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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13
    팜므 파탈...그리고 정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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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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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5/13
    사진작가 이시우씨 구속 기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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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05/13
    EBS다큐여자-엄마, 다쳐서 미안해!
    참게

팜므 파탈...그리고 정염

팜므 파탈...femme fatale

 

팜므는 프랑스어()로 '여성', 파탈은 '숙명적인, 운명적인'을 뜻한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문학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 미술·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어, 남성을 죽음이나 고통 등 치명적 상황으로 몰고가는 '악녀', '요부'를 뜻하는 말로까지 확대·변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운명적'이라는 말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굴레를 뜻한다. 즉 팜므 파탈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을 타고난 여성이다. 따라서 팜므 파탈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 역시 팜므 파탈의 손아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남성을 압도하는 섬뜩한 매력과 강인한 흡인력 앞에서 남성은 끝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팜므 파탈의 속성이다. 이런 점에서 팜므 파탈은 종교적·신화적인 성격이 강하다.

문학작품 등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팜므 파탈의 예로는, 뱀의 꾐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하와(이브), 헤로데스를 춤으로 유혹해 그로 하여금 세례 요한을 죽게 하는 《신약성서》의 살로메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여 젊은 시인을 유혹하는 라미아(Lamia:그리스신화에서 어린이를 잡아 먹는 요부), 하나의 몸에 사자·염소·뱀 등 3개의 머리를 한 키마이라 등도 팜므 파탈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주로 영화 용어로 많이 쓰이는데,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이용해 남자 주인공의 운명을 예기치 않은 나락으로 빠뜨려 헤어날 수 없게 만드는 악녀를 가리킨다. 이 경우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학예()의 여신 뮤즈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치명적인 여성 캐릭터 팜므 파탈....
피할 수 없는 파괴의 냄새를 풍기는 사랑의 숙명....
정염이라는 말과 함께 떠오르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
 
시속 180킬로미터의 속도로 파괴를 향해 질주할 때 어른거리는 여인의 모습....
 
                얼음 위에 댓잎 자리 보아 
                님과 함께 얼어죽을 망정
               정 둔 이 밤 더디 새오시라
               더디 새오시라
 
고려 속요의 가사 속에 떠오르는 여인의 이미지 역시 팜므 파탈...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정열...사랑 보다 강한 중독....관능 보다 독한 유혹...
사마귀의 정사를 떠올리게 하는....
사랑보다 두려운 유혹은 정염,
팜므 파탈과 정염에 대한  생각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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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말...말

 

그저 모든 것을 말로만 때우려는 사람들이 지겹다.

제대로 된 말을 할 줄도 모르면서 립서비스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역겹다.

그리고 말을 글로 써야하는 내 직업이 두렵다.

말과 글은 다른 것이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갑다.

입에 발린 말 따위 하지 않는 사람들.

마음에 없는 말 같은 건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 사람들.

꼭 듣고 싶은 말 조차도 해주지 않는 사람들.

차라리 그들이 더 고맙다.

책일질 수 없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해서 당신들을 위해서 더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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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시우씨 구속 기사

 
 
"제 남편,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현장] 국가보안법 폐지 걸고 21일째 단식중인 이시우씨 특별면회
 
장윤선 기자
 
 
▲ 지난 4월 1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씨의 아내 김은옥씨.
 
ⓒ 오마이뉴스 장윤선
"남편이 21일째 단식하고 있습니다. 서울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첫 면회를 할 때 그는 '국가보안법을 안고 함께 죽기로 각오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본 남편은 한번 말하면 반드시 그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제발, 제 남편이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 4월 19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평화사진작가 이시우(39ㆍ본명 이승구)씨의 부인 김은옥(42)씨는 9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석방 촉구 기자회견'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남편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똑같은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대우가 천양지차였던 것도 섭섭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이동스튜디오까지 차려놓고 밤새우며 김 회장 부자를 취재하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같은 공간에 수감돼 있는 남편에 대해 단 한 줄도 쓰지 않아도 '기자들 그렇지 뭐' 했다.

그러나, 사람이 21일 동안 곡기를 끊고 묵비권을 행사하는데도 무반응인 것에는 화가 났다. 무심코 넘기기에는 남편의 건강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 그것은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밥을 굶고 있는 남편이 한술이라도 뜬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상황이 됐다.

백발의 노신부, 문정현 신부의 눈물

김씨는 이날 오후 4시 문정현 신부와 함께 서울 서초동 검찰 청사를 찾았다. 서울지검 공안1부에서 조사를 받던 이시우씨는 휴게실에 미리 나와 김씨와 문 신부를 맞이했다. 이씨의 표정은 밝았지만 한 마디씩 이어가는 게 힘겹게 느껴졌다. 서울구치소 교도관들은 일시적이지만 마비증상이 있었다면서 의사의 검진이 필요한 상태라고 전했다.

교도관들의 말을 듣던 김은옥씨가 눈시울을 붉히자 이씨는 웃으면서 "문제없다"며 "잘 판단 하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 단식으로 항거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불변이었다.

백발의 노 신부는 이시우씨의 넉넉한 웃음을 바라보다 울컥했다. 눈물로 안타까움을 전하던 문 신부는 검게 그을린 두 손을 마주한 채로 "나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25일간 단식했던 사람"이라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탄식했다.

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국가보안법이 노무현정권 말기가 되니 어느새 다시 살아나 꿈틀거리며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활동을 개시한 것은 진보진영의 치욕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비분강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이 사문화 된 법이라고 했지만 영어의 몸이 된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가보안법 사문화는 결국 거짓말이 됐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검찰 면회에 동행했던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이씨에게 "당신의 결정을 믿는다"면서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는지 밖에서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여러분들이 나 하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죄송하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은 감옥에서도 사회에서도 계속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의 부인 김은옥씨는 말이 없었다. 밥을 계속 굶을 것이라면 물과 소금이라도 자주 마셨으면 좋겠다는 게 그녀의 당부였다. 기력이 쇠잔해진 이시우씨가 약 10분간의 면회를 마치고 간단한 포옹을 한 뒤 표표히 사라지자 부인 김씨는 다시 검사의 방으로 향했다.

"검사님, 남편이 20일 동안 화장실 한번 못 갔어요"

"검사님, 남편이 20일간 단 한번도 화장실에 못 갔어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남편이 검사실로 조사받으러 오면 물 좀 충분히 주세요. 하루에 2리터는 족히 마셔야 버틸 수 있습니다. 남편이 물을 달라고 요구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먼저 물을 건네셨으면 합니다."

김은옥씨는 가방 끈을 빙빙 돌리면서 몇 차례 당부했다. 말을 마치고 검사실을 나오는 복도에서 김씨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아들인 모양이었다. 아침에 끓여놓은 청국장과 반찬을 꺼내먹으라고 당부하는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힘겨운 일이 있어도 결코 웃는 낯을 버리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끝에는 삶의 피로도가 뚝뚝 묻어났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아이와 먹고살기도 바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구속돼 더 살기 어렵게 됐다거나, 길거리에 나앉지 않고 사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라거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인천 강화로 삶터를 옮긴 뒤 동네사람들과 '자장면 파티'를 할 생각이었는데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파토 났다고 말하는 대목은 차라리 슬픔이었다.

 
▲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는 9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석방촉구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이에 앞서 열린 '이시우씨 석방 촉구 기자회견'에서 최병모 변호사(전 민변 회장)는 "사상과 양심,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이 다시 살아 여러 사람들을 옥죄는 걸 보면 80년대 군사정권이 체육관선거를 자행하던 때와 뭐가 달라진 것인지 의문"이라며 "민선 민간정부가 무려 3차례나 들어섰지만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데 과연 민주화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최 변호사는 "주한미군측이 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내용을 사진 찍고 기사 썼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나서 기밀이라고 난리치면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면서 "주인 눈치 보면서 노예 노릇하는 미국의 속국 아닌지, 식민지가 아니고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개탄했다.

또한 최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존폐는 민주화 정도와 연결되는 것"이라며 "아직 민주화 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사회민주화를 위해 더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여전히 활보

소설가 정도상씨는 "이번 이시우씨 구속사건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헌법이 보장하는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정씨는 "국가보안법은 생명과 평화를 저해하는 법"이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활동이 개인을 넘어 사회적 확대, 국가적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작가 이상엽(이미지프레스 대표)씨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는 작업의 유사성이 있다"며 "공안당국이 다큐 사진가들에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국가보안법 잣대를 들이댄다면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개탄했다.

이씨는 또 "해외의 유명작가들도 이시우씨와 마찬가지로 DMZ를 많이 촬영했었다"면서 "이시우씨의 사진을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 탐지ㆍ회합통신으로 처벌하기에는 너무 아름답지 않느냐"고 말했다. 분단을 바라보는 예술적인 의지가 담긴 사진이라는 것이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오늘 같은 일을 당하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2007-05-09 19:37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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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다큐여자-엄마, 다쳐서 미안해!

EBS다큐여자 - 엄마, 다쳐서 미안해!

5월 2일, 3일, 4일 (수, 목, 금) 밤 9시 20분 방송

 

5월은 어린이의 달이다. 어린이의 달 특집으로 어린이 안전사고에 대해서 방송해야 한다고 했을 때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고가 나서 아이가 다쳤거나 죽었을 때 부모가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클텐데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텐데 그 상처를 건드리는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예상대로 섭외도 잘 되지 않았다.

 

고맙게도 어린이의 안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일깨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출연하겠노라는 부모님들이 있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다.

2006년 10월 1일 대전의 한 놀이동산에서 스윙드롭이라는 놀이기구를 타던 초등학교 6학년 여자어린이 두 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놀이기구를 출발시켜서 일어난 사고였다. 높이 35미터 상공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한 유정이는 심각한 외상과 뇌손상을 입고 생사의 기로를 헤매다 겨우 살아났다.

그후 7개월, 유정이의 가족들은 지옥과 같은 나날들을 견디며 오직 유정이가 예전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유정이는 왼쪽은 전신이 다 부서질 정도로 다쳤고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뇌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정상적이던 열 세살 어린이의 지능이 5,6세 정도의 아이처럼 퇴행한 것이다.

 

유정이의 아빠는 구두공장 기술자였는데 회사가 부도 나자 대전 시내에서 구두수선점을 하고 있다. 엄마 역시 아빠의 일을 돕고 있었다. 중3인 큰 딸 유진이와 중1이 되었을 유정이 자매가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을 보람으로 삼고 열심히 살아온 엄마, 아빠에게 유정이의 사고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유정이 시중을 드느라고 거의 일을 하지 못하고 아빠는 고통 속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엄마 몫까지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유진이 역시 엄마, 아빠가 유정이한테 매달려 있느라고 신경을 써주지 못해 많이 힘든 상황이지만 동생을 위해 꿋꿋하게 견디고 있다.

 

그들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살아날 가망이 2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사들의 말에도 결코 실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은 채 20일 넘게 중환자실 앞을 지켜온 유정이 엄마 방미해씨. 그녀는 정말로 강한 어머니였다. 자기가 울면 아이한테 좋지 않을까봐, 자기가 괜찮다고 믿어야 유정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고통을 안으로 삭히고, 잘될거야, 유정이는 꼭 살아날거야,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믿음을 가졌던 그 엄마의 힘이 유정이를 살게 한 것 같았다.

유정이가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동안 엄마,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온 정성을 다해 유정이가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일 밖에는. 엄마, 아빠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유정이가 살아난다고 믿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유정이가 어린애처럼 퇴행하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7개월 동안 유정이 곁을 지키면서 엄마는 아이에게 더많은 사랑을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그 속에는 좋은 것도 들어 있다고 유정이 엄마는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유정이는 지능이 퇴행했을 뿐만 아니라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려있다. 사고 당시의 일과 그밖에 몇 가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잠을 잘 때면 두 손과 두 발로 침대 난간을 단단히 부여잡고 잔다. 유정이의 무의식 속에 추락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유정이는 아직 잘 걷지도 못하고 턱과 이가 부서져 말도 잘 하지 못한다. 게다가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생긴 욕창 때문에 말 못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유정이는 오히려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위로한다.

어느 날 다치기 전에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엄마 미안해...꿈돌이랜드 가서 미안해....꿈돌이랜드 가서 떨어져서 미안해."라고 어눌한 발음으로 엄마를 위로한다.

그런 말을 하는 유정이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그들 모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교통사고로 입원해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중학생 정민이 아빠와 동병상련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던 유정이 아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절규하듯 쏟아놓는 말 "작년 9월 30일로 시간을 되돌려 놓고 싶다"는 그 말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또 한 사람 유정이의 6학년 담임이었던 송옥선 선생님.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유정이를 매일 같이 보러 와서 친구들이 써준 힘내라는 메모들을 보여주고 읽어 주면서 한 시간 씩 기도를 올리던 선생님의 지극한 마음은 엄마가 유정이를 지키는데 너무 큰 힘이 되었다. 유정이 엄마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잊지 못할거라고 말한다. 유정이는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꼭 선생님이 되겠다고 대답한다. 송옥선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유정이네 가족은 오늘도 병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유정이를 위로한다. 사고 나기 전처럼 네 식구가 한 집에서 함께 잠자고 함께 생활하면서 오순도순 살아갈 그 날을 기다리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유정이가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엄마의 소원처럼 중학교 교복을 입고 의젓한 모습으로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는 날이 오기를... 유정이네 가족들이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함께 밥을 먹는 그 날이 오기를....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수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마음 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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