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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현씨에 대한 잡설

 

가끔 해외 뉴스를 보면, '못사는 나라' 정치 돌아가는 소식 전해준다. '잘사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부패한 독재자 소리 듣는 통치자에 저항하는 시위가 벌어졌다고. 꼭 그 소식과 함께 전해지는 장면도 있다. 그 통치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서 반대파에 대항하는 시위 모습. 이런 뉴스 보면 '저 나라 꼬라지 하고는...' 생각들 할 것이다. 정치수준 참 저질에다 민주주의의 'ㅁ'도 못 쫓는다고... 그런데 정말?

 

1. 자살

 

대한민국에서 부패한 전직 대통령 중 하나가 자살을 했다. 완벽한 사실이다. 이보다 진실에 가까운 말은 있을 수 없다.

 

왜 자살했냐고 하니 검찰이 갈궈서 그랬단다. 검찰 배후엔 MB가 있단다. 검찰이 갈군 것도 사실이고 그 배후에 MB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사실이다. 이보다 진실에 가까운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갈궜다고 자살했다니 완벽한 거짓이다. 놈현씨가 갈군다고 자살을 해? 쪽팔려서 자살한 것이다. 앞으로는 더 쪽팔릴 것이기 때문에 자살했다. 실은 앞으로 더 쪽팔릴 게 쪽팔려서 자살한 것이다. 그대로 살았다가는 온전한 위선자가 될 테니까.

 

놈현씨 스스로 결백하다면 자살할 이유가 없다. 당장은 검찰과 언론이 짜고 심하게 괴롭히겠지만 어차피 진실은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백한 놈현씨는 고통스러워도 버티기만 하면 더 많은 걸 챙길 수 있었다. 특히 자존심을. 버티기는 놈현씨의 장점이자 특기 아니던가. 하지만 그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측근이 부패한 걸 잘 알고 있었다. 썩은 냄새가 퍼지자 쪽팔렸던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쪽팔린 것 못 참는다. 애초에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는 두화니 따위가 아니라면 말이다.

 

2. 약자

 

또 많은 사람들이 힘센 MB가 갈구니까 놈현씨가 약자라고 한다. 무척이나 어처구니 없는 대목이다. 놈현씨는 '전직 대통령'이다. 한 마디 하면 기자들이 우르르 쫓아가서 9시 뉴시 탑으로 뜬다. 이 글을 쓰는 말걸기나, 읽고 있는 그대나 한 마디 하면 언론이 쫓아 오나? 9시 뉴스는 고사하고 인터넷 신문 귀퉁이에 몇 줄이라고 뜨나?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다고 해서 약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네언니도 MB에게 개기면 약자 되겠네? 부시의 미국이 후세인의 이라크를 밟을 때, 세계의 평화주의자들이 부시의 미국을 비난한 이유가 '약자'인 후세인을 괴롭히면 안되기 때문이었나? 오바마의 미국에 개기며 핵실험한 김정일의 북한은 약자냐? 놈현씨가 약자면 민주노총이나 환경련은 '절대약자'겠다. 이들을 흠잡고 괴롭히는 것들은 다 나쁜시키들 뿐이겠다.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약자는 봉착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3. 죽음

 

놈현씨가 '참 안됐다'는 생각은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죽은 자에게는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얼굴을 안다면 더더욱 그렇다. 어찌 무덤에 침을 뱉겠냐. 사람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다. 누구나 죽을 것이니 그렇겠지.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이중적 태도도 있다. 이 또한 누구나 그렇다. 놈현씨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놈현씨가 잘 죽었다고 한다. 주목받는 꼴통보수인사 말고 그냥 보통사람들 얘기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란 게 있긴 하지만 그걸 꼭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비인간적인 것도 아니다. 다들 그런 마음을 갖기 마련이니까. 두화니 사망소식 접한다면 좋아라 할 사람 꽤나 있을 텐데 대체로 욕먹을 짓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정치적 지지와 연결되면 이런 현상도 생긴다. MB의 적 놈현씨가 죽자 MB가 죽인 용산 철거민들의 영정이 다시 등장했다. 놈현씨가 패죽인 그 농민의 영정은 어디로 갔을까? 놈현씨가 농민만 죽였던가? 죽음, 죽은 자에게 불경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은 죽은 자가 죽음으로 모든 걸 청산할 때나 통해야 하는 얘기다. 보통사람들 중에 꽤나 지독했던 작자가 죽어 묻힌 무덤에 침뱉는 자가 있을 때나 불경하지 말라고 할만하다. 놈현씨처럼 죽음과 함께 자신의 모든 걸 청산할 수 없는 역사적 인물에게는 죽음도 평가 대상이 된다. 그네언니 아빠처럼 말이지.

 

4. 슬픔

 

이 글 맨 앞에 정치수준 어쩌고 했는데 그렇다면 놈현씨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는 거대한 물결을 보고 대한민국의 정치수준은 한심하다고 해야 할까? 핍박의 세월을 선사한 그네언니 아빠가 죽었을 때 대한민국 그 자체가 침통해 했다. 독재시대를 살고 있던 국민들은 확실히 정치수준이 낮다고 하면 되나? 그 이후에 민주화가 되었으니 지금의 민주시민들이 침통해 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제3세계 국가의 억압자를 지지하는 그 나라 대중들은 뭐냐?

 

통치자는, 그자가 설령 핵무기를 손에 쥐고 협박질 해서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한다 해도 누군가의 이해를 대변하기 마련이다. 이해만 대변하지 않는다. 지지자들은 감정적 동질감을 경험한다. 그래서 당연히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면 안타까와 하거나 슬퍼한다. 지지자들이 많다면 그런 분위기는 더 커질 것이다.

 

근조 리본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그들이 슬퍼하는 게 당연하니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민주시민이라면 당연히 슬퍼해야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이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는 아무 상관 없다. 정치적 주장일 뿐이다.

 

5. 평가

 

놈현씨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만들고 그 적인 MB 등은 나라 망치는 보수꼴통으로 규정하는 자들은 진정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을까? 부패한 놈현씨가 현직 대통령일 때 대한민국의 빈부격차는 심히 심해졌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놈현씨는 민생 아작나는 미국에 대한 굴욕적 외교에 자존심 걸었다. MB의 반동적 교육정책을 입안한 자가 놈현씨다. 아마도 소수의 삽집 아이디어를 빼놓고선 MB의 어처구니 상실 정책은 죄다 놈현씨가 닦아 놓았다.

 

이 대목에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균형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진 말자. 이게 정확한 균형이다. MB가 놈현씨보다 더 막간다고 해서 놈현씨가 '잘 한 짓'을 애써 찾는 게 균형은 아니다. 사실 놈현씨는 언론개혁 외쳤지만 개혁된 언론은 하나도 없다. 4대 권력 기관, 특히 검찰 개혁 하겠다더니 달라진 건 없다.

 

놈현씨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정치적 긴장과 적대를 바탕으로 자기 이미지를 관리한 빼어난 정치인이었다. 한국정치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놈현씨가 그네언니 아빠와 동시대에 정치했으면 아마도 그네언니 아빠를 이겼으리란 평가도 받는다.

 

6. 효과

 

어쨌거나 놈현씨는 한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2년 대선에서 놈현씨가 승리한 사건은 한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사건이다.  놈현씨는 적대관계를 새롭게 재편했고 이 적대를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흐름을 이끌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한발짝 더 다가갔을까? Oh, no!

 

놈현씨를 통해 드러난 적대, '민주세력 vs. 보수꼴통' 대결은 많은 문제를 덮어버렸다. 놈현씨가 죽은 지금도 이 적대는 유효하다. 놈현씨 분향소에 등장한 용산 참사 희생자는 MB가 죽였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그들을 죽음으로 몬 건 MB인 게 사실이지만 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엔 MB와 결탁한, 그리고 MB 이전에도 결탁해 온 개발자본의 탐욕이 있었다. 놈현씨 효과는 이 탐욕을 고발하지 못하도록 한다. 재임시절 놈현씨는 SS사에 무한한 신뢰와 의지를 보냈었다.

 

놈현씨의 효과는 그런 것이다. 심각한 사회 갈등이 있을 때 그 갈등의 본질적 요소는 배제한 채 표면적 요소를 선택하거나, 본질적 요소들 중 자기 정치에 도움이 될만한 것만 골라 갈등의 양상을 재편한다. 조중동과 열심히 싸우면서 비정규직 양산법은 한날당과 합의했었고 친미자주 한다면서 해외파병, 한미FTA, 군사기지 건설을 위해 국민들 협박까지 해댔다.

 

7. 감정

 

놈현씨에 대한 지지나 그의 죽음에 대한 광범위한 깊은 애도의 물결은 유행을 닮아 있기도 하다. '양식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려면 당연히 지녀야 할 태도랄까. 주식 따위 재테크, 자녀 교육 방식, 와인 따위처럼 알고 있어야 무식한 사람 대접 받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놈현씨에 대한 감정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유행과 닮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이기도 하다. MB 집권의 진정한 후원자이자 부패했던 놈현씨를 좋아하는 감정은 대단히 비상식적으로 보인다. 그 비상식을 다수가 지니니 상식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종교나 파시즘의 광기가 연상된다.

 

이런 감정을 사람들이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패했든 어쨌든 나름 장점을 지닌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스스로 초라하다고 여기거나 자존감이 부족하거나 꿈을 이루지 못하거나 자괴감을 느끼는 어떤 사람들에게 놈현씨는 자신을 대변한 인물일 것이다. 그가 성공해야 자기가 성공하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 이 정도라면 놈현씨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놈현씨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는 자는 자기를 부정하는 자로 여기고 분노를 발산할 것이다. 아마 식자라면 합리적이고 이성적 사고를 작동시키면서 말이다. 이성이 감정의 노예가 된 것도 무시하면서.

 

8. 관심

 

놈현씨 자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이때 정치적 관심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놈현씨의 치적과 과오 따지기? MB 일당 말살 프로젝트? 이런 것 필요하긴 할 것 같기는 한데 썩 내키지는 않는다. 왠지 놈현씨 효과 프레임에 갖혀 있는 듯하니까.

 

민주노동당은 여기저기에다 검을 플랭카드를 매달았다. 놈현씨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MB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찬 그 플랭카드를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당 품속에서 살지 못하는 건 북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 때문뿐인데, 왠지 이 태도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는 결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죄진 사람처럼 남의 일에 더 요란하게 앞장선다.

 

놈현씨 프레임에 열심히 쫓는 게 지지자들 빼앗아 오는 기법이라고 민주노동당은 항변할 지 모르겠지만 놈현씨의 정치적 성공과정을 살펴보면 덜떨어진 멍청한 생각일 뿐이다. 놈현씨의 성공은 프레임을 (완전히 뒤집지는 않았어도) 재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람들이 비이성적 광기에 휩쓸리는 동기, 양태와 새로운 프레임, 대결 구도 형성 방법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된 듯하다. 물론, 언제나 과제였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주체형성에도. 얼마나 기댈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 없었으면 부패한 전직 대통령에게 사랑을 쏟겠나.

 

9. 기타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 받다가 노무현 자살 소식을 접했다. TV를 켰더니 이 사건으로 도배질 중이더라. 특히 MBC는 장난이 아니었는데 역시 '추모'도 '정치'였다.

 

놈현씨 자살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난 자는 두화니다. 두화니는 갈 때까지 가고 갖은 쪽 다 팔렸어도 자살하지 않았다. 뻔뻔함도 장난 아니지만 아마도 숨겨 놓은 돈이 많아선가 보다.

 

지난 1주일동안 이 정도 글도 못 쓸 정도로 정신이 없었는데 머릿속에서만 맴맴 돌던 말들을 꺼내니 조금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놈현씨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도 유행인 듯하다. 어쨌거나 말걸기처럼 놈현씨 죽음에 전혀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