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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한 사람의 이야기 - 왕수금

지금 사는 동네 사람들 다 나보고 몰래 떠나지 그러냐고 그랬어요. 맘이야 열두 번도 더 떠났지요. 하지만 나 하나 도망가면 중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만나 함께 사는 처녀, 총각 같으면 어떻게 새로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우리처럼 상처가 있는 사람은 각자 살아온 길이 있기 때문에 재혼이라는 게 힘들어요. 한번 맺어진 인연을 당장 어렵다고 쉽게 끊을 수도 없고... 그래도 고향 친구들이 오면 남편 좋다고 얘기합니다. 살다보면 환경과 배경이 사람을 변하게 하죠. 나를 만나기 전까지 남편이 살아온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겠지 이해하고 살려고 해요. 물론 힘들 때가 많지만요.


한국이라는 사회가 우리가 살아온 것과 달라요. 사회주의 사회는 공저인 게 많아요. 나만해도 어려운 사람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거의 습관이에요. 지금 내가 남을 돕는 건 없지만 교포들이 찾아오면 어떤 문제 해결을 도울 수 있을 만큼은 돕죠. 한국 사람들하고는 아직까지 마음 열고 말하지 못해요. 한국 사람들은 중국에서 온 우리들을 안 믿어요.


인간성 보면 사회주의가 훨씬 낫죠. 사회주의 사회는 조그마할 때부터 교육이 “남을 위해 살아라”입니다. 한국 교육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라” 아닙니까. 중국에서 우리가 배운 건 그게 아니예요. 이게 질적으로 틀리죠, 한국 사람들 ‘중국사람들 순진하다’, 경제발전이 뒤진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교육자체가 그렇습니다. 교육체계가 자본주의와는 다르니까요. 다 배운 거죠, 그런데 이렇게 배워 몸에 익힌 사람들이 갑자기 자본주의를 겪으면 변해요. ‘아, 이 사회는 이게 아니구나’, 깨닫죠. 사회주의에서 살던 대로 살면 손해 보니까요. 여기 오니까 일체 나를 위해 살자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짓밟아야 살 수 있으니까요. 여기는 자원봉사라는 말이 있고 많이들 하는데 사회주의 국가는 자원봉사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기본입니다. 사심 없이 살자, 남을 위해서, 더불어 살자는 걸 어려서부터 교육받죠. 한번은 이런 얘기를 듣고 충격 받았어요. 한국 사람들 어떻게든 상층계급 사람들을 접촉하려고들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이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10평 집에 사는 아이들은 15평 사는 아이들을 사귀려고 하는데 15평 아이들은 절대 10평 아이들과 안 사귀려고 하고 어떻게든 20평 아이들과 사귀려고 한다는 얘기예요. 내가 사는 이 가난한 동네만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원 다니는 애들은 학원 다니지 않는 애들과는 어울리려고 하지 않아요. 이게 애들 스스로 한 생각이겠습니까. 어른들이 애들한테 이런 사상 심어주는 거죠. 한국에는 옹졸한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이게 개인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 사회 체제가 이럴 수밖에 없죠. 중국 집단 체제 같이 마음 모아 함께 무엇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은 소집단, 즉 가정이라는 집단 하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내 가정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거죠, 사람이 몸담은 범위가 작아지면 옹졸해지기 마련입니다. 기업들 보면 ‘가족’이라는 말 많이 쓰지만 기실은 옹졸함과 다름없죠. 사회주의 체제가 가진 장점은 마음이 넓다는 것이고, 단점은 ‘내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자기가 한 것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는 걸 중요하게 봐요. ‘단결은 곧 역량, 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힘은 어마어마하죠. 요즘 한국 사회도 보면 농촌에서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있더군요, 인간이 내 혼자만 배부르면 뭐합니까.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가 서로 섭취할 게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이라는 건 항상 마음을 넓게 먹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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