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16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평화사진작가 이시우씨의 아내 김은옥씨.
ⓒ 오마이뉴스 장윤선
"남편이 21일째 단식하고 있습니다. 서울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첫 면회를 할 때 그는 '국가보안법을 안고 함께 죽기로 각오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본 남편은 한번 말하면 반드시 그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제발, 제 남편이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 4월 19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평화사진작가 이시우(39ㆍ본명 이승구)씨의 부인 김은옥(42)씨는 9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석방 촉구 기자회견'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남편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똑같은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대우가 천양지차였던 것도 섭섭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이동스튜디오까지 차려놓고 밤새우며 김 회장 부자를 취재하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같은 공간에 수감돼 있는 남편에 대해 단 한 줄도 쓰지 않아도 '기자들 그렇지 뭐' 했다.
그러나, 사람이 21일 동안 곡기를 끊고 묵비권을 행사하는데도 무반응인 것에는 화가 났다. 무심코 넘기기에는 남편의 건강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 그것은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밥을 굶고 있는 남편이 한술이라도 뜬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상황이 됐다.
백발의 노신부, 문정현 신부의 눈물
김씨는 이날 오후 4시 문정현 신부와 함께 서울 서초동 검찰 청사를 찾았다. 서울지검 공안1부에서 조사를 받던 이시우씨는 휴게실에 미리 나와 김씨와 문 신부를 맞이했다. 이씨의 표정은 밝았지만 한 마디씩 이어가는 게 힘겹게 느껴졌다. 서울구치소 교도관들은 일시적이지만 마비증상이 있었다면서 의사의 검진이 필요한 상태라고 전했다.
교도관들의 말을 듣던 김은옥씨가 눈시울을 붉히자 이씨는 웃으면서 "문제없다"며 "잘 판단 하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 단식으로 항거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불변이었다.
백발의 노 신부는 이시우씨의 넉넉한 웃음을 바라보다 울컥했다. 눈물로 안타까움을 전하던 문 신부는 검게 그을린 두 손을 마주한 채로 "나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25일간 단식했던 사람"이라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탄식했다.
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국가보안법이 노무현정권 말기가 되니 어느새 다시 살아나 꿈틀거리며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활동을 개시한 것은 진보진영의 치욕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비분강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이 사문화 된 법이라고 했지만 영어의 몸이 된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가보안법 사문화는 결국 거짓말이 됐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검찰 면회에 동행했던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이씨에게 "당신의 결정을 믿는다"면서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는지 밖에서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여러분들이 나 하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죄송하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은 감옥에서도 사회에서도 계속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의 부인 김은옥씨는 말이 없었다. 밥을 계속 굶을 것이라면 물과 소금이라도 자주 마셨으면 좋겠다는 게 그녀의 당부였다. 기력이 쇠잔해진 이시우씨가 약 10분간의 면회를 마치고 간단한 포옹을 한 뒤 표표히 사라지자 부인 김씨는 다시 검사의 방으로 향했다.
"검사님, 남편이 20일 동안 화장실 한번 못 갔어요"
"검사님, 남편이 20일간 단 한번도 화장실에 못 갔어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남편이 검사실로 조사받으러 오면 물 좀 충분히 주세요. 하루에 2리터는 족히 마셔야 버틸 수 있습니다. 남편이 물을 달라고 요구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먼저 물을 건네셨으면 합니다."
김은옥씨는 가방 끈을 빙빙 돌리면서 몇 차례 당부했다. 말을 마치고 검사실을 나오는 복도에서 김씨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아들인 모양이었다. 아침에 끓여놓은 청국장과 반찬을 꺼내먹으라고 당부하는 목소리는 매우 밝았다. 힘겨운 일이 있어도 결코 웃는 낯을 버리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끝에는 삶의 피로도가 뚝뚝 묻어났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아이와 먹고살기도 바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구속돼 더 살기 어렵게 됐다거나, 길거리에 나앉지 않고 사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라거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인천 강화로 삶터를 옮긴 뒤 동네사람들과 '자장면 파티'를 할 생각이었는데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파토 났다고 말하는 대목은 차라리 슬픔이었다.
▲ 평화사진작가 이시우 석방대책위는 9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석방촉구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이에 앞서 열린 '이시우씨 석방 촉구 기자회견'에서 최병모 변호사(전 민변 회장)는 "사상과 양심,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이 다시 살아 여러 사람들을 옥죄는 걸 보면 80년대 군사정권이 체육관선거를 자행하던 때와 뭐가 달라진 것인지 의문"이라며 "민선 민간정부가 무려 3차례나 들어섰지만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데 과연 민주화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냐"고 토로했다.
최 변호사는 "주한미군측이 브리핑을 통해 공개한 내용을 사진 찍고 기사 썼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나서 기밀이라고 난리치면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면서 "주인 눈치 보면서 노예 노릇하는 미국의 속국 아닌지, 식민지가 아니고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개탄했다.
또한 최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존폐는 민주화 정도와 연결되는 것"이라며 "아직 민주화 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사회민주화를 위해 더 싸워야 한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여전히 활보
소설가 정도상씨는 "이번 이시우씨 구속사건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헌법이 보장하는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정씨는 "국가보안법은 생명과 평화를 저해하는 법"이라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활동이 개인을 넘어 사회적 확대, 국가적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작가 이상엽(이미지프레스 대표)씨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는 작업의 유사성이 있다"며 "공안당국이 다큐 사진가들에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국가보안법 잣대를 들이댄다면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개탄했다.
이씨는 또 "해외의 유명작가들도 이시우씨와 마찬가지로 DMZ를 많이 촬영했었다"면서 "이시우씨의 사진을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 탐지ㆍ회합통신으로 처벌하기에는 너무 아름답지 않느냐"고 말했다. 분단을 바라보는 예술적인 의지가 담긴 사진이라는 것이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오늘 같은 일을 당하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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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이미 죽은 법이라고 했는데..그것은 말 뿐이고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