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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생각

한 방송작가가 죽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1956년생이란다.

나는 그녀를 모른다.

그러나 아주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1983년, 내가 KBS에서 처음 드라마라는 것을 배울 때 그녀는 나와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사람이다.   서로 친분은 없었지만 얼굴과 이름은 아는 정도였다.   나는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이 되고도 드라마 작가가 되지 못했지만 그녀는 공모에 당선되지 못했어도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   나는 그녀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드라마 대신 다큐멘터리를 선택해서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살았다.   나는 그녀가 쓰는 드라마를 보았고, 더러는 재미있게 더러는 재미없게 생각을 하며 나름대로 큰 작가로 성공한 그녀를 경이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별로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들 중에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도 큰 관심을 갖지않았고 우연히 만날 기회도 없어서 그저 그런 사람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지내왔다.   그런데 5월 23일 인터넷 기사로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간암 발병 한달 만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을.  

왠지 마음이 씁쓸하고 우울했다.

작년에 나와 동갑인 두 사람의 여성 방송작가가 죽었단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렇게 마음이 심란하더니 이번에도 그랬다.

그들이 나와 직업이 같고 동년배라는 사실이 남의 일 같지 않은 탓이다.

마흔 아홉, 또는 쉰, 쉰 하나는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작년에 척수종양 수술을 받을 때도 나는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신마취를 하고 꽤 힘든 외과수술이라 수술동의서에 서명도 했을텐데 그 과정도 수술실에 들어가서 마취를 기다리던 순간도 별로 뚜렷하게 인상에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나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 죽음의 순간이 언제라도 불쑥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은 이 삶이 지속될거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들 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똑똑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죽음은 늘 남의 일이었고 현실이 아니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이 있었지만 그건 괴롭다는 표현의 하나일 뿐 실제로 이 목숨을 끊어버리고 지금의 이 현존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명이 늘어나고 의학이 발달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늦추고 물리치고 삶을 계속하지만 또 한쪽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죽음의 방문을 받고 소리없이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내 나이는 생각지도 않던 병으로 돌연히 죽을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적된 스트레스와 생의 무게에 짓눌려 갑자기 튀어나오는 병, 혹은 병이라는 것을 미처 감지하기도 전에 찾아오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예전과 똑같다.

지금 오늘 이 순간과 같은 생의 현존이 언제까지나 계속될거라고 생각하며....신체와 정신이 서서히 낡아가기는 할 망정 갑자기 그 기능을 멈추는 일은 없을거라고 막연히 믿으며 그저 하루하루 어리석게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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