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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활동가'에게 싹트는 '정치적 욕망'

 

행인님의 [기냥...] 에 관련된 글.

행인이, "가끔은 내가 기냥 확 변호사고, 교수고, 국회의원이고 해버릴까 그런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래놓고선, "나약하게도..."라는 말은 붙였다.

 

 

소위 '활동가'라는 직업 혹은 정체성을 가진 자들이 갖는 '정치적 욕망'의 발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건 내 맘대로 구분한거다.

 

'활동가' 직업을 유지하다 보면 죽죽 올라가다 멈추는 시점에 다다른다. 이 바닥에서 해볼 건 다 했다는거다. '교수'나 '변호사' 등 이 사회에서 알아주는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표'까지 해먹기는 어렵고 고작 '처장'이나 '집행위원장'을 맡는다. 이쯤 되면 '미래'를 생각한다. "나도 이 나이에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그래서 한 급수 업그레이드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런 저런 방안을 모색한다. 놀라운 정치적 막후 교섭력으로 힘센 정당들과 거래를 트며 '시민사회의 이너써클'이 된다거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거나, 아니면 '공천'에 기웃거린다.

 

두번째는, '전문가' 집단의 그 치사하고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작태에 치를 떨다가 갖게 되는 욕망이다. "이것들한테 비비느니 내가 차라리 국회의원하겠다." 이쯤 되면 국회의원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도 안다. 행인이라면 변호사나 교수가 되는 방법도 잘 알거다.

 

 

위의 두 가지 경우는 겉보기에는 같은 결과이다. 사실 인간의 내면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두번째가 더 '순수한 욕망'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욕망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애초의 계획은 수정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옥 구별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렇게 둘 사이의 경계가 차츰 흐려진다 해도 두 가지 욕망은 다르다. 동기에서 다른 점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욕망이란 건 '순수'한 게 없으니까, '순수'의 기준은 쓸데없다. 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냐 아니냐도 구분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자기가 좋은 게 아니면 국회의원이고 나발이고 할 이유가 없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문제 해결의 의지'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지위를 획득하고 그 지위를 이용해 사회 문제에 접근하여 정치 활동을 하는 자와, 정치적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회 문제를 소재로 삼는 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개념적으로 구별하는 건 사실 어렵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관으로 정치인들을 평가해보면 선명하다.

 

 

나도 소위 '정치적 욕망'을 갖는다는 건 활동가로서 뻘쭘한 태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당에서 일하다 보니 '정치적 욕망'을 갖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라는 걸 깨닫긴 했지만 나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차라리 내가 국회의원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라는 것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보수정당 국회의원 흉내나 내면서 '정치적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사회 문제를 소재로 삼'아 정치 활동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반세기 이상 국회가 쌓아놓은 부르조아지 정치 문화에 익숙해지는 게 수준높은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뼈속 깊이 새기며 국회를 드나드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저것들은 원래 좌파가 아니었군... 내가 속았다... 쪽팔리게 정치를 저렇게밖에 못하나... 좌파라면 부르조아지 정치 문법을 거부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지... 쯧쯧... 바부팅이들... 저런 것들보단 내가 훨씬 낫겠다. 내가 국회의원하는 게 낫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행인도 이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을거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결코 '나약'한 게 아니다. 지금의 처지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피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아니다. 혹은 무엇이든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겠다는 생각도 아니다. 난 오히려 활동가들이 이런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실제로 일하고 문제 해결의 방안을 찾아내고 조직을 하고 연구를 했던 활동가들이 '정치적 욕망'을 갖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활동가들이 많이 생겨야 진보진영 내의 정치적 경쟁이 합리화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씩 바닥을 박박 기는 활동가들이 '순수성'이나 '고상함'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저런 수단을 다 동원해도 활동가들이 국회의원이나 전문가 앞에서 초라해지는 상황(이건 결코 주관적인 초라함이 아니다!)이 반복되는 걸 경험하면서도 그들을 뭉개버릴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어리석게 보일 때가 있다.

 

물론, '정치적 욕망'을 키우는 게 별달리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에 어울리지 않는 활동가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정치적 욕망'이란 진정 '사회 문제의 해결'일 것이다. 이런 걸 활동가의 자세나 윤리, 정치적 자세 따위와 연관짓지 말고 '성격'이나 '취향'으로, '나름대로의 삶의 선택'으로 연관짓는 문화가 있었으면 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 활동을 하는 자와,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문제를 소재로 삼는 자를 구별짓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게 한국 사회, 특히 진보진영이 합리화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이다. 이 조치를 위해서는 정치의 영역에 손을 많이 대야 한다. 손을 대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정치의 영역에 스스로 끼어들기 하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저것들 교통정리 해야지'하는 생각, 그 의지, 그 실천.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가 국회의원이 된다면?' '내가 장관이 된다면'하는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성격과 취향에 맞아 진짜 도전하기도 할테니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름의 활동 방식은 있으니까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은가.

 

가끔 생각해 보시라! 행인이 국회의원 되면 국회가 어찌될까? 재밌겠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