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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문화와 노동자 조직 - 신병현

주지하다시티 96, 97 총파업과 IMF 이후 대중들의 고용보호 투쟁 분출에 편승한 노동운동 엘리트 집단들의 정치적 조직화는 가속화되었다. 이 글에서는 사실상 이처럼 급속한 정치적 조직화의 이면에는 후진국 엘리트 집단들의 관념론적 조급성과 슬로건에 기초한 대중 정치관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런 해석에서 좌파 엘리트 집단들의 경우도 예외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이 집단들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슬로건화 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엄밀한 논의와 노동자계급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그에 기반한 노동자 대중의 일상에 천착한 장기적 안목의 새로운 운동 실천의 개발은 뒤로 한 채, 여전히 슬로건을 통한 정치 동원과 정치조직화의 형식적 모델 추구, 그리고 도식적 전술들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대부분의 정치조직 역시 대중조직과 다르지 않게 관료주의적 조직모델에 근거한 조직 형식화와 더불어 권력 물신주의에 빠진 파행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 세력화에 대한 관심 속에서 실종된 것은 노동자계급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설사 노동자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나온다고 해도 당장 이용할 만한 슬로건이나 조직화를 위한 정책안으로 구체화하지 않는 경우에는 전혀 주목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운동의 거의 유일한 교사로 간주되고 있는 레닌의 경우에도 러시아 농민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수행한 바 있지 않는가? 그러나 레닌 이후 1세기가 지난 현 시기에 구체적인 분석과 논의 없이 즉, 운동 실천의 별 다른 내용 없이 어떻게 변혁적 정치운동이 가능할까 의문스럽다. 그 귀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 것은 아주 가공스러운 그 어떤 역사적 경향의 반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질문은 좌파 연구자 집단에게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연구와 논의의 실종은 운동에서 ‘대중’이나 ‘현장’이 구호로서 강조되지만 결코 현실화되거나 극복되지 않는 대중과의 괴리 혹은 계급 주체형성의 곤란이라는 문제로 드러난다. 마치 단위노조나 연대투쟁 파업들이 노조간부나 노동운동 엘리트들만의 파업이 되고 말듯이, 정치세력화 혹은 정치적 조직화는 단지 노조운동을 비롯한 소수 정치운동 엘리트들만의 상상적 실천으로 그치고 만다. 엄밀한 이론과 구체적인 분석의 결여는 마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처럼 결코 혁명적이지 않은 상황 하에서 마치 혁명적인 상황인 것처럼 급진적으로 행동하게 하거나, 반대로 혁명적인 시기에 안정적인 시기의 행동패턴을 답습하는 우를 범하게 할 수 있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경험적 증거에만 의존하는 실용주의적 행동관행은 노동자 문화와 노동자 교육의 실천적 중요성을 보지 못하게 한다.
현 시기 이론 및 실천운동에 필요한 것은 엘리트적 관념성에 빠진 채 지나쳐버린 10년의 실종된 기간을 반성적으로 검토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과 이를 극복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아닐까? 노동자계급 대중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이 ‘실제로’ 어떠하고, 희망하는 삶과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이며, 그들의 실천적 이데올로기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또한 어떠한 문화적 형식들을 형성해 왔으며, 제계급들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정체성을 중심으로 자아를 주체화해 왔으며, 경제적 상태는 어떠한지에 관한 연구들이 너무나도 부족하지 않은가?

- ‘노동자문화와 노동자 조직 - 엘리트주의적 의미생산과 그 조직적 귀결’ 중에서, 신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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