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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품성이요 작풍이요 능력이었습니다 - 이천재

호남에 살아 있는 농민항쟁의 뿌리

목포에서부터 시작된 우리 활동은 자연스럽게 이 지역 농민운동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남북은 물론이요 충청도, 강원도 일대의 농민운동가들을 만났습니다. 대체적으로 농민운동이 바로 통일운동이요 민주운동이라는데 모두가 인식을 같이할 수 있었습니다.
호남지역의 농민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이 농업중심지역이라는 이유도 있겠고 운동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이보다는 호남지역의 특별한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동학농민항쟁이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 선진농민들이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 더 정확하게는 반제반독재운동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는 높은 정치적 수준은 바로 한 세기 전 농민항쟁에서 보여준 전주화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농민항쟁의 실패가 동학의 이념 사상의 빈곤과 영도의 빈곤에 있었다고 한다면 과연 오늘의 농민운동가들이나 선진농민이 얼마만큼이나 우리 시대의 선진사상이나 운동의 합법칙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호남의 농민운동이 전국의 농민운동을 선도할 뿐 아니라 군농민회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지방행정기관이나 관제 농협과도 일정하게는 상호협력관계를 유지하고, 비록 소수지만 관군의 후예가 동학의 후예와 같이 박정희정권 아래서 민주운동을 같이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민족민주운동의 대중적 정치건설의 당위성을 말하는 선구적 농민들의 인식은 정확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농업중심지역에서 인구는 절반 이하로 줄었어도 농민대회에 자동차 80대에서 100대를 전세 낼 수 있는 동원역량이 있고 조직역량이 있다면 우리 민족민주역량에서 국회의원도 낼 수 있고, 반전평화행진에 대중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 분명 가능한 것이거늘 그렇지 못한 현실적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선진대중에게 변혁의 가능성을 집중시켜 내지 못한 통일전선운동의 실패가 원인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만 오늘의 농민운동이 지주와 소작인의 싸움도 아니요, 세계화로 불리어지는 농업선진국가들의 기업농과 우리의 영세농과의 싸움이요, 분단을 타고 앉아 통일을 가로막는 외세와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가 공통의 적이라는 선진농민의 인식은 확고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노동계급이 변혁운동에서 영도계급이냐 우상이냐

중앙 순례단의 활동과 10만 조직사업단 활동을 합치면 7월 15일부터 8월 13일까지의 29일 동안입니다. 이 기간동안 많은 노동자 혹은 노동운동가와 민주노동당 일군들을 만났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노동대중을 만난 게 아니라 대개의 경우 책임일꾼들을 만났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천이백만 노동계급의 다양하고 복잡한 그 전모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말할 순 없지만 어쨌든 민노당, 민주노초 혹은 민주노동자회 등 선구적 노동계급을 만나고 대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만 가지고도 실로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 사정에 의해 가난한 보고로 생략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으로 울산을 방문했고, 쌍용자동차 만도기계 민주노총 인천지부 등의 이런저런 간부회의에 참여하였습니다. 민주노동당 금천지구, 성동지구를 비롯한 경기도당 운영위원회 등을 비롯하여 민노당 학생위원회 간부 등을 만났고 지역의 영세기업 산업노동자 등등을 만났습니다. 조직적으로 정치적으로 더할 수 없이 복잡하고 다양하며 연봉 1천만원도 못되는 일용직에서부터 연봉 7천만원 정도(공채 10년 정도의 초일류 대기업 같은 경우)의 노동자에 이르는 광범위한 차이와 완고한 계급주의자들부터 단순한 보수정치에 대한 혐오로 해서 민노당을 입당했다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복잡한 구성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다는 범위가 실로 구우일모의 수준일수도 있겠습니다만은 의미 있는 대화에 성의를 다했습니다.
첫째로 오늘의 엄혹한 정세를 설명하면서 핵전쟁의 위협의 본질이 미제의 지배정책이라는 것을 역사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전쟁도 아니요 평화도 아닌 오늘의 불안한 평화는 북의 물적, 군사적 억제력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며 남의 애국 양심과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평화애호 인민의 평화의지가 다같이 안받침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오늘의 정세에서 전쟁과 평화의 양면구도에서 평화대세를 주도하는 힘이 노동계급에서 나와야 하며 노동계급이 영도적 역할을 다할 때 민주와 통일의 발전이 더욱 노동계급의 요구와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노동계급의 영도적 역할이 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노조가 파업을 위해 1천명이 동원됐다면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도 1천명이 동원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노동관료, 노동귀족이 노동계급을 지배하면 노동계급은 변혁운동에서 우상화하는 것이고 바로 된 정치적 영도에 따라 대중대세를 주도하면 노동계급이 영도계급이라고 했습니다. 네 번째로는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일수록 대중대세를 선도해야 하며 정당과 의회와 국가권력을 순기능적 측면으로만 이해하는 정당운동이 된다면 이 또한 계급을 내세운 관념이라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통일, 민족평화의 완성은 복잡다단한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야 하며 이 같은 미래의 전망은 오늘의 민주노동당으로 하여금 통일전선적 사명과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적으로 존중하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자기 판단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이와 같은 활동과정을 통해서 여러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여가를 즐기는 게 아니라 6.13 고 효순.미선의 1주기 동원조직을 하고 촛불과 영정을 들고 순회한 순방단에는 그토록 뜨겁게 성원을 다한 노동계급이 전쟁과 평화 이 엄혹한 정세에서는 그렇게 냉담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평화의 확률이 99%이고 핵전쟁의 위협이 1%라 하더라도 미일제국주의동맹이 명령을 하고 동족이 서로 적대하는 이 같은 치욕스러운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바쳐가며 싸워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마저도 이를 받아들이는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원인을 짚어보자면 근래 노동운동이 대중화가 “노동자도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다”는 고 전태일 동지의 절규를 기계적으로만 이해한 노동운동이 경제주의, 조합주의로의 편향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현장운동가들이 늘 정치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한 불가피한 입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어디를 가나 비교적 안정된 대기업 노동자들이 생각보다 고령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원인들이 오늘의 노동계급으로 하여금 민족문제요, 계금문제요 하는데서 운동의 통일적 인식을 깊게 가질 수 없게 한 원인이지만, 이 또한 민족민주운동 진영이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한 원인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경인지역 노조 등에서 느낄 수 있었던 깊은 신뢰와 친절 그 진지한 모습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깝게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도 우리의 소득입니다.

청년학생들의 정예일꾼들이 있었다

어디를 가나 청년학생의 정예 일꾼들은 뛰고 있었습니다. 안양지역이나 안산지역에서의 경험은 아주 귀중했습니다. 짧은 시간의 대화, 서명현장 등에서 일꾼들의 사업열의나 그 자질과 품성이 한눈에 들 정도였으며 마이크를 들고 대중연설을 하면 빈틈없는 정치일군이요 노래를 부르면 또한 문예일꾼으로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원주 연세대의 학생과 빈약하나마 청년역량이 하나가 되어 지역사업에 열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농촌봉사활동을 나왔다가 농촌이 좋아 주저앉아 장가를 들고 농민운동을 하는 젊은 영혼의 순결함이 강원도 산천의 자연만큼이나 청정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품성이요 작풍이요 능력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필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충남 연기의 청년과 학생들이었습니다. 오가는 행인마저 번거롭지 못한 한촌에서 서명판을 내밀기가 무섭게 응해주던 지역 분위기에 놀랐을 뿐 아니라 음식점에서 만난 중년의 주민이 대뜸 하는 소리가 “서명이나 받는다고 미국놈이 나가요? 두들겨 패고 싸워야 나가죠”하며 서명을 해줬고 식당에 앉았던 전원이 서명을 해준 감동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주관적으로만 생각하자면 가장 보수적이 지역의 이 작은 한촌에서 서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노래를 하고 연설을 하는 동안 시민의 눈동자와 눈동자가 비상히 빛났다는 사실이고 정거장마당의 이런 저런 우리의 선전판이 백여 장 가까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으니 정거장마당은 가장 완벽하게 갖춰진 우리의 선전마당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연기사랑청년회와 조직원 고대가 하나같이 단결하여 매주 주말이면 역 선전사업을 해왔고 서명을 해줌직한 사람이 안 해주면 그것으로 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찾아가서 조용한 대화와 토론을 했다니 이 같은 헌신성과 운동에 대한 집념이 기적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같은 노력이야말로 품성으로 작풍으로 능력을 갖춰진 일꾼들의 땀 흘린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천 사람 만 사람의 피눈물 나는 공적이 한 사람에 의해 무너지다

우리가 7월 18일 늦은 오후에 전북대학 후문에서 선전전을 하고 희망새가 공연을 하고 가두연설을 하고 할 짓을 다했지만 대중은 산만했습니다. 대중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학생들의 관심마저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선진지역이라고 생각했고 전북대학의 학생역량이 상당할 것이라는 우리의 안일한 판단은 빗나갔습니다. 진실은 부딪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소위 주사파의 일인자라던 K모씨의 영향으로 해서 전북지역의 학생운동이 이상해졌고 심지어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파병마저도 지지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이야말로 오랜 세월을 두고 성장했고, 그렇게 축적된 학생운동의 영예와 역량이 한 사람에 의해 무너졌다는 의미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다만 전주연합의 역량이 이렇게 50수 개의 다양한 민주역량을 통전적 책임으로 묶어세우느냐가 이 지역의 관건적인 문제라고 봤습니다. 적(敵)보다 두려운 적은 너울을 쓴 내적(內敵)이로구나 했습니다.
어쨌든 조치원(연기)서 천안은 지척이지만 시민적 분위기는 영 달랐고 역 광장의 대중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런대로 희망새의 공연 덕분이었습니다. 천안과 수원을 거치는 동안 불특정 대중, 전혀 예비적 인식이 없는 산만한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천안에서는 어린 시절의 모범생이 떠오를 정도로 조용한 인상의 전교조 선생님의 그 차분하고 조리정연한 연설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으며 우리의 양심에서 영세기업체에서 가장 고생하는 노동형제에게 가장 뜨거운 사랑이 가장 먼저 가야 하거늘 짧은 대화 속에서나마 좀더 일찍부터 서로 만날 수 없었던 한이 가슴을 젖게 하였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 나라 여기저기에 이런저런 편차가 있기로 어디고 훌륭한 일꾼은 있다는 확신만은 이번 운동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성과가 아닌가 합니다.

변혁운동에서의 문화일꾼의 역할

이번 여러 지역의 순방에서 우리가 경험한 소중한 성과 중에 하나는 변혁운동에서의 문화일꾼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전 지역에서 모두를 같이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전혀 준비되지 않은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즐겁게 해주고 그 영혼을 순화시키고 의식을 일깨우고 이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우리가 비록 나팔을 불고 북을 치는 갖추어진 연주단이 없이 음반의 반주에 4인조의 노래패가 노래를 부른 하잘 것 없는 규모이기는 했어도 희망새 단원들의 열연은 쉽게 대중을 집중시켰고 단원들의 갖춰진 자질과 능력이 1~2분 정도의 간담 속에서도 그 예지가 빛났다는 사실입니다. 희망새 노래패의 열연은 대중이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았으며, 오늘의 퇴폐적인 대중정서를 뒤집는 이 예인들의 혁명적 열정을 우리는 변혁운동에서 나서는 정치적 역할 못지않게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반성해야 하나

중앙순례단도 10만 조직사업단도 이 모두 다 민족민주운동 원로 동지들로 구서되었다는 것이 특징이요, 지금가지 시도해보지 못했던 일이라 할 것입니다. 백발의 노인들이 대부분 일정하게는 노환에 시달리는 처지였지만 1~2분도 지체하는 일 없이 정확하게 회의를 했고 전차 안에서는 아들 같은 사람들, 손자 같은 사라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전단을 건네주었습니다. 또한 토론을 하고 가두연설을 하고 서명을 받고 그 궁색한 용돈을 털어내고...
이 모두가 따뜻한 감동이었으며 오늘 우리 운동이 아무리 어렵지만 이 같은 감동적인 원로들이 두터운 층을 이루는 한, 원로가 원로다운 확신으로 원칙을 지키는 한 우리 운동의 내일은 희망으로 빛날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원로동지들에게 엄숙하게 자성의 여지는 있다는 것입니다. 변혁전선의 요구가 운동가의 종신역할이라면 이 같은 엄숙한 요구에 상응할 만큼 최선을 다하고자하는 노력을 한 것이지, 혹은 내일 내 인생이 끝날지언정 오늘 나는 학습을 한다는 자세가 갖춰졌는지, 엉뚱한 야심가들이 운동을 배반하고 신분상승을 하고 앉을자리 설자리도 모르는 지도자들에 의해 운동이 왜곡되기로 침묵으로만 일관하지는 않았는지 자성의 여지는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면서 눈에 띄게 퇴락해 가는 농업중심의 지역에 선진농민을 생각하고 조직적 운동적으로 쳐다 볼 때가 없는 고독한 속에서도 헌신의 열정을 보여주는 강원도의 젊은 일꾼들, 휴가를 반납하고 운동을 조직하는 노동자들, 20년 30년을 두고 운동전선을 지키면서도 회한의 빛이 없는 청주의 노 목사님, 전단을 돌리는 늙은이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던 주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오래가 풀립니다“라며 내 손을 거머쥐던 노동자, 그토록 예의바르고 친절했던 목포시민들, 이 모든 고마운 사람들에게 준비되고 갖춰지지 모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는 인사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거니와 일인이역을 하면서도 내 집을 찾아가듯 정확하게 자동차를 몰고 다닌 김강현 동지, 사업단과 현장과의 정확한 연계를 위해 전화통을 들고 살면서도 사업의 내실을 위해 새벽 두시 세시까지 잠을 못 자던 김세창 동지, 매일 인터넷에 기사를 올린 범수 동지, 이 모두에게 감사하는 바이지만 건강도 좋지 못한 김규철 동지의 갖춰진 모습이나 임방규 동지의 태산 같은 신뢰, 소기수 동지의 남다른 헌신성, 유양원 동지의 넉넉한 인품, 이 모두는 참으로 존경스러웠고 감사하는 바이다.
거듭 감사하거니와 역사를 통감하는 지혜가 있어 민족의 운명 그 내일을 전망하는 혜안이 있고 필승의 확신이 있어 묵묵히 오늘의 역할을 다하는 그 모든 동지들에게 겸허한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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