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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34회)

~들리세요? (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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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 저는 귤을 땄습니다.
부모님이 비닐하우스에서 귤을 재배하고 계신데
보통 겨울에 나오는 귤들과 달리 요즘에 나오는 품종이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귤을 따봤습니다.
일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안하던 일을 하려니 힘들더군요.

 

이날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일을 하다가 잠시 쉬러 나와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한 보리밭 뒤로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살며시 만나고 있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올망졸망한 오름들을 품고 있는 한라산이 살포시 고개를 들어 백록담의 머리까지 보여줍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확 트입니다.
부럽지요?
이건 자랑하려고 얘기하는 겁니다. 하하하하.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을 하는데
이 날이 어린이날이어서 방송마다 어린이날 특집을 한다고 요란스럽더군요.
세월호사건 1주년을 추모한다면서 그날 하루만 호들갑을 떨던 때 보나는 덜 역겨웠지만
무슨 날이라고 진정성도 없이 요란을 떠는 모습들이 좀 그랬습니다.
그날 방송에서 어린이에 대한 노래들이 많이 들려왔는데요
특히 혜은이가 부른 ‘파란나라’라는 노래는 1~2시간마다 계속 들려와서
유원지에서 어린이들 푼돈을 뜯어내려고 틀어놓는 카세트테입 노래를 듣는 듯 했습니다.

 

어린이날 ‘파란나라’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대학시절이 떠올랐습니다.
5월 5일은 한국에서는 어린이날이지만
어딘가에서는 1818년 5월 5일 태어난 칼 맑스의 생일로 기억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대학 때 제가 ‘맑스철학연구회’라는 동아리에 있었는데요
5월 5일만 되면 동아리 사람들이 모여 맑스의 생일을 축하하는 조촐한 술자리를 갖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자주 불렀던 노래가 ‘파란나라’를 개사한 ‘빨간나라’라는 노래였습니다.

 

이쯤 되면 ‘빨간나라’라는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지요? 푸흐흐흐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서
제가 오래간만에 라이브로 불러볼까 합니다.
이 방송에서는 제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게 처음이지만
이전에 진행했던 방송에서는 가끔 불렀거든요.
제가 노래를 엄청 못 하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주세요. 헤헤헤

 

음... 흠, 흠, 흠.
부릅니다.

 

빨간 나라를 보았니? 생산수단을 공유한
빨간 나라를 보았니? 자본가가 없는 나라

 

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알아요
난~ 엥겔스도 알고요

 

저 북녘 하늘 끝에 거기 있나요?
저 삼팔선 너머 거기 있나요?

 

유물론 속에 있고, 변증법 속에 있어
누구나 한 번은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우리가 한 번 해봐요, 노동자 농민 손잡고
새빨간 나라를 이뤄요.
새빨간 나라!

 

푸하하하하하
너무 오래간만에 불렀더니 가사가 좀 가물가물합니다. 에고 에고
이건 그냥 재미로 해본 거니까
이해해주세용~

 


2

 

이번 순서는 ‘착한 엄마의 밥상 비법’입니다.
첫 번째 순서에서 다양한 요리에 만능으로 쓸 수 있는 양념간장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은 또 다른 만능 양념비법으로 양념고추장 만드는 법과 그를 활용한 요리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머니가 직접 손으로 써주신 비법이라서 맞춤법이 틀린 것은 제가 고치고 있지만 단위는 가능하면 그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이가 있으셔서 옛날 계량단위를 사용하시는데 여기서는 어머니가 써주신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양념고추장 만드는 법을 소개합니다.

 

고춧가루 1근, 간장 큰 걸로 1병, 양파 5개(믹서에 갈아서 사용), 물엿 작은병 1개

 

이렇게 넣어서 잘 저어주면 양념고추장이 됩니다.
그럼 양념고추장을 이용한 요리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 무채 무침 : 채 썬 무, 단진 쪽파, 양념고추장, 물엿, 소금, 생강가루(커피 수저 반)
- 조개 매운탕 : 조개, 애호박, 두부, 양념고추장, 미나리
- 조기 매운탕 : 물 3컵 정도 넣고 끓으면 조기다시다 넣고 조금 더 끓이다가 조기를 넣고 더 끓인다. 그리고 애호박, 두부, 양념고추장, 다진 마늘을 넣어준다.

 

개인적으로 저는 무채 무침은 쉽게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는데, 매운탕은 아직 고수의 손길이 필요하더군요.
앞으로 저도 능수능란하게 매운탕을 끓일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습니다.

 


3

 

심란한 며칠을 보냈습니다.
내 몸을 휘감은 끈적한 기운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불쾌하고 불결하고 짜증나고 무기력한 시간의 연속입니다.
이대로 어딘가 멀리 떠나버렸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제 발을 잡아끕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성희롱, 성추행 이런 것들이 남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다른 이가 조심스럽게 고민을 얘기해오면 차분하게 상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제 발등이 찍히고 나니 세상에서 가장 미련스러운 모습을 보이고만 있습니다.

 

이런 제 자신을 며칠 동안 지켜보다보니 이제 조금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어떻게 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저를 다독여봅니다.

 

이렇게 방송에라도 떠벌리면 조금 속이 풀리려나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방송은 아니지만
제 실명으로 소개되는 사연이라 조금 고민스럽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소리를 내지르면 조금이 제 자신에게 덜 미안할 것 같습니다.
저한테 기운 나는 노래 하나 들려주세요.

 

이 사연을 소개하기에 앞서 두 가지를 고민했습니다.

 

첫째는 익명으로 소개할 것이냐 실명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본인이 당당하게 실명으로 해달라고 얘기하셨기에
본인의 뜻을 존중해서 실명으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어느 새 이 방송에서 소중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시는 한지은님의 사연이었습니다.

 

둘째는 이 사연을 소개하면서 제가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아왔던 저로서는
한지은님의 사연을 읽으면서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한지은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아아아아∼
우우우우∼

 

눈물이 쏟아져 앞을 볼 수 없어
가슴이 아려와 숨도 쉴 수 없어

 

왜~
왜 그럴까?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가슴이 아려와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나의 회로는 전부 폐쇄됐어
그래 이제 나는 다 망가졌어

 

불에 타는 심장을 선물할게
너에게 타는 심장을 선물할게

 

네가 다 망쳤어
네가 나를 망쳤어
네가 우릴 망쳤어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네가 준 상처 잘 받았어
고마와 고마와 고마와
너에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고마와 고마와 고마와
너에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고마와 고마와 고마와

 

나나나 나나나나나 나나나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너에게 죽은 나를 선물할게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할게

 

(자우림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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