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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0/31
    28mm 시대를 열다(9)
    말걸기
  2. 2007/10/30
    분위기 잡던 그녀가...(11)
    말걸기
  3. 2007/10/26
    예의 없는 것들(4)
    말걸기
  4. 2007/10/24
    망하려면 멀었다(5)
    말걸기
  5. 2007/10/15
    깊은 좌절(9)
    말걸기
  6. 2007/10/08
    남이섬(11)
    말걸기
  7. 2007/10/06
    행인의 굴욕(6)
    말걸기
  8. 2007/10/01
    말걸기의 '주사파 전력'(5)
    말걸기

28mm 시대를 열다

 

'시대'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가져다 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주말 28mm 단렌즈를 산 후로는 몇 번에 걸쳐 이 렌즈만 사용하고 있다.

일단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FM2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수년 간은 50mm 단렌즈 하나로 사진을 찍었었는데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55mm 단렌즈였다),

크기가 하나로 정해진 상자로 세상을 잘라내야 했다.

화면 구성을 위해 앞뒤로 움직여 가며 바쁘게, 그러나 진중하게 셔터를 누르던 시절이었다.

 

28mm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한 듯하다.

그때와 다른 점은 이제 이 렌즈로만 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원근감, 가까운 대면으로 잡히는 질감, 또 그 무엇이 있을까.

 

이런 점은 말걸기가 최근 사진공부를 시작하면서 배우는 것들이다.

주변의 도움을 얻어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데에 있다.

 

 

아래는 지난 일요일 영종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질감'이 주요한 소재이다.

물론 시간이 끼어든 사진도 있지만.

 

 

@ 을왕리 해수욕장

 

@ 을왕리 해수욕장

 

@ 여단포 앞 갯벌

 

@ 여단포 앞 갯벌

 

@ 여단포 앞 갯벌

 

@ 여단포 앞 갯벌

 

@ 선녀바위 근처

 

@ 선녀바위 근처

 

@ 선녀바위 근처

 

@ 선녀바위 근처

 

마지막 사진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진이다. 배나 하나 떠 있었으면... 갈매기가 지나가든가.

 

 

이 사진들을 나중에 정리하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건 수평선의 높이이다.

찍을 때부터 이걸 염두에 두었다면 앞의 사진들,

주로 질감을 담고자했던 사진들의 완성도는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배우는 것도 좋다.

그래도 계속 후회만 하면 안 되는데...

 

 

분위기 잡던 그녀가...

 

지난 토요일 '저질' 렌즈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28mm 단렌즈를 하나 마련했다.

D200에 끼워 봐야 42mm로 휙~ 탈바꿈 해버려 참으로 안타깝기는 하나

그래도 원근감 좋은 표준렌즈 역할을 하니 이래 저래 '컨셉' 사진 찍기는 좋다.

 

새식구 맞이 기념으로 파란꼬리와 호수공원에 놀러갔다.

파란꼬리, 나름 분위기 잡았다.

 

 

 

 

긴 시간 노출로 파란꼬리는 흔들렸지만 그게 오히려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인물과 배경의 완전한 분리...

연극 무대 위의 한 장면 같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파란꼬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

이렇게 바뀌었다.

 

 

 

 

유령으로(조금 잘 봐주면 선녀로) 돌변하였다.

파란꼬리의 혼자놀기의 진수이다.

 

그리고 관객인 말걸기 앞이라 더 신나는 연출을 선보였다.

 

 

 

 

한 장의 사진으로도 많은 궤적을 담을 수 있다.

그 궤적이 표정이라 참으로 재밌다.

 

호수공원에서 애초에 담아보고자 했던 건,

밝은 배경 앞의 어두운 그 무엇이었다.

 

 

 

 

제대로 담지 못했다.

그래도 파란꼬리 덕에 훌륭한 배움을 얻고 돌아왔다.

 

 

요즘 밤이 많이 추워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행여 세상을 뒤집어 놓을 사진을 찍었을지도... ㅎㅎ.

 

 

예의 없는 것들

 

말걸기야 원래 예의 없는 놈이긴 하나,

예의 없는 인간들 보면 확 짜증이 밀려 온다.

 

 

집에 혼자 앉아 있으면 가끔씩 초인종이 울린다.

택배 배달 같은 거야 기다리고 있으니 '왔구나' 싶어 반갑지만

'도대체 무슨 일?'하며 화들짝 놀라게 하는 초인종 소리는 딱 두 가지다.

 

통장이나 반장이 아파트 일 때문에 찾거나 낯선이가 선교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통장이나 반장은 반가울 것 없지만 그래도 나름 사정이 있는지라 귀찮지도 않다.

그냥 덤덤한, 건조한 대면으로 끝.

 

선교 목적의 방문은 그 자체로 '사람 귀찮게 하네'이다.

전혀 관심도 없고 상관도 없는 이유로 하고 있던 일을 멈추어야 한다는 건 살짝 짜증이 난다.

그런데 선교하는 사람들도 다 같지는 않다.

상대를 귀찮게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초인종 소리에 인터폰 들고 '누구세요?'라고 물으면

'어디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예의 있는 사람이다.

그 말 한 마디로 선교하러 왔다는 걸 알 수 있고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걸 곧바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

 

반면 어떻게 말 좀 붙여보려고 횡설수설부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조금 전에도 어떤 아줌마가 초인종을 눌렀길래 '누구세요?'라고 물어 봤더니

문부터 열고 대화나 해 보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세상의 어두운 소식만 들리고 어쩌고 횡설수설 한다.

말을 끊어서 왜 왔냐고 하니까 그제서야 교회 어쩌구 한다.

 

이런 사람들은 예의가 반푼 어치의 절반도 없는 사람들이다.

남의 집을 찾아 왔으면 자기가 누군지 왜 왔는지부터 밝히는 게 예의다.

그저 자기네 신 믿으라고 꼬셔댈 말들이나 지껄이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말걸기가 행여 신앙으로 돌아갈 일 있어도 저 따위 것들이랑은 상종을 안 할 테다.

싸가지 밥 말아먹은 것들!

 

 

망하려면 멀었다

 

천지가 온통 뒤숭숭한 이 시대, 민주노동당도 맛탱이 가고 있다. 물론 어제 오늘 벌어진 갑작스런 사태는 아니다. 수년 간 벌어진 일이라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오래된 만큼 절망은 깊이 파고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1.

 

 

이명박이랑 신나게 족구하는 한국노총에게 허리 90도 꺾고 사죄하는, 그것도 대선이 다가온답시고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민주노동당에게 쬐끔의 자존심이라도 있는가 싶기도 하다. 한국노총이 이명박이랑 놀든 누구랑 놀든 상관할 바도 아니고 선거 다가오니 뻔뻔하게 굽실거리는 것도 봐줄 수는 있으나 어떻게 노동자의 파업권과 전임자 임금 건을 바꾼 한국노총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그 보다는, 파업권, 복수 노조 따위의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 권리와 전임자 임금 건을 두고 내심 갈등했던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유력한 배후 중 하나라서, 그래서 한국노총에게 이렇게 사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조직노동자를 아주 많이많이 배신한 것은 아니라는 게 더 좌절스러울 따름이다.

 

 

정당에 고용된 사람이 진보를 추구하는 활동가라면, 그리고 그 정당이 진보정당이라면 결코 노동자가 될 수 없다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는 자들이 있다. '노동자'가 악마 같은 자본가에 대항하는 무슨 선한 존재도 아니고 '노동조합'이 프롤레타리아 혁명를 집행하는 결사대도 아닌데 당 지도부는 자본가가 아니라고 둘어대니 어이없다. 프롤레타라이가 적어도 백 년은 피흘리며 만들어 놓은 '부르조아 시대 노동법'도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부정하다니.

 

그 보다는, 예산을 확정할 수 있는 당대회 권한을 임단협에 한해서는 당대표에게 위임하라는 결정을 내린 당대회는 점점 더 또라이 집단이 되어간다는 게 한심하다. 이 따위 말도 안되는 안건을 노조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최고위가 만들어 올려도 대의기관이 거르지 못한다는 건 당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걸 보여준다. 민주적 절차가 그때 그때 편의에 따라서 고무줄이 되어버린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의 기치 아래 농활 다니는 권영길의 모양새는 아무래도 삐꾸다. 경선 직후 상공회의소부터 다니기 시작한 권은 문국현을 열나 까는 듯 하더니 손잡아 보자고 하질 않나 여느 부르조아지 정치가의 길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100만 민중대회가 뻥카로 들통날 일만 남았는데 그 후 대책은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 뭐하자는 것인지.

 

권의 공식적 발언은 권캠의 몇몇에 의해 좌우되고 있고 권이 지나는 길 또한 자민통 지역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정해지니 내용 있는 대선이 될 리가 없다. 당의 주장을 일관되게 다루어 온 기관은 권의 발언에, 그 발언의 기초에 아무런 영향과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사적인 방식으로 대선 조직이 움직이고 있는가.

 

 

이 사태로 확인된 바가 있다. 우파는 결코 진보정당을 이끌 자격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예전에는 단지 우려했던 바에 그쳤으나 이번 대선을 계기로 철저히 검증했다. 정치에서는 악당보다 나쁜 게 무능한 놈이니 우파가 악당보다 나쁜 존재라는 것 또한 뼈저리게 확인했다.

 

이런 좌절이 더욱 좌절인 이유는, 좌절로 이끈 당내 무리들에게서 어떻게 당권을 빼앗을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 전망이 보이지 않아 당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적은 아직 아니 지웠어도 당을 향한 마음을 지운 이들이 수두룩하다. 진정 우파의 승리가 다가 오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왜냐하면 아직 민주노동당 내에서 확인해야 할 게 남았기 때문이다.

 

 

2.

 

 

민주신당 따위야 원래 이 나라를 쌈 싸먹은 놈들이니 이명박 대안으로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국현을 지켜보고 있다. 문국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쩌구 저쩌구...해 봐야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도 않는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X됐다.

 

어쨌거나 확인되지 않은, 검증되지 않은 사람 혹은 세력을 새로운 희망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언제나 있는 일이다. 대중은 일단 희망적으로 보이면 안 따진다. 민주노동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심상정이 예상 밖 약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주노총 중앙파의 빽만이 아니었다. 당무에서는 어떤 것도 검증 받은 적 없는 심상정이 뜬 건 '묻지마 신뢰'도 작용했던 것이다.

 

당내 우파와 그 떨거지들은 그들의 무능을 스스로 확인해 주었다. 그럼 이제 민주노동당이 갈 때까지 가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남았다. 당내 좌파의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적지 않은 당원들이 당내 좌우 갈등을 혐오하면서도 은근히 좌파를 지지하고 있다. 전폭적이지는 않더라도. 또한 적지 않은 당원들은 좌파가 당권을 장악해도 당이 똑바로 될까 의심하기도 하지만 우파보다야 훨씬 나을 거라고 믿고 있다.

 

정치의 요체 정당에서 무능을 발휘한 우파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 이제 좌파에 대한 평가만 남았다. 좌파가 평가를 받고 이들에게도 미래가 없다는 걸 모두가 확인할 날이 서둘어 와야 한다. 이 날이 오면 밑천 거덜난 민주노동당을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나을 거라 생각한 좌파 무리의 무능도 확인해야 진보진영 내 더 이상 믿을 세력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이쯤 되어야 다시 시작할 이유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새로운 주체의 형성이다. 새로운 주체 형성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모두들 기피하고 있다. 그래서 좌파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면 새로운 주체 형성은 없다.

 

문제는 좌파가 우파로부터 당권을 빼앗지 못하면 그 검증의 계기는 자꾸만 뒤로 미루어진다는 점이다. 결국 새로운 시작은 자꾸 멀어진다. 과연 차기 당권 선거에서 좌파는 승리할 수 있을까.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망하려면 멀었다. 그래서 지금 탈당하거나 당을 외면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망하는 꼴을 지켜보며 모두 함께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 이 깨달음이란 검증되지 않은 자들에 대한 묻지마 희망 따위는 버리고 기획과 실행 능력을 갖춘 자들을 선별하게 된다는 걸 뜻한다.

 

 

깊은 좌절

 

지난 토요일.

두 사람의 사진 전문가에게 말걸기이 사진을 선 보일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작가이자 비평가, 또 하나는 작가.

사진 바닥에서는 한 가닥 하는 인물들.

물론 말걸기 혼자서만 보인 것은 아니고 여럿의 작품을 두고 이런 저런 품평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 두 작가 모두 말걸기 사진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했다.

아무래도 평가할 가치가 없었나 보다.

 

얻어 들은 말이라고는,

"렌즈부터 바꿔라."

하기야 '저질' 렌즈 사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남이섬

 

최근에 FOX TV에서 <겨울연가>를 방영했다.

어제로 끝이 난 이 고릿적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남이섬이 가고 싶어졌다.

파란꼬리는 친구들과 가 본 적이 있는데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난 김에 남이섬 방문 계획을 수립(!)하고 휘리릭 열차표를 예매했다.

지난 주 일요일, 오전에는 찌푸린 날씨였지만 오후에는 적당한 구름과 파란 하늘이 낭만적이었다.

 

남이섬행 배가 있는 선착장은 가평역에서 택시를 타면 3,500원에서 4,000원 사이의 요금이 나온다.

이곳까지의 버스는 자주 없어서 열차 도착 시간과 맞추기 어렵다.

자가용이 없다면 그냥 택시 타는 게 편하다.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자주 있고 남이섬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남이섬까지 가는 대중 교통편은 어려움이 없다.

단지 여러 번 타야 하니 번거로울 뿐이다.

 

남이섬은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섬의 휼륭한 숲과 들, 낭마적인 산책로는 방문객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한다.

그러나 다시는 이 섬에 가고 싶지 않다.

 

입장료가 배삯까지 8,000원인데다가 식당들은 바가지다.

음식값이 많이 비싼 건 아니지만 성의가 별로 없다.

가격 대 질로 따지자면 먹고 싶지 않은 음식들이다.

이날 파란꼬리와 둘이서 하루 나들이에서 쓴 돈이 10만 원에 달한다.

뭐 사치스럽게 논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남이섬 주인은 이 섬의 역사성과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위락시설의 이름이 '남이 공화국'이라니.

 

결국 남이섬은 들이는 비용에 비하면 얻는 것은 너무 적다.

 

솔직히 이 섬의 들과 숲, 산책로는 어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폼 나지는 않아도 그 이상의 낭만을 선사할 곳은 분명 있다.

 

<겨울연가>에 엮여서 돈들여 남이섬에 다녀왔지만 후회는 없다.

쓸데 없는 낭만 하나는 지워버렸으니까.

무엇보다 그날은 파란꼬리와 즐겁게 보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남이섬에서는 D200이 아닌 FM2에 흑백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었다.

필름 스캔이 제대로 안 된 건지 화질이 좀 이상하다.

인화를 해봐야 확인할 수 있겠다.

 

 

남이섬에는 메타세쿼이아 길이 유명하다.

쭉쭉, 그리고 빽빽한 메타세쿼이아 숲의 느낌이라기보다는 그냥 길가에 이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느낌이라 깊은 숲길의 맛은 없다.

그래도 생김새 자체가 워낙 폼나는 나무들이라 보기에는 좋다.

 

@ FM2 | Nikkor 24-50mm F/3.3-4.5D | 24mm | ISO 400 | f 5.6 | 1/60 s

 

파란꼬리가 메타세쿼이아 길을 방문한 기념으로 폴짝 뛰고 있다.

참 잘 뛴다.

 

@ FM2 | Nikkor 24-50mm F/3.3-4.5D | ISO 400 | f 8.0 | 1/125 s

 

남이섬에는 나무들도 시원시원한 숲이 있다. 분위기 좋다.

이 숲에는 앉을 곳도 많아서 도시락 까먹기도 좋고 책을 읽기도 좋다.

 

@ FM2 | Nikkor 24-50mm F/3.3-4.5D | ISO 400 | f 4.0 | 1/125 s

 

여기서 파란꼬리는 진짜 책 읽는 게 아니고 말걸기의 부탁으로 폼 잡고 있다.

 

남이섬에는 숲으로 둘러싸인 너른 잔디밭도 몇 개 있는데 탁 트인 하늘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FM2 | Nikkor 24-50mm F/3.3-4.5D | 50mm | ISO 400 | f 8.0 | 1/250 s

 

위 사진은 구름의 형체가 보이도록 했더니 거칠어졌다.

이 잔디밭은 참으로 편안해서 돗자리 깔고 소일하기 적당했다.

파란꼬리는 여기서 정말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 FM2 | Nikkor 24-50mm F/3.3-4.5D | ISO 400 | f 8.0 | 1/500 s

 

파란꼬리는 이날 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이제 남이섬보다 더 폼나고 저렴한 곳을 찾아서 또 나들이 가야겠다.

 

 

행인의 굴욕

 

행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빌리아드 에버리지'가 200인데 '문래동 짠다마'이다.

 

지난 금요일 시내서 볼 일 좀 보고 행인의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행인은 말걸기가 손님이랍시고 저녁을 사주더니 소화를 위해서 당구장엘 데려갔다.

 

말걸기로 말할 것 같으면 17년 동안 '빌리아드 에버리지'가 50밖에 오르지 못한 '물 80'이다.

 

말걸기의 마지막 쿠션은 쫑나서 들어갔다.

행인이 당구비 물렸다. ㅋㅋ.

 

 

***

 

 

이 날 행인이 괴로워 했던 일은 따로 있다.

말걸기 말 안 듣더니 혼쭐 났다.

아직도 혼나고 있으려나?

 

주말에 잘 해야 할 터인데 어쩌고 있을까.

그래야 연애 자랑 더 하지.

당고님 쫓아 '염장질' 어쩌구 하더니 샘통이닷. ㅋㅋ.

 

 

말걸기의 '주사파 전력'

 

행인님의 [민주노총, 많이 쪽팔리겠다] 에 관련된 글.

 

 

위 행인의 글을 읽고선 생각이 났는데 말걸기에게는 '주사파 전력'이 있다. 지난 해 말에 말걸기의 신념 체계의 변화를 더듬었던 글, [우익이나 될까부다]에서는 이 전력이 빠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말걸기의 '주사파 전력'은 '신념'의 영역이 아니라 '규정'의 영역이기 때문이었다.

 

 

최근 정보통신부가 김일정, 김정일 부자를 찬양하고 북한 체제를 하느님  나라처럼 그리는 글들을 삭제하라고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에 명령했다. 그 근거는 <망법>이라고 불리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의 이름은 예전에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었는데 2000년도에 온라인 검열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법 개정이 추진되면서 이름도 길어졌다. 물론 이 개정 법률의 '정보보호' 규정들은 프라이버시를 심히 침해하는 조항들이라 다시금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어쨌든, 2000년도와 2001년도는 이 법률과 <전기통신사업법>의 '불온통신' 문제로 정보운동진영이 '표현의 자유'를 모토로 새롭게 조직되고 투쟁하던 시기였다. 정보운동진영은 강제적인 인터넷 내용 등급제와 국가 기관에 의한 강제 삭제에 맞서 싸우면서도 내부에서는 논쟁이 있었다. 과연 모든 표현물을 옹호해야 하는가?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표현,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 차별(성, 인종 등)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법적 테두리에서 손을 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이 많았던 듯하다. 물론 이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표현물이 실.질.적.인.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저분해도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원칙은 국가권력이 강제하는 법적 테두리이고 이와는 별도로 온라인에서 집짓고 사를 이들은 사적 영역에서 각자의 윤리적 규제를 행할 수 있다. 법적 강제는 처벌이 따르므로 심각하게 개인의 표현의 자유(뒤집으면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게 될 수 있다. 반면 사적 영역에서는 그들만의 규범을 스스로 만들고 지켜면서 그들만의 일체성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대중적인 커뮤니티들이 광고를 제한하고 욕을 못하게 하고 정치적 지지를 표명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런 규범들은 그들이 커뮤니티가 된 목적에 충실하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0-2001년도 투쟁의 과정에서 <정보통신 운영 규정>이라는 당규를 제정하게 되었다. 말걸기가 당시의 정보운동의 논의를 담아 입안했다. 민주노동당은 마땅히 검열, 무엇보다 사상의 검열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 충실한 규범을 만들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이 당규를 제정할 즈음에, 그리고 여전히 국가의 온라인 검열로 싸움을 할 때 주사파 게시물 때문에 내홍을 겪게 되었다.

 

예전의 민주노동당 사이트에는 '자료게시판'이라는 게 있었다. 이용자들이 공유하고 싶은 문서 자료를 자유롭게 올리는 게시판이었다. 당원들에게만 허락된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게시판에 진지한 자료들이 올라왔다. 어디 가나 공부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니 이 게시판이 잘 활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구국의 소리' 따위에서 김일성, 김정일 저작 등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올라오다가 주르룩 도배가 시작되었는데 거의 주체교 광고게시판이 되어버렸다.

 

당시 당 사이트 컨텐츠 담당자로서 말걸기가 살펴 보니 중복 게재된 게시물이 없었다. 그러니까 당규에 따라 삭제할 수 있는 게시물은 하나도 없었다. 눈꼴 시려도 어쩌겠나 냅둬야지.

 

결국 주사파에 대한 불타는 혐오 의지를 가진 이들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주사파 게시물을 삭제하라는 원성이 높아졌다. 주사파 게시물을 밀어내기 위해서 다른 자료를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주사파와 주사혐오파들은 경쟁을 했다.

 

자유게시판과 실명게시판(당원게시판은 나중에 생겼다)에 등장한 진중권과 같은 주사혐오파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똘레랑스는 앙똘레랑스에게까지 똘레랑스를 베푸는 게 아니다, 앙똘레랑스에게는 앙똘레랑스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니까 북한체제는 인권을 짓밟는 체제이므로 그들의 주장을 담은 게시물들은 삭제해야 한다 따위.

 

지금도 당에서 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펭귄과 말걸기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김일성과 김정일,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글이 이 사회에 어떤 위해를 가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주사혐오파들이 국가에 의한 주사파 탄압에는 함께 싸울 용의는 있다는 말에는 기절 직전까지 갔다. 악당이 나쁜 놈 괴롭히는 건 못 봐 주겠고 지들은 나쁜 놈 괴롭히겠다니!

 

펭귄과 말걸기는 당규가 정한 바대로 주사파 게시물을 그래도 두었다. 진중권 등 주사혐오파들은 펭귄과 말걸기를 '주사파'라고 했다. 이게 바로 말걸기의 '주사파 전력'이다.

 

당시에 <망법> 때문에 시청 앞에선가 행사가 있어 진중권을 만나게 된 일이 있었다. 진중권에게 당 사이트의 주사파 게시물을 삭제할 수 없는 이유를 직접 설명했는데 진중권은 무척이나 혐오스러운 눈빛과 표정으로 말걸기를 대했다. 진중권은 말걸기에게도 앙똘레랑스를 베풀었다.

 

 

펭귄과 말걸기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날라온 공문 생깠고 말걸기가 당의 정보통신 부서 떠난 후에도 펭귄은 열심히 정통윤의 공문을 생깠다. 그리고 지금은 정보통신부 명령도 생까고 있다.

 

말걸기는 주사파들에게는 기피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주사혐오파들에게는 주사파와 똑같은 놈들 취급받으면서 주사파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고 꿋꿋하게 '원칙'을 지켰었는데 행인이 전한 소식을 읽으니 수년 전의 억울한 감정이 다시금 솟아났다.

 

행인 말대로 종교 취향인 주사게시물이 뭐 대단하다고 지우라고 난리인지. 그보다 더 웃긴 건 주사파들이 주사게시물을 열심히 지운다는 것이다. '주사파'로 낙인찍힌다는 건 정말이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주사파 스스로 주사게시물을 지워버렸다.

 

이제는 이런 생각까지 한다. 스스로 지킬 의지가 없는 사상이 탄압받을 때 지켜주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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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합, 민중연대, 한청은 열심히 자기 사상을 지워버렸고 민주노총 지도부도 사모하는 사상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지우지 않았다. 왤까?

 

주사게시물을 지우지 않는 게 명분이 있는 행동이라는 걸 모르지 않은 주사파들이 여기서는 지우고 저기서는 지우지 않는 이유, 말걸기만의 분석은 이러하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완전한 주사파 조직이 아니므로 당의 재산은 주사파의 재산이 아니다. 벌금을 물든 과태료를 물든 '내 돈 아닌데 뭐'가 작동한 듯하다. 돈도 안 들이고 정치적 명분 챙기기 쉽다.

 

물론 행인과 펭귄의 사상의 자유, 아니 종교의 자유 지키기 신념이 없이는 불가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