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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엘리어트 가디너의 베토벤 교향곡 레코딩 연주노트

존 엘리어트 가디너의 베토벤 교향곡 레코딩 연주노트

글 : 존 엘리어트 가디너
번역 : 전상헌


[역주]
아래에 소개해드릴 글은 1994년에 발매된 존 엘리어트 가디너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 레코딩에 대한 가디너 자신의 해설을 번역한 것입니다. 기존에 이 해설을 번역한 것을 국내 라이센스 전집과 [객석] 94년 9월호에서 볼 수 있었지만, 이 두 번역에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둘 중 하나는 명백한 표절입니다. 그리고 번역을 하면서 빠뜨린 부분들이 너무나 많고, 결정적으로 아예 잘못 번역된 곳도 몇 군데 있습니다.

예컨대, "Sempre l'istesso tempo"라는 지시는 제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행진곡 풍으로"(Alla Marcia) 도막의 템포 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단서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번역문에는 빠져 있습니다. 또한, 서양에서는 베토벤의 제 5번 교향곡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예가 사실상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take Destiny'라는 말을 '운명 교향곡을 연주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은 명백한 오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예는 몇가지 더 있는데, 이런 것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새로 번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번역을 다시 하면서 기존의 번역을 참고한 경우도 있어서,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번역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되도록이면 제 방식으로 표현할려고 노력했습니다.

존 엘리어트 가디너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에는 최신의 연구 성과들이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가디너는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들 몇가지를 말해주고 있는데, 가디너의 음반이 아니더라도 베토벤의 교향곡을 감상하시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시기를 부탁 드리면서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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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베토벤의 교향곡들을 음악 혁명의 궁극적인 표상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볼 때 그의 교향곡들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이것들은 19세기 중반의 폭발적인 발전, 특히 베를리오즈와 슈만의 선구적인 교향적 작품들을 예견하기도 하며, 동시에 과거를 되돌아 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하이든과 모차르트, 또 한편으로는 케루비니나 고세크, 메윌과 같은 프랑스 혁명기 작곡가들이 없었다면,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지 못했으리라는 데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베토벤의 초기 교향곡들, 특히 제 2번을 보면 여기에는 모차르트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는 확실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마지막 악장의 두번째 마디에 나오는 갑작스러운 옥타브 자리바꿈을 보라. 이것은 모차르트의 [하프너] 교향곡의 시작부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와 같은 느낌은 [영웅]에서 훨씬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데, 여기에는 선율, 리듬, 그리고 심지어는 화성의 모습까지도 모차르트에게서 직접 가져온 것이 대단히 많다. 주요 주제가 모차르트의 제 39번 교향곡의 첫부분에서 빌려온 것일 뿐만 아니라, 첫악장(280-83마디)에서 A-C-E-F로 화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들어내는 괴로울 정도로 날카로운 불협화음처럼, 전형적으로 베토벤 풍이라고 생각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여러분은 "이것이야말로 전적으로 베토벤 고유의 창작임이 분명하다. 그 어떤 누구도 이렇게 해내지 못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모차르트의 같은 E-flat장조 교향곡 K.543의 도입부를 보면, 거의 동일한 화음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지만(19마디), 여기서는 모차르트의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베토벤의 [영웅]에서와 같은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없을 따름이다.

나는 바로 이것이 결정적인 단서라고 생각한다. 베토벤이 오케스트라 음향에 대하여 가졌던 개념―듣는 이를 즉각 사로잡고, 심지어는 기묘하기까지 한―과, 교향곡 형태에 대하여 가졌던 개념이야말로 의심할 여지 없이 그만의 것인 것이다. 베토벤이 다른 작곡가들이 썼던 것을 가져다 쓰고, 그들의 리듬형, 그들의 모티프와 화성을 출발점으로 삼았어도, 이 재료들을 다루는 베토벤의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가령 베토벤은 조각조각 나눈 멜로디를, 목관악기들을 사용하여 마치 대화를 하는 것처럼 거의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그 전의 다른 작곡가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재치와 거의 만화경과도 같은 성격이 들어 있는 것이다.

연주자들 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도 베토벤의 요구는 매정하기 짝이 없다. 연주자가 실수하기 쉽다는 가능성이라든가 테크닉의 어려움 따위는 베토벤에게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다른 작곡가들에게서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들일지라도 이것이 베토벤에게서는, 테크닉적으로 아주 골치 아프고 연주자를 극도로 지치게 할 곡에서조차도, 베토벤의 음악 안에 있는 엄청난 에너지와 휴머니티에 의하여 아주 깊은 음악적 내용을 갖게 된다. 또한, 그 속에는 숭고한 정서까지 담겨있어서 음악가들과 해석자들로 하여금 테크닉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음악의 혼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베토벤의 교향곡들, 특히 제 7번이 가지고 있는 흥분과 힘을 재현해내는 데에 있어서 기량이 뛰어난 근대 교향악단만한 악단은 없다. 그러나 당대의 악기를 쓰게 될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명료함을 얻게 된다는 이점이 있다. 각각의 악기에는 '고유의 무게'(specific gravity)가 실리게 되어 베토벤이 짜놓은 옷감을 이루는 씨줄과 날줄들 한 가닥 한 가닥이 모두 동시에,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리듬의 윤곽을 아주 날카롭고 선명하게 그려내고, 부점리듬을 2박자로 망가뜨리지 않고 연주할 때 더욱 그렇다. 제 1악장의 제시부에서 우리는 자기 음역의 가장 높은 곳에서 노니는 호른을 들을 수가 있고, 팀파니가 전곡의 리듬에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오케스트라 전체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목관과 금관, 그리고 필사적으로 활을 움직이는 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멋지고도 다채로운 음의 빛깔이 펼쳐진다.

나는 베토벤을 연주할 때 당대의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우리가 그의 교향곡에서 '더 많은 것'을 듣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의 천재성 안에 내재한 혁명적 측면을 부각시켜 준다고 믿는다. 반면에, 후대의 악기들은 19세기에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음악을 무디게 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훨씬 후기의 음악적 표현양식에 적합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 악기로 유창한 테크닉과 풍부한 음량을 얻는 대신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베토벤 시대의 악기들은, 악기들마다 아주 독특한 소리와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베토벤이 했던 사고의 맥락을 근대의 악기들보다 더 쉽게,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 전달해 준다(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풍부함을 잃는 대신에, 그만큼 투명성과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베토벤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다룬 악기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케틀-드럼(kettle-drum)일 것이다. 베토벤 시대의 케틀-드럼은 오늘날 대부분의 근대 교향악단에서 쓰이는 플라스틱 가죽을 씌운 보통의 페달 팀파니와는 아주 달랐다. 크기도 더 작고 소가죽을 씌워서 아주 다른 종류의 소리(sonority)를 뿜어내며, 다소 '낭랑한' 소리를 가지고 있는 근대의 팀파니보다 더 다양한 억양과 색깔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베토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 9번 교향곡에서 팀파니를 독주 악기처럼 취급하여 사실상 작품의 모티프까지 포함하도록 했다는 점은 놀라운 것이다. 스케르초 악장에서 "ritmo di tre battute"(1마디를 1박으로 하여 3박자로)라는 지시어로 시작하는 부분에 경이적인 패시지가 있다. 여기서는 어느 정도 멘델스존을 연상시키는 e단조의 아홉 마디가 목관에 의해 연주되고, 그 뒤에 이어지는 a단조의 아홉 마디에서는 딸림 7화음으로 끝날 때까지 모두 '여리게'(piano) 연주되다가, 갑자기 팀파니가 '강하게'(forte) 옥타브로 도약한다. 이때 F장조로 끼어든 팀파니에 의해 목관 파트는 갑작스럽게 d단조로 바뀌게 된다. 즉, 베토벤은 여기서 팀파니를 전조(modulation)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 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다.

또한, 이 패시지에서 베토벤이 자필원고의 팀파니 음표 위에 실제로 기입했던 것이 악센트(accent)가 아니라 '점점 여리게'(diminuendo)였다는 사실은 매혹적인 것이다. 그 효과는 경이적이다. 이것은 단순히 음량을 줄여 센 소리에서 여린 소리로 옮겨갔다는 말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작품 전체의 원근법적인 구도 속에서 소리를 후퇴시켰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마치 음원이 실제로 멀어져 가는 것처럼 들리게 되는데, 이는 음악적 담화에 엄청나게 극적인 묘미를 더해준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는 조너선 델 마(Jonathan Del Mar)나 클라이브 브라운(Clive Brown)과 같은 학자들이 최근의 연구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이 명작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어준 것이었다. 연주자들이 가장 유명한 이 교향곡들을 연주할 때 흔히 사용하는 텍스트가, 자필악보에 나타나 있는 베토벤의 최초 의도와도 일치하지 않고, 베토벤이 손수 수정한 초판본에서 알 수 있는 그의 궁극적인 의도와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믿겨지지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 레코딩에서 이 점을 바로 잡으려 했다.

이제 베토벤 교향곡 해석가들에게 있어서 템포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베토벤의 대화록이나 동시대인들이 남긴 글들을 보면, 베토벤은 당시의 연주가들이 자신의 지시를 따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맬첼(Maelzel)의 메트로놈 발명을 환영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베토벤의 메트로놈이 부정확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베토벤이 생각했던 빠르기는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잔향이 많은 홀에서 연주하기에는(정상적으로 말해서) 너무 빨랐다. 베토벤이 요구했던 것에 비해 너무 큰 악단이 연주를 하면 빠르기가 느려졌는데, 이것이 그의 고민거리였다는 증거가 있다. 베토벤은 60명 정도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서 나오는 가늘고 경제적인 소리를 선호했는데, 이 레코딩에서 우리도 이 정도의 규모로 연주했다. 또한,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에 이르는 길이 음악가들에게 힘겹고 고달픈 길이기를 '원했다'. 연주가들을 한계의 영역으로까지 밀고 가는 것은 그가 추구했던 미학적 목적의 일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예로, 엄청난 에너지와 넘치는 환상,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광채를 가지고 있는 제 8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살펴보자. 여기서 셋잇단 8분음표들을 빠른 속도로 아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은, 근대 악기로 연주하든지 아니면 당대의 악기로 연주하든지 간에 모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당대의 악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악기들 간의 충돌이 없어지고, 근대 교향악단에서는 나타나기 쉬운 소리(sonority)의 체증이 사라진다는 커다란 이점이 있다. 셋잇단음 리듬들 하나하나의 아티큘레이션을 확실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패시지는 연주가 가능한 한계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야말로 바로 베토벤이 추구한 것이며, 나는 이러한 경우에 베토벤이 지시한 빠르기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연주자로서의 책임을 게을리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여기서 메트로놈 지시를 과거의 해석가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만병통치약으로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음악적 표현의 부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제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Alla Marcia'(행진곡 풍으로) 악절을 보자. 이 부분은 두가지 요인 때문에 그동안 잘못 해석되어져 왔다. 무엇보다도 베토벤이 조카 카를에게 이 부분의 템포를 받아적게 했을 때 잘못 옮겨졌다는 것이 이제는 분명하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메트로놈 빠르기였던 것이 아니라, 빠르기를 재는 시간의 '단위'가 잘못된 것이었다. 베토벤은 "6/8박자, 84"라고 말했지만, 카를은 이것을 "한마디에 점 4분음표로 두 박"이라고 해석했던 듯하다. 그러나 베토벤이 의도했던 것은, '한마디 전체'(즉, 점 2분음표 한개)를 1분에 84의 빠르기로 연주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러한 해석은 'Allegro energico' 악절과 완전히 맞아 떨어진다. 여기서 합창이 다시 들어올 때("Seid umschlungen Millionen..." 악절 이후)도 역시 84의 빠르기로 지시되어 있다. (베토벤은 여기에 "Sempre l'istesso tempo"(항상 이전과 같은 속도로)라고 지시해 놓았지만 이 지시는 보통 무시된다.) 이것은 또한 그 당시의 프랑스 군대 행진곡의 표준적인 빠르기와도 일치한다

무엇보다도 제 9번의 'Alla Marcia' 악절에서는, 18세기 후반에 터키 양식의 음악에서 자주 쓰이던 낯선 타악기들을 동반한, 난폭한 터키 군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글루크의 오페라 "메카의 순례자"(1764)에 처음 나타나며, 그 다음에는 모차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유괴"(1782)에, 그리고 베토벤의 초기 음악 몇편에서도 들을 수 있다. 베토벤은 이 악기들을 사용하여 군대가 다가오는 것을 연상하게끔 했는데, 그 효과는 놀랄 만큼 새로운 것이었다. 여기서 테너는 도시의 저편, 그리고 세계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흥분되는 소식을 전하러 오는 전령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푸가토가 이어지는데, 이 푸가토의 막대한 에너지는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도 "대 푸가"(op.133)나 "장엄미사"(op.123)에서 "Dona Nobis"의 마지막 악절만이 이에 필적할 수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제각기 모두 하나의 작은 드라마들이며, 한편 한편이 모두 철학적 메세지를 가지고 있다. 때로는 이 메세지는 정치적 차원의 것이기도 하다. 가령 제 5번 교향곡에서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전면에 드러나 있는데, 여기서 작곡자는 프랑스 혁명의 주제와 행진곡, 그리고 심지어는 음악의 서브텍스트를 이루는 시까지 빌려 쓰고 있다.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케루비니의 "팡테옹 찬가"를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제 1악장이다. 이 찬가의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

Sur votre cercueil heroique,
Nous jurons tous le fer en main,
De mourir pour la Republique
Et pour les droits du genre humain.

당신의 영웅적인 죽음 앞에서
우리는 손에 칼을 들고 맹세하노라
공화국을 위해서
인권을 위해서 목숨을 걸겠노라

여기서 "Nous jurons tous .... le fer en main"의 대담한 리듬은 교향곡 전체의 주요 모티프 주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는 어느 정도는 파리 음악원 연주단(Societe des Concerts du Consevatoire)을 모델로 삼고 있다. 이 연주 단체는 1828년에 하베네크(Habeneck)가 설립한 파리 음악원(Paris Conservatoire)의 명예 연주자들과 교수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였다. 이 오케스트라는 몇가지 것들을 성취해냈는데, 우선 베토벤을 사실상 이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연주하였다. 이들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아주 치밀하게 연주했는데, 이것은 베토벤 생전의 다른 연주 단체들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이들은 처음으로 통일된 보잉(bowing)을 도입하였고, 악보를 아주 정확하게 재현하였다. 그들은 전형적인 프랑스식으로 해석하여 음악의 운명을 결정지었고, 미래의 음악 세계를 제시해주었다. 이들의 연주를 들었던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를 비롯한 수많은 음악가들이 받았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우리의 오케스트라,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는 바로 베토벤의 '혁명성'과 '낭만성'을 재현하기 위해서 1989년에(아직은 이 이름이 공식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베토벤의 "장엄미사" op.123의 레코딩과 함께 탄생했다.

지휘자로서 자신의 '존재 이유'(raison d'etre)에 대하여 생각할 때 베토벤의 아홉개의 교향곡 전곡보다 더 중요하고 더 핵심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들과 친해지고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지휘자에게 매력적인 도전이다. 베토벤의 음악의 진가를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정말로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삶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그래서 음악을 위해 기꺼이 단두대 위에 목을 올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헌신적인 음악가들과 함께 레코딩하게 되었다는 것은, 탐험을 위한 공동 항해에 참여한 한 구성원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 모험을 앞두고 느끼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이 불굴의 사나이, 그의 위대한 창조물,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에 그가 놓아둔 엄청난 기술적, 음악적 역경들 앞에서 느끼게 될 경외심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베토벤 전문가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가 여러해 전에 했던 말이 내게 중요하게 다가온다(약간은 아이러니이다). "지휘자에게 있어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가 음악을 작곡한 이후로 악기도 달라졌고, 연주회장도 그때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다. 베토벤을 근대화해서는 안된다."

아멘,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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