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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심기

감자를 심었다.

아니 감자를 묻었다.

작년에 어머니가 보내주신 감자를 먹지 않은 채 쌓아두었더니 싹이 잔뜩 나 버렸다.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니 감자인들 먹겠는가?

1주일에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먹는다 해도 거의 한 끼를 때우는 식으로 대충 먹고 만다.   그래서 어머니가 애써 농사지으신 감자는 방 안에서 싹을 키우며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버리자니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땅을 대충 일구고 감자를 묻었다.  그 중에 몇 개라도 살아서 감자꽃을 피우고 뿌리가 들게 된다면 이번에는 싹이 나기 전에 착실히 먹어보리라.  어설프기 짝이 없는 농사꾼 흉내처럼 사는 것이 다 그렇게 어설프게 대충 때우는 식이 되어버렸다.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아프다는 핑계로 많은 것을 유예하고 유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철저하게 하지 않아도 나는 아프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용인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산 지가 꽤 되었다.  그러나 그건 다만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가족들은 어느 정도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봐 주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그건 통하지 않는 일이다.  아무도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나는 알리지도 않는다.  만약 내가 환자라면 나는 어설프게 일을 하지 말고 집에서 쉬면서 혹은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것처럼 행세하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나는 아프다.  허리가 아파서 오랫동안 앉아 있기가 힘들고 조금만 무리하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통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환자로 살아가기를 거부해 왔다.   그건 내가 원한 일이다.   장기적인 치료로도 완전히 나아질 수 없는 병이기 때문에 병을 끼고 살면서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다.  아픈 것 때문에 번번이 의지가 꺾이고 더 철저히 해야 하는 일을 대충 넘어가게 된다.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아프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철저하게 살았던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되지 않는다.   나는 아픈 것을 이기기가 너무 힘들다.   자꾸만 의지가 꺾이고 요령을 부리게 된다.  싹이 나버린 감자를 묻으면서 나는 일상생활의 오랜 부재, 밥 해먹고 살기를 포기한 나의 일상에 대한 유기를 반성했다.   냉장고 속에 늘 오래 되어 썩어가는 음식을 담고 살아가는 일을 이제 더 이상 참지 말고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   아픈 것을 조금 더 참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어차피 나는 나 스스로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지 오래 되었다.   나는 환자가 아니다.  나는 환자로 살지 않고 고통을 참고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일상의 책임을 다 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나....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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