형적인 운동권 영화’이지 않을까 하는 것 때문이다.

‘카트’를 보고 나서의 결론은 약간 달랐다.

상업적으로 덧칠된 전형적인 운동권 영화였으니까. ㅋㅋㅋ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고

감독의 연출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이야기 구조도 큰 무리 없이 짜여 있었다.

그런데 상업영화와 운동권영화에서 가장 두르러진 문제점 하나씩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상업영화의 문제점 : 감정의 과잉

운동권영화의 문제점 : 의식의 과잉

 

우회로를 거치고 않고 초반부터 막 바로 마트노동자들의 노동현실과 급작스러운 고용위기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영화는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 단행까지 고속도로 주행속도로 달려갔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게 007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긴장되고 감격적인 것인데 영화 속의 여사님들은 무슨 계모임 하듯이 너무도 쉽게 노동조합을 만들어버렸다.

그거야 그렇다 쳐도 파업투쟁을 결정하기 까지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의 몇 배의 힘겨움과 갈들이 존재하는데 영화 속의 여사님들은 저녁 준비하는 것처럼 몇 번 뚝딱거리더니 파업을 결정해버렸다.

그거야 그렇다 쳐도 실제 파업에 들어가려면 (그것도 역사적인 첫 파업인데) 엄청난 힘겨루기와 다독거림과 보안이 필요한데 영화 속의 여사님들은 소풍 가듯이 파업을 성사시켜 버렸다.

 

이 영화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성사시키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파업이 진행되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일까?

그러기에는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이 너무 길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 얘기를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것일까?

 

역시나, 파업에 들어간 이후의 상황도 초반과 다르지 않았다.

노사 간의 밀고 당기기, 물리적 충돌, 법적 압박, 공권력 투입, 지도부의 갈등, 생활고에 의한 이탈, 노노갈등 등 그 모든 것이 다 길지 않은 영화 속에 다 다루려다보니 시종일관 과속으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듯이 달려야만 했다.

거기다가 그들의 삶의 문제까지 날줄로 엮어서 담아내려고 노력했으니

이건 뭐,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이쯤 되면 운동권 영화의 문제점은 정리된 샘인데

머리 속에 하고 싶은 얘기들이 너무 많아서

한정된 시간 속에 풀어놓으려다보니

암축해서 과속으로 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전형적으로 머리로 만든 영화!

 

그런데 상업영화인다보니 노사문제로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삶의 문제도 다루면서 감정을 건드려줘야 했다.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 그들의 삶과 투쟁 속에는 삶의 문제가 너무도 절절하게 쌓여있고 눈물 콧물 줄줄 흐르게 할 이야기 거리도 넘쳐나기 때문에 이야기를 끌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영화는 초반부터 끝까지 풍부한 삶의 문제들을 곁들이면서 눈물을 수없이 흘리게 만들었다.

 

문제는 상업영화에서 흔히 범하게 되는 중요한 실수를 이 영화도 범해버렸다는 점이다.

관객이 울기도 전에 배우가 먼저 울어버리거나

초반부터 너무 쉽게 눈물을 흘려버리거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음향에 의존하거나

이런 것들인데

이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줬다.

20분 간격으로 이런 식의 장면들이 넘쳐나니까

나중에는 배우들이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만 봐도 피로가 느껴질 정도였다.

 

도대체 어느 시점까지 이야기를 끌어갈까 궁금했었는데

걱정과는 달리 그렇게 멀리까지 끌고 가지는 않았다.

 

적당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끝낸 영화의 엔딩은 예상 외로 힘이 있었다.

감독이 엔딩을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던 것이 느껴졌지만

왠지 어색함은 지울 수 없었다.

여성노동자들의 처절함과 끈기와 연대의 정신을 장엄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아주 장엄한 음악이었다.

실제 물대포보다 몇 배는 약한 소방호수를 이용한 물세례를 받으면서

슬로우 모션으로 카트를 밀어붙이는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을

‘블랙스완’의 엔딩에서나 봄직한 아주 웅장한 음악과 함께 보여줬으니

강렬하기는 한데

이건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카트’의 엔딩은 분명히 ‘파업전야’의 엔딩을 의식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파업전야’의 엔딩은 고민 끝에 떨리는 마음으로 파업을 결정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에 몽키스패너를 들고 나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너무도 열약하고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참아가면서 일을 하다가 온갖 어려움과 노력 끝에 파업을 결정하고도 고민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결단을 내리는 장면으로 끝나는 ‘파업전야’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이 끝난 후

그들의 투쟁을 기록한 책들이 몇 권 나왔다.

그 책들도 전형적인 운동권 책들이었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을 역사에 남기기 위한 일념으로

그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투쟁에 조용히 연대하면서 함께 했던 이들이 모여서

그 투쟁의 한 곳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노동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우리들의 소중한 꿈을 응원해줘’라는 책은 달랐다.

그 책 속에는 영화 ‘카트’에서 들려줬던 모든 이야기가 다 들어있었지만

영화 ‘카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슴을 적시는 감동이 있었다.

 

‘파업전야’는 분명히 전형적인 운동권영화의 효시였는데

20여 년이 지나서 만들어진 ‘카트’는 왜 그 틀에서 맴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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