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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좌절보다는 분노가 낫다잖아요.

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24
    재단.
    껌뻑
  2. 2006/01/22
    '성매매운동'논쟁을 보며 걱정만 태산.
    껌뻑
  3. 2006/01/20
    일종의 협박인가?(5)
    껌뻑
  4. 2006/01/19
    무식한게 죄냐.
    껌뻑

재단.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전자족쇄니, 화학적 거세니

그런 논의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났다.

 

피해를 입은 여성이 가해자를 지목하고 문제제기를 했을 때,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 특히 가해자의 남자 동료들은

가해자가 "내가 성폭력 가해자인게 맞다"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에 대한 온갖 비난과 비방을 일삼곤 했다.

 

피해자의 사생활을 구설수에 올리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으로 제2,3의 피해를 입히고

피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을 스토킹하고

어쩔 땐 협박과 무력을 통해 피해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자신과 별 관련이 없거나,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인정한 후에 그들의 태도는 그 전과는 사뭇 다르다.

 

'자기도 속았다"부터 시작해서

"그런 놈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

"저런 놈들은 말이 아니라, 주먹으로 패야 한다"는 등의 말을 앞다투어 쏟아내다

종국에 가서는 "그래도 모든 남자들이 저런 놈은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듯,

아니, 그 동안 자신이 피해자와 피해자의 지지자들에게 저질렀던 모든 폭력들을

무화시키려는 듯,

가해자들을 린치 했다.

 

피해자는 동의한 적도 없는, 가해자 집단린치의 자리에 피해자를 세워 면죄부를 얻고,

가해자 한 명을 대상으로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한 그 사람들의 눈에 어렸던

무서운 광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렇지만 정말 기가 찼던 건

몇 십분의 린치 이후,

그들은 그 짐승같은 놈이라고 지칭했던 가해자를 피해자와 같은 자리에 앉혀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제 모두 용서해라"라며 중재자 역할을 하는게 아닌가...

 

성폭력의 문화를 구성하고, 그것을 적극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인해왔으며

제2,3의 가해를 저질렀던 그들은

항상 결백하다.

 

그들이 처벌하고, 그들이 용서한다.

여전히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용인하는 문화에 동조했고

그것을 복돋으며, 여성비하적인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면서 말이다.

 

가해자에 대한 적절하고 공식적인 해결을

욕설로, 협박으로, 비난과 가쉽으로, 때로는 침묵으로 가로막았던 그들은

성폭력의 또다른 가해자들이었다.

 

 

성폭력과자신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해

그들은, 하나의 제물로써 가해자들을 린치했다.

 

이런 일련의 광기의 결과는 이렇다.

 

피해자는 더 이상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또 가해를 저질렀다.

가해자들은 이후의 더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그는 "그들"의 좋은 친구다.

여전히, 그들은 술자리에서 여자를 안주삼고

무용담처럼 가해자의 성폭력 사실을 재구성한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의 한 명으로써,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그러나 참 우스운 것은

그들은 자기들이 인정할만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린치'방법으로 해결하려할 뿐,

성폭력을 둘러싼 여성의 노동권과 가부장적 문화,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에 대한 것은

함구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네들은 입닥치고 있어"

 

그래서 좀 무섭고 황당하고 두렵다.

여성의 노동권..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에 대해

항상 반대하고 나섰던 보수적 인사들이

잇따라 성폭력범죄에 대한 강력처벌을 핏발세우며 이야기하는 것이.

 

이건 또하나의 린치가 아닌가..

가해자들에 대한 집단적 린치로..재단의 희생물로

그들은 다시 순결해지는 거다.

 

"우리도 여성문제 관심있다고..우리 그렇게 나쁜 놈들 아니라고..우리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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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운동'논쟁을 보며 걱정만 태산.

성노동자 관련 글들을 몇 개 보았다...

 

뭐랄까..걱정이 된다.

 

그냥 막연히 든 생각은,

 

성매매여성들이 주체로 나서기 위한 제반조건이 '성노동자'라는 언어든 다른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현장에 대한 책임감을 아는(이는 성매매여성과 그 아이들의 삶까지 포함한다. 불가항력적으로) 활동가들과 함께 구축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무서운게, 대부분의 여성운동단체가 성매매 현장을 잘 모르고 그에 대한 일천한 경험때문에 낭패보고, 성매매여성들도 고생이 심한데, 성노동자운동 또한 성매매 현장에 대해서 경험이 일천하고 여성들의 삶을 책임져보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된다는게, 특히 지식인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게 우려스럽고, 또 우려스럽다.

 

아..성매매여성들이 내팽겨치진 않겠지..'성매매여성'혹은 성노동자'의 이름을 걸고 논쟁만 하다가 여성들과 아이들의 삶을 헌신짝처럼 버리지는 않겠지..그런 불안감이 가중되는 건 왜일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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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협박인가?

평범한 가장에서 연쇄성폭행범으로 (대전=연합뉴스)

 

조용학 기자 = 10여년간 대전을 중심으로 전국을 돌며 100여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거된 속칭 '발바리' 이모(45)씨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아내와 두 자녀를 둔 이씨는 평소 금실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했으며 자녀들에게는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한 가정의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었다. 영업용 택시기사를 거쳐 개인택시를 10년 가까이 운행했고 가족들 모두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조기축구회에서 활동하는 등 운동을 좋아하면서도 회원들과는 그다지 친분있게 지내지 못하는 등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 중 한 명으로 특정하고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일 때도 이웃주민 등 주변 인물 대부분이 이씨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소년시절 절도전과가 있긴 하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성장했으며 술과 담배도 전혀 하지 않는 등 건실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씨의 범행이 결혼을 하고 대전으로 건너와 택시기사로 일하면서 시작됐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진술조사에서 이씨는 "집에 있다 새벽에 운동하러 나간다고 얘기하고 나온 뒤 여자들만 사는 집에 들어가 범행을 했다"고 진술해 평소에는 평범한 가장으로 생활하다 밖에서는 엽기적인 성폭행범으로 돌변한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동기에 대해서 이씨는 "택시를 탄 한 여성승객이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해 모멸감을 느껴 보복심리로 이 여성승객을 쫓아가 처음으로 범행을 했는데 쉽게 성공해 계속 범행을 하게 됐다"고 말해 한번의 우발적인 범죄가 희대의 연쇄 성폭행범을 만들어 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날 서울의 한 PC방에서 검거될 때도 이씨가 "마음이 후련하다"며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자세한 수사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범행사실과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략적으로는 이씨가 범죄사실을 시인했다"며 "범죄양형과 관련된 성장과정이나 정신적인 문제 등도 조사가 진행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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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보고 화가 났다. 성폭력가해자가 평소에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기술하는 기사의 태도와 논조를 보면 마치, 이 사람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아니 매우 건실한 사람이었으나, 재수없이 입을 놀린 여자가 멀쩡한 사람 성폭력 가해자로 만들었다는 식이다.

나아가서, 그러니 여자들이 택시탈 때 입놀리는 걸 조심하라고 경고 하는 듯 하다.

 

대부분이 남성인 택시기사들이 여성들만 태우는 것도 아니고, 택시기사들에게 욕을  해대고 함부로 대하는 게 어디, 여성들뿐이겠는가?

 

20여년간의 택시탑승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남성승객들이 택시기사들을 대하는 태도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가해자 놈은 그 사람이 '여성'탑승자였기 때문에, 감히 여자가 그따위로 말을 했기 때문에, 힘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게 때문에 성폭력을 저지른것이다. 더 괘씸한 것은 그가 한 명에 그치지 않고 힘의 과시로 최소 90여건에 이르는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런 나쁜 놈을 위해 구구절절 평소행실 운운하는 열정 아끼지 않는 기자의 의도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뭐랄까, 결론적으로 받은 느낌은, "싸가지 없는 여성승객 한명 때문에 건실한 가장이 이렇게 타락했단 말이다. 똑똑히 봐, 그리고 네들도 조심해."이런 거 말이다.

 

성폭력 사실을 말하거나 혹은 기사화 할 때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이런 성폭력에 대한 기사들이"여성들이여, 그러니까 똑바로 하란말이야"란 경고나 협박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여성집단에 대해 남성이 가지고 있는 통제력을 과시하고, 강화하고, 나아가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공포만 가중시키기 때문에. 그런데 저 기사가 딱 그렇다.

 

그럼 어떻게 써야 좋겠냐고..

 

 "다른 죄질이 나쁜 성폭력 범죄자들과 같이, 이 성폭력 범죄자의 경우도, 겉으로는 건실한 가장과 존경받는 사회인인양 행세하였다고 합니다. 범죄동기 또한, 택시기사를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여성승객만을 타겟으로 삼아 성폭력을 저지름으로써 해소하려 했다는 점으로 볼 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저질렀으므로 이에 대한 가중처벌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라는 건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는 걸, 비겁하게 숨기지 않는다면, 저렇게 쓴 것이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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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게 죄냐.

다음의 쓰레기 같은 덧글이든

진보넷의 논쟁꾼이든

모두 공통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무식하면 가만히 있어라"류의 비판글말이다.

 

개인적으로 난 이말이 매우 불쾌하다.

정말 무식하면 가만히 있어야 하나.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면서 근거없는 억측과 막무가내로 떠드는 사람을

제압할 목적으로, "당신이야 말로 무식하다는 걸 아셔야죠"라고 말하는 전략도, 뜨뜻미지근하게 싫다. 어쨌든 그 말의 기저에는 지식권위에 대해서는 합의하기 때문이다. 뭔가 정보를 더 많이 알고 뭔가 근거를 더 많이 디밀고 그래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것들이 근본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무엇을 했나.

 

그치만 적당히 필요한갑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논의 필요한갑다. 왜냐하면 금방 혁명날 것도 아니고, 지식인들, 중산층들의 의조직화를 할 때,시민운동할때, 그런 말들이 필요하고 지식들이 필요하다고들 하니까.또, 뭔정파가 맞냐 어떠냐 할 때도 사회에 대한 과학적이고(이 말 쓰는게 무섭지만) 체계적인 분석도 필요하다니까. 그러니까 그것 자체가 필요없진 않은 갑다. 

 

다만, 무식하면 입닥쳐라라는 말이 공고화하는 것들을 보라. 나의 어머니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사장들, 중간관리자, 학교선생,업주등으로부터 매일 그 말을 듣는다. 아주 모멸적인 뜻으로 말이다. 그 나쁜 놈들(가끔은 이렇게 편하게 부르는게 용인받았으면 좋겠다.)은 무식하면 입닥치고 있어야 하고, 무식한게 죄라는 명제에 대해 가장 열성적으로 따르는 인간들이다. 그건 그 사람들의 현재의 위치과 착취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왜? 내가 많이 배웠으니까!! 내가 먹물이니까, 내가 너보다 많이 아니까!! 우리가 그전략을 써서 잠시 나쁜놈들의 입을 막을 수 있을지 몰라고 결국 그들 머리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없어지지 않는데!

기껏해야 "내가 저놈보다 무식해서 당했다. 공부를 더 해야지" 정도일 것이다.

 

운동은 지식인들만 하는 것도 아니고 먹물든 사람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봤던 많은 사람들, 삶의 모순들을 체감한 사람들은 논리적인 말하기에 익숙치 않다.

비명소리, 악이받쳐 나오는 고함, 울부짖음, 그런 것들.

그러니까. 무식해도 가만히 있지 못할 때가 있다.

무식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기를 들 때가 있다.

무식하기 때문에 억울하고 분할 때도 있다.

 

자신이 지식의 우위에 있음을 내비치는 그런 말들 또한 지식권력을 휘두르는게 아닌지,

혹은 지식이 권력이라는 논제에 기대선 비겁한 행동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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