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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비정규직 담당' 최고위원

 

민주노동당은 총선 후 최고위원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13인의 최고위원 중 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과 같은 선출 때부터 특별한 지위를 가진 자는 6인이고 7인은 그냥 최고위원이다. 지난 지도부까지는 나머지 7인도 당헌-당규에 따라 특정한 지위를, 당선 후에 부여받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학생-청년 담당 최고위원' 따위.

 

선출부터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는 최고위원 중 하나가 노동부문최고위원인데, 이는 민주노총에게 배타적 추천권이 있어서 민주노총이 추천한 후보에 대해서 찬반을 묻는다. 민주노총이 지난 최고위 선거에서 추천하지 않아 민주노동당에는 지금 노동담당이 없다.

 

그런데, 일반명부 최고위원이 된 이해삼이란 자가 있다. 이 사람은 작년에 당의 비정규직운동본부장을 지낸 이력을 앞세워 당선되었는데, 당의 비정규직 사업 담당 최고위원처럼 되었다. 그는 여전히 비정규직운동본부의 활동을 이끌고 있다. 즉,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 사업의 대가리이며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갖고 있는 '노동'에 대한 개념이 무엇일까 의아해지는 일이 벌어졌다. 4월 11일 최고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 것이다.

 

"상근자는 일반 노동자와는 다른 정치간부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퇴직금 지급 문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 사람의 활동을 주욱 지켜보는 사람들의 일반적 평가는 '똑똑하지는 못해도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또는 '그 사람의 진정성은 어찌 의심하겠는가'이다. 이해삼 최고위원은 예전에 당의 기획위원장을 역임했던 적이 있었는데 별 기획을 내놓지 못했었다. 정치기획이란 팽팽 돌아가는 머리가 있어야 하나 그게 없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당시 그가 의욕적으로 기획안을 제시했다가 웃음거리가 된 사업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전당원 헌혈 캠페인'이었다.

 

이 사람이 똑똑하지 못한 건 지난해 비정규직운동본부장일 때도 확인되었다. 지난해 당의 비정규직 사업의 방향은 냉철한 정세분석이나 정책적 정교함을 요만큼도 반영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사업장을 쫒아다녔고 농성만 열심히 하였을 뿐이다. 물론 열정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똑똑하진 못해도 믿을만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단지, 정책위원회의 담당 연구원과 그와 함께 노력했던 몇몇 사람들이 성과를 냈을 뿐이다. 소위 한방 먹인 건 다 이들 손에서 나온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 등.

 

이제는 이 사람에 대한 평가도 수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 사람은 '노동자'를 자본주의의 질서에서 특정하게 위치한 자들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게 '자본가가 고용한 자'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벌기 위해 기업 만든 자를 자본가, 이 기업에 고용된 자를 노동자, 이걸 문구대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노동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특례', 그로 인한 '제외'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권의 개념이 성장한 20세기에는 착취를 해도 룰이 필요하다는 걸 확인했고 이때문에 계급 타협으로 노동법 따위의 룰이 만들어졌다. 약자인 노동자를 최소한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일반 적용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소위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최소 보호 장치를 무력화하기 위해 별별 논리와 계약관계를 만들어댔다. 사실 이것들은 신자유주의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자본가가 호시탐탐 노리다가 전방위 공세를 하게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게 바로 특수고용직이니, 노동자성이 있니없니, 똑같은 일은 해도 돈도 적게 주고 기간을 정할 수 있다느니, 이런 직종도 파견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느니 등등.

 

일반적 룰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일.반.적. 방식이 바로 예외, 특례를 마구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되는 거고 약자가 기댈 수 있는 기둥은 쓰러져 버린다. 결국 야만이 일반적 규범이 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 그리고 세계의 노동자들은 이 국면에 있는 것이다.

 

 

이해삼 최고위원은 이 사실을 알까? 자신의 노동관으로 이걸 파악하고 있다면 그것도 미스테리다. 수 세기에 걸쳐 굶주림에 허덕이거나, 길거리에서 피를 흘리거나, 잡혀가 고문당하다가 끝내 죽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만들어냈던 '노동의 일반 규범'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당하게 "상근자는 일반 노동자와는 다른 정치간부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말 한마디로 깔끔하게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도 자기는 확실히 '자본가'나 '기업의 이사'가 아니니 당의 상근자는 노동자일 수 없다는 신념에서 우러나온 말인 듯하다.

 

한국의 고용관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은 민주노동당에는 없고 오히려 노동관청이나 법원에 있을 것 같다. 아마도 퇴지금 문제 등이 법적인 문제로 비화하게 되면 민주노동당의 상근자의 노동자성은 노동관청이나 법원이 인정해 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