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복수에는 용기와 이성이 필요하다 - 노신

여느 사람 이상으로 근성이 비뚤어진 탓인지 아니면 지난날 환경으로부터 받은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탓인지, 나에게는 아무래도 복수란 것이 그리 나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무저항주의자를 인격 영점이라고 비방할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다만 가끔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는 있다 - 도대체 복수란 것은 누가 그것을 심판하고 무엇이 그 공정성을 보증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자문에 대해 곧바로 자답단다 - 자기가 심판하고 자기가 집행하는 것이다. 신이 그것을 맡아서 행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눈에는 눈이 아니라 눈에는 머리로, 머리에는 눈으로 갚아도 괜찮다고. 더구나 때로는 관용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금방 다시 의문이 일어난다 - 그런 것은 비겁자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닐까? 보복할 용기가 없는 비겁자가. 그도 아니면 비겁한 악인이 생각해낸 것으로서 자기는 남에게 위해를 가하면서도 남의 보복을 받는 것은 두려워서 관용이라는 미명으로 기만하는 것이라고.

......

오늘날 그 또한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적으로 하는 경우 먼저 수단을 베풀어 국민의 적개심을 부채질하고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저항 또는 공격하게 해야 한다. 다만 그렇게 하는 데는 조건이 필요하다. 국민이 용감해야 한다는 조건이, 용감해야만 비로소 용왕매진 강적과 맞서 복수와 설욕을 할 수 있다. 가령 인민이 비겁한 경우라면 아무리 등을 두드려도 강적과 맞설 결의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처지에도 점화된 분노만은 남기 마련이므로 그것의 배출구는 있어야 한다. 그 배출구야말로 분명히 자기보다도 더 약한 인민이다 - 동포이거나 이민족을 불문한다.
나는 중국인의 마음 속에 울적되어 있는 증오와 분노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들은 장가에 의해 짓밟힌 결과의 산물이다. 그런데 그들은 강자에 반항하기보다는 오히려 거꾸로 약자에게서 그 배출구를 찾으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그 증거를 댄다면 군대와 비적이 서로 싸우지 않고 맨손의 인민이 군대와 비적 양쪽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그 양쪽이 다 비겁하다는 증거이다. 비겁한 인간은 설사 만길이나 되는 분노의 불길을 갖고 있더라도 가냘픈 풀포기밖에는 아무것도 태우지 못한다.

......

그렇더라도 우리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는 사회에서 자국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불꽃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한때를 참고 견디게 하는 일 말고 어떤 가혹한 대응책이 있다는 것일까? 다만 나는 위에서 말한 이유에 따라 이 기회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점화를 한 후의 청년에게 바라고 싶다. 대중을 대할 때 그들의 공분을 끌어내지만 말고, 마음 밑바닥에서부터의 용기를 주입하도록 유념하기 바란다. 그들의 감정을 고무하지만 말고 시비를 판별하는 이성도 극력 계발시키기를 바란다. 나아가 용기와 이성에 중점을 두고 앞으로 몇 년이고 계속하여 훈련에 종사하기를 바란다. 물론 그런 소리를 올려봐야 도저히 선전(宣戰)이라든가 ??이라는 소리만큼 위세좋은 반향은 없을 테지만 나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보다 중요하고 보다 곤란한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역사의 교훈에 의하면 피해자가 적이 아니고, 자기 동포와 자손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기가 적의 하수인이 되고, 적은 이 나라의 강자에 대해서는 승리자가 되고 아울러 약자에 대해서는 은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끼리 미리 서둘러 살육을 저질렀기 때문에 울적해 있던 증오와 분노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없어지고 천하태평 만만세가 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