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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모든 것을 말로만 때우려는 사람들이 지겹다.
제대로 된 말을 할 줄도 모르면서 립서비스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역겹다.
그리고 말을 글로 써야하는 내 직업이 두렵다.
말과 글은 다른 것이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갑다.
입에 발린 말 따위 하지 않는 사람들.
마음에 없는 말 같은 건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 사람들.
꼭 듣고 싶은 말 조차도 해주지 않는 사람들.
차라리 그들이 더 고맙다.
책일질 수 없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해서 당신들을 위해서 더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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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다큐여자 - 엄마, 다쳐서 미안해!
5월 2일, 3일, 4일 (수, 목, 금) 밤 9시 20분 방송
5월은 어린이의 달이다. 어린이의 달 특집으로 어린이 안전사고에 대해서 방송해야 한다고 했을 때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고가 나서 아이가 다쳤거나 죽었을 때 부모가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클텐데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텐데 그 상처를 건드리는 프로그램을 해야 한다는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예상대로 섭외도 잘 되지 않았다.
고맙게도 어린이의 안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일깨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출연하겠노라는 부모님들이 있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다.
2006년 10월 1일 대전의 한 놀이동산에서 스윙드롭이라는 놀이기구를 타던 초등학교 6학년 여자어린이 두 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놀이기구를 출발시켜서 일어난 사고였다. 높이 35미터 상공에서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한 유정이는 심각한 외상과 뇌손상을 입고 생사의 기로를 헤매다 겨우 살아났다.
그후 7개월, 유정이의 가족들은 지옥과 같은 나날들을 견디며 오직 유정이가 예전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기만을 기원하고 있다. 유정이는 왼쪽은 전신이 다 부서질 정도로 다쳤고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뇌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정상적이던 열 세살 어린이의 지능이 5,6세 정도의 아이처럼 퇴행한 것이다.
유정이의 아빠는 구두공장 기술자였는데 회사가 부도 나자 대전 시내에서 구두수선점을 하고 있다. 엄마 역시 아빠의 일을 돕고 있었다. 중3인 큰 딸 유진이와 중1이 되었을 유정이 자매가 건강하게 커가는 모습을 보람으로 삼고 열심히 살아온 엄마, 아빠에게 유정이의 사고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유정이 시중을 드느라고 거의 일을 하지 못하고 아빠는 고통 속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엄마 몫까지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유진이 역시 엄마, 아빠가 유정이한테 매달려 있느라고 신경을 써주지 못해 많이 힘든 상황이지만 동생을 위해 꿋꿋하게 견디고 있다.
그들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살아날 가망이 2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사들의 말에도 결코 실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은 채 20일 넘게 중환자실 앞을 지켜온 유정이 엄마 방미해씨. 그녀는 정말로 강한 어머니였다. 자기가 울면 아이한테 좋지 않을까봐, 자기가 괜찮다고 믿어야 유정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고통을 안으로 삭히고, 잘될거야, 유정이는 꼭 살아날거야,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믿음을 가졌던 그 엄마의 힘이 유정이를 살게 한 것 같았다.
유정이가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동안 엄마,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온 정성을 다해 유정이가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일 밖에는. 엄마, 아빠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유정이가 살아난다고 믿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유정이가 어린애처럼 퇴행하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7개월 동안 유정이 곁을 지키면서 엄마는 아이에게 더많은 사랑을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그 속에는 좋은 것도 들어 있다고 유정이 엄마는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유정이는 지능이 퇴행했을 뿐만 아니라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려있다. 사고 당시의 일과 그밖에 몇 가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잠을 잘 때면 두 손과 두 발로 침대 난간을 단단히 부여잡고 잔다. 유정이의 무의식 속에 추락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유정이는 아직 잘 걷지도 못하고 턱과 이가 부서져 말도 잘 하지 못한다. 게다가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생긴 욕창 때문에 말 못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유정이는 오히려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위로한다.
어느 날 다치기 전에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엄마 미안해...꿈돌이랜드 가서 미안해....꿈돌이랜드 가서 떨어져서 미안해."라고 어눌한 발음으로 엄마를 위로한다.
그런 말을 하는 유정이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는 그들 모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교통사고로 입원해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중학생 정민이 아빠와 동병상련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던 유정이 아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절규하듯 쏟아놓는 말 "작년 9월 30일로 시간을 되돌려 놓고 싶다"는 그 말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또 한 사람 유정이의 6학년 담임이었던 송옥선 선생님.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유정이를 매일 같이 보러 와서 친구들이 써준 힘내라는 메모들을 보여주고 읽어 주면서 한 시간 씩 기도를 올리던 선생님의 지극한 마음은 엄마가 유정이를 지키는데 너무 큰 힘이 되었다. 유정이 엄마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잊지 못할거라고 말한다. 유정이는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꼭 선생님이 되겠다고 대답한다. 송옥선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유정이네 가족은 오늘도 병실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유정이를 위로한다. 사고 나기 전처럼 네 식구가 한 집에서 함께 잠자고 함께 생활하면서 오순도순 살아갈 그 날을 기다리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유정이가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엄마의 소원처럼 중학교 교복을 입고 의젓한 모습으로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는 날이 오기를... 유정이네 가족들이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함께 밥을 먹는 그 날이 오기를....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수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마음 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5월 30일....월요일날의 밤샘 휴유증과 감기 때문에 정신이 들지 않았지만...
나루가 참여한 영화이고 타이틀이 땡겨서 홍대앞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에 완전 공감했다....
16명이 모여서 이런 프로젝트를 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든
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관객이 많았다는 것도 기분 좋았다. 지난번 경순이의 '쇼킹 패밀리'를 보러 갔을 때도
비록 객석이 많진 않았지만 어쨌든 표가 매진될 정도로 관객이 들었다는 것이 흐믓했는데... 독립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로 보였다.
'불타는....'에 대한 느낌은 우선 좀 산만하다는 것이었다.
여러 감독의 공동 연출이라 해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 좀더 분명했으면
좋았을텐데....구성이나 전개 방식이 달라도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엮어나가는 힘이
느껴졌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부분은 상당한 집중력이나 흡인력이 느껴졌으나
어떤 부분은 반복이 너무 많고...주입식으로 메시지를 떠먹이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들를 배열하는 순서에 대해서도 좀더 치밀한 고려가 있었으면
싶었다. 옴니버스 방식의 구성에도 개연성은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독립영화의 제작현실을 약간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불가피한 여건 상의 문제가
이런저런 아쉬움을 남겼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런 작업을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고, 좀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상영회가 계속 열리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온라인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도 반갑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객석에 앉아서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 자신도 아직 독립영화 제작에 관한 꿈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더많은 영화를 볼 생각이다.
한 방송작가가 죽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1956년생이란다.
나는 그녀를 모른다.
그러나 아주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1983년, 내가 KBS에서 처음 드라마라는 것을 배울 때 그녀는 나와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사람이다. 서로 친분은 없었지만 얼굴과 이름은 아는 정도였다. 나는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이 되고도 드라마 작가가 되지 못했지만 그녀는 공모에 당선되지 못했어도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 나는 그녀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드라마 대신 다큐멘터리를 선택해서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살았다. 나는 그녀가 쓰는 드라마를 보았고, 더러는 재미있게 더러는 재미없게 생각을 하며 나름대로 큰 작가로 성공한 그녀를 경이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별로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들 중에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도 큰 관심을 갖지않았고 우연히 만날 기회도 없어서 그저 그런 사람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지내왔다. 그런데 5월 23일 인터넷 기사로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간암 발병 한달 만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을.
왠지 마음이 씁쓸하고 우울했다.
작년에 나와 동갑인 두 사람의 여성 방송작가가 죽었단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렇게 마음이 심란하더니 이번에도 그랬다.
그들이 나와 직업이 같고 동년배라는 사실이 남의 일 같지 않은 탓이다.
마흔 아홉, 또는 쉰, 쉰 하나는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작년에 척수종양 수술을 받을 때도 나는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신마취를 하고 꽤 힘든 외과수술이라 수술동의서에 서명도 했을텐데 그 과정도 수술실에 들어가서 마취를 기다리던 순간도 별로 뚜렷하게 인상에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나는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 죽음의 순간이 언제라도 불쑥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은 이 삶이 지속될거라고 생각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들 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똑똑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죽음은 늘 남의 일이었고 현실이 아니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이 있었지만 그건 괴롭다는 표현의 하나일 뿐 실제로 이 목숨을 끊어버리고 지금의 이 현존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명이 늘어나고 의학이 발달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늦추고 물리치고 삶을 계속하지만 또 한쪽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죽음의 방문을 받고 소리없이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내 나이는 생각지도 않던 병으로 돌연히 죽을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적된 스트레스와 생의 무게에 짓눌려 갑자기 튀어나오는 병, 혹은 병이라는 것을 미처 감지하기도 전에 찾아오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예전과 똑같다.
지금 오늘 이 순간과 같은 생의 현존이 언제까지나 계속될거라고 생각하며....신체와 정신이 서서히 낡아가기는 할 망정 갑자기 그 기능을 멈추는 일은 없을거라고 막연히 믿으며 그저 하루하루 어리석게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한심하다.
감자를 심었다.
아니 감자를 묻었다.
작년에 어머니가 보내주신 감자를 먹지 않은 채 쌓아두었더니 싹이 잔뜩 나 버렸다.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니 감자인들 먹겠는가?
1주일에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먹는다 해도 거의 한 끼를 때우는 식으로 대충 먹고 만다. 그래서 어머니가 애써 농사지으신 감자는 방 안에서 싹을 키우며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버리자니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땅을 대충 일구고 감자를 묻었다. 그 중에 몇 개라도 살아서 감자꽃을 피우고 뿌리가 들게 된다면 이번에는 싹이 나기 전에 착실히 먹어보리라. 어설프기 짝이 없는 농사꾼 흉내처럼 사는 것이 다 그렇게 어설프게 대충 때우는 식이 되어버렸다.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아프다는 핑계로 많은 것을 유예하고 유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철저하게 하지 않아도 나는 아프기 때문에 모든 것이 용인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산 지가 꽤 되었다. 그러나 그건 다만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가족들은 어느 정도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봐 주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그건 통하지 않는 일이다. 아무도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나는 알리지도 않는다. 만약 내가 환자라면 나는 어설프게 일을 하지 말고 집에서 쉬면서 혹은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것처럼 행세하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나는 아프다. 허리가 아파서 오랫동안 앉아 있기가 힘들고 조금만 무리하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통증에 시달린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환자로 살아가기를 거부해 왔다. 그건 내가 원한 일이다. 장기적인 치료로도 완전히 나아질 수 없는 병이기 때문에 병을 끼고 살면서 아프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다. 아픈 것 때문에 번번이 의지가 꺾이고 더 철저히 해야 하는 일을 대충 넘어가게 된다.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아프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철저하게 살았던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되지 않는다. 나는 아픈 것을 이기기가 너무 힘들다. 자꾸만 의지가 꺾이고 요령을 부리게 된다. 싹이 나버린 감자를 묻으면서 나는 일상생활의 오랜 부재, 밥 해먹고 살기를 포기한 나의 일상에 대한 유기를 반성했다. 냉장고 속에 늘 오래 되어 썩어가는 음식을 담고 살아가는 일을 이제 더 이상 참지 말고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 아픈 것을 조금 더 참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어차피 나는 나 스스로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지 오래 되었다. 나는 환자가 아니다. 나는 환자로 살지 않고 고통을 참고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일상의 책임을 다 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러나....정말 힘들다.
....고 생각하지만 영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 정말 실망스럽고 풀이 죽는다.
그런데 사실은 나는 언제나 열심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열심히 한다는 것이 어디까지냐고 반문한다면?
정확한 기준은 없지만 나는 어쨌든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아도 답은 나온다.
자꾸만 자꾸만 열심히 하기가 힘들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성을 갖고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사실일까?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라는게 아주 엄청날 때는 자칫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다. 지극히 이중적인 인간, 위선의 도가 지나친 인간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만한 혐오감을 갖는가?
그리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얼마만큼 이중적인 사람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잣대를 가질 수 있을까?
거의 어려운 문제다.
나는 내가 얼마나 이중적인 인간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정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알고있는 아무개는? 또 아무개는? 그것은 더 알 수 없는 일이고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보는 일, 그것은 오랫동안 습성화되어 굳어버린 습관이라 할 수 있고....
투명한 사고란 지성보다는 감성의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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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꼭 보고 싶어요.부가 정보
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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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뭔가 싸워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기운 내세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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