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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뭐예요?" - (1)

 

나의 게으름과 귀차니즘은 상당한 깊이가 있다. 얼마나 질질 끌었는지 3년이나 되었다. 아마 그 정도 되었으려니 기억하고 있다. 3년 전에 사무실 근처 치과엘 갔었다. 어금니 때운 금덩어리가 떨어져나가서였다. 결국 어금니 전체를 덧씌우는 치료를 받았다. 그때 치료를 담당한 의사가 사랑니 빼란다.

 

"빼 주세요."

"이건 큰 수술이라 종합병원 가세요."

 

미루다 미루다 3년이 지난 어제서야 세브란스 치과병원엘 갔다. 외출 준비를 미적미적대다가 낭패를 당할 뻔했다. 사실은 지난 월요일에도 갔었는데, 미적대다가 접수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한 것이었다. 그날은 설마 5시면 접수는 받겠지 했었다. 어제는 마감시간이 4시 30분인 걸 알고 있었느니 좀 일찍 나가자 맘 먹었지만, 몸은 어슬렁어슬렁 움직이기도 싫어 치과병원 로비에 도착한 시각이 4시 21분 경이었다. 접수대기표 뽑고 내 차례가 되어 접수처에 갔더니,

 

"저기가서 신청서 작성해 주세요. 빨리 하시면 진료 받으실 수 있습니다."

"네"

 

어디서 어떻게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지 몰라 살짝 헤맸다. 어쨌든 접수를 마친 시각은 거의 4시 30분. 이것저것 한보따리를 건네주었다.

 

"서둘러 5층 구강외과로 가세요."

"5층이요? 네."

 

5층. 로비 접수처에서 받은 한보따리를 구강외과 접수창에 들이밀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사랑니 빼러 왔는데요."

"이거 가지고 4층 수납을 들렀다 방사선과로 가세요. 사진 찍고 올라오시면 됩니다."

"네."

 

4층에도 수납하는 데가 있었다. 주로 X-레이 찍는 돈을 내는 곳인 듯. 돈 내고 방사선과에 가서 조금 기다렸다 사진을 찍었다. 오, 신기하대. 내 구강구조를 입체적으로 찍기 위해서 그런지, A5만한 검은색 판이 내 왼쪽 뺨쪽에서 정수리를 넘어 오른쪽 뺨까지 '지잉~'하면서 움직였다.

 

"다 되었습니다. 구강외과로 가시면 됩니다."

"네."

 

이 공정을 마치니 4시 40분 정도 되었다. 병원에 와서 20분도 안되서 진료 준비를 완료했다. 3년 기다린 것 치고는 좀 짧았다. 하지만 의사를 만난 것 한참 뒤였다.

 

5시가 다 되어서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의자에 앉혀 놓고 기다리란다. 처음에 기다리는 건 지겹지 않았다. 내 바로 앞 LCD 스크린에 좀 전에 찍었던 X-레이 사진이 이따만하게 나와있지 않은가. 아~ 내 이들이 저렇게 생겼군. 재미와 함께 걱정이 드는 내 이들. 양쪽 아래에 있는 사랑니가 장난이 아니었다. 90도로, 진짜 90도로 누워있었다. 게다가 옆에 있는 어금니 뿌리에 바싹 붙어 있었다. 내가 저것들을 빼러 왔다 이거지...

 

그러다 X-레이 사진을 보는 것도 지겨워졌다. 앉아서 졸았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한참 기다리는 내게 눈치가 보였는지,

 

"선생님들이 다 어디 가셨지?"

(부산하게 돌아다니다) "선생님, 저기 초진환자 좀 봐주실 수 있었요?"

 

5시 30분이 다 되어서 젋은 의사가 들어왔다.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사랑니 빼는 얘기를 한다. 1-2주간 통증이 있고, 한달은 되어야 불편함을 못 느끼고, 6개월 정도는 되어야 완치된다고 할 수 있단다. 완치란, 이가 없어졌으니 남은 이들이 제자리 찾는 시간이라나. 그리고 겁나는 얘기를 또 한다. 내 사랑니 뿌리 근처에 신경이 지나가고 있는데, 수술 중에 그게 상처 입을 수도 있단다. 그러면 아랫입술과 그 아래 안면의 감각이 둔해진단다. 대략 6개월에서 1년 정도 있으면 자연 치유되는데 소수의 경우는 영구적으로 그렇게 된단다. 으이그~.

 

"한쪽 뽑고 나서 얼마나 있어야 다른쪽 뽑을 수 있죠?

"한달은 기다려야죠. 음식 씹는 게 불편하지 않을 때까지요."

"저 6월 25일 경에 한 달 동안 시베리아 가는데요."

"가기 전에 한쪽 뽑고, 갔다 와서 마저 뽑아도 돼요. 예약을 하시면 한 달 후 정도에 뽑을 수 있을 겁니다."

"5월 말이라... 한쪽 뽑고 갈래요. 왼쪽부터 뽑아주세요."

 

예약은 간호사가 담당이었다.

 

"지금은 6월예약밖에 없는데, 시베리아 가신다니 5월 17일로 해드릴게요. 하지만 오셔서 좀 기다리실지도 몰라요. 9시까지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근데, 직업이 뭐예요?"

 

 

자, 이제까지가 서론 격이다. 애초에 하고싶은 얘기는 이보다 짧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중에 쓸란다. 지금은 알바를 해야 한다. 오늘 해 뜨기 전에 끝내지 못하면 괴로와지는 알바다. 왜냐고? 깊은 게으름과 귀차니즘으로 미루고 또 미룬 알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