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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농사

집 앞에 넓은 버려진(?) 땅이 있다.

작년에 아파트 공사를 한다고 철거를 하고 아직까지 공사 소식이 없다.

철거 할 때 그리도 요란하더니만...조폭들이 까만 잠바 입고 가슴에는 리본 달고

스무명 남짓하는 인원이 동네 어귀에 서서 지키다가 노래소리만 들릴 뿐 아무도 저항하는 사람 없으니까

지네가 타고 온 승용차에 삼삼오오 들어가 자는 꼴이란...그때 조폭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봤다.

어쨌든 공사 못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내가 접수했다.

남편은 땅을 개간하면서 자꾸 이런 말을 한다.

'자연은 누리는 자의 것이고 땅은 경작하는 자의 것이다.'

하긴 건설재벌들도 거의 공짜로 뺏다시피 원주민 땅을 수용한다.

 

먼저 집에서 팥을 불린다음에 모판에 하나씩 박아 넣는다.

예네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잎이 두 개고 몸통은 아주 가늘고 길게 나온다.

어떤 애들은 머리를 드느라고 고생한다.

흙을 뚫고 나오는게 힘든가보다.

모판에서 나온 애들이 100개쯤 되는 데 탁자에 올려 놓고 감상을 하니 마치 오브제 미술작품 같다.

 

이 팥 모종을 버려진 땅을 잘 개간해서 심는 거다.

너무 촘촘히 심으면 나중에 바람이 안통해서 병에 잘 걸린다.

그러니까 미래를 생각해서 조금 띄엄띄엄 심는 게 좋다.

모판에서 나온 애들이 광활한 대지 위에 뿌리를 내리는 것은 마치

광활한 바다에 홀로 헤엄치는 치어와도 같아 보인다.

강렬한 햇빛과 딱딱한 땅, 바람 그리고 쪼아먹는 새들...

과연 이 어린 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내가 하는 일은 이 새싹들을 돕는 일이다. 물을 주러 간다.

그 아이들이 너무나 훌륭해서 내가 감동받고 돕는 것이다.

모판에 있던 작은 잎은 뜨거운 햇살에 넓은 잎으로 두 뺨을 활짝 편다.

비가 오지 않는 가뭄 날에는 차려 자세로 잎을 아래로 접고 서 있는다.

그리고 가운데서 작은 잎들이 이번엔 세잎씩 나온다....

이렇게 이렇게 자라면서 팥 나무가 되어 간다.

 

들판을 보면서 아직 작은 새싹들이지만 숲 처럼 상상해 본다.

묘목처럼 서 있는 나무들로도 상상해보고...

그리고 한 나무에 팥죽이 한 솥씩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 백호 한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그림책을 그렸던 까닭일까?

대낮에 팥죽 아주머니와 백호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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