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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연인들>

일요일에 하은 교통사고 마무리를 위해
읍 경찰서에 갔다.
그 후기를 페북에 썼더니
변호사를 하고 있다는 대학 동창이 연락을 해왔다.
Im이라고 부르겠어.
페북에서 가끔 글을 볼 때면
얘는 정말 건강함 그 자체구나,
라고 생각했었던.
 
그애는 종로에서의 가투가 기억나냐고 물었고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그 뒤로 뭔가 시들해지는 느낌.
 
경제학과였던 그 애를 알게 된 건
집회에 참여하느라 
민주광장에 앉아있는 나에게
그애와 동향인 같은 과 친구M이
"저 애가 너를 좋아해"
라고 알려준 순간부터이다.
이름을 알았고
얼굴을 알았다.
 
나를 좋아한다는 누군가를
무심하게 지나칠 수만은 없었는데
사실 늘 그냥 지나쳤다.
근데 볼 때마다 생각은 했지.
쟤가 나를 좋아한다지... 하고.
 
그래놓고서 고백은
"저 애가 너를 좋아해"라는 애가 
먼저 하고
그 후에 그 애랑 서먹해져서 점점 멀어져서
다시 안보게 되고.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던 그 애랑은
대학시절엔 한 번도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독하게 헤매고 있을 때
학교앞 막걸리집 앞을 지나고 있는데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나온 것같은 그애가
나를 발견하고는 불러세워서
방송국 PD 직함이 써있는 명함을 주면서
꼭 연락하라고 했던 기억.
 
 
어제도 그 애는
자기 사무실이 서초동에 있으니
서초동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말로
대화의 끝을 맺었다.
 
 
나에게 종로가투 이야기를 물었을 때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고
대신 나는 
"너의 친구인 M에게서 너의 이름을 들었다"
라는 말을 했고
그리고... 그 애는 M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기억은
다 잘못된 것인지도 몰라.
 
이해의 방식과 객관적 사실이
어긋난 채로 기억될 수도 있고
가끔 어떤 관계는
오해를 기반으로 쌓여가기도 한다.
 
그냥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게
어려운 시기라는 걸 받아들여야할 것같다.
개강을 했고
새로운 학생들을 만났고
그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상처받았고
마음이 불편했고
그래서 상한 마음을 애써 추스리다가
잠에 들었고
이렇게 새벽에 깨어서
지난 글을 읽는다.
 
변호사 Im에게
증오편지에 대해서 물었고
Im은 고소를 하라고 하는데
적절한 문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그냥 가라앉아있기를.
 
 
 
2008년 12월 18일 20:03에 올린 글

 

기억 속 가장 반짝이는 조각들

김종관 감독의 <연인들>

 

인디음악, 클럽 파티, 멀티패션의 중심지…. ‘홍대 앞’ 하면 떠오르는 그런 단어들을 생각하며 홍대 앞을 찾았다. 아주 오래 전, 나는 홍대 앞 어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고...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10년도 넘는 시간을 흘려 보낸 후, 나는 사랑에 관한 김종관 감독의 영화를 보기 위해 홍대 앞을 찾았다. 약도를 보면서 떠올렸던 길들은 더 이상 기억 속 그 곳이 아니었다. 시간의 빗자루가 쓸어버린 그 길을 물어 물어 찾아가 김종관 감독의 열한가지 연애이야기 <연인들>과 마주 앉았다 .

 

 

 


 

시작은 항상 반짝거린다. 짝사랑하는 선배를 앞에 두고 차마 눈도 맞추지 못한 채,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배우는 <폴라로이드 작동법>처럼. 6분 20초 안에 담긴 떨림과 설렘은 우리들을 기억 속 어느 순간으로 데려간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반짝이는 시작이 있었다. 누군가의 눈빛과 손짓 하나에 온 가슴이 내려앉고 그이의 웃음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그 시간. 그렇게 사랑은 시작되고 단맛에 취해있노라면 문득 두렵다. 시간의 흐름이 이 빛나는 순간의 빛을 바래게 할까 봐, 그리하여 먼 훗날, 이 달콤함을 날카로운 아픔으로 기억할까봐. 그리하여 <메모리즈>의 그녀는 행복에 겨운 얼굴로 말한다. “모든 게 잊혀질까 두려워요.” 감독은 그녀의 말에 화답하듯 필름 위에 자신의 말을 자막으로 흘려보낸다. “영화는 잊혀질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이라고. 그렇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찰나의 시간에 정제하여 담아놓은 타임캡슐이다. 그리고 이제 사랑은 달콤함을 넘어 그 다음 단계로 서서히 옮겨 간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두 남녀가 손을 잡은 채 신호등 앞에 서 있다. 문득 여자가 신발끈이 풀린 것을 발견하고 엎드려 묶고 있는 사이, 신호가 바뀌고 남자는 여자의 손을 놓은 채 길을 건넌다. 신발끈을 다 묶은 여자와 건너편에 선 남자는 서로를 바라본다. 교차하는 남녀의 시선을 끊어내며 자동차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운디드(Wounded…)>가 담고 있는 연인들의 3분은 사랑의 불안함을 가슴 서늘하게 보여준다. 여자는 풀린 신발끈을 묶었을 뿐이고, 남자는 그저 몇 걸음 앞서 갔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길에 선 채 마주본다. 세상 모든 것을 견딜 것같던 사랑은 사실 그렇게 작은 어긋남 하나에서부터 금이 가곤 한다. 그리고 결국 그 실금 사이로 새어나오는 오해와 안타까움의 물줄기들이 사랑을 무너뜨린다. 댐이 무너져가듯 그렇게.


<낙원>의 그녀는 갑자기 남자를 찾아왔다가 어딘가로 향한다. 철지난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또각또각 걷는 그녀의 뒤를 남자는 목발을 짚은 채 부지런히 쫓는다. 버스가 떠난 자리, 남자는 하염없이 여자의 뒷모습을 쫓는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는 비눗방울이 퐁퐁 쏟아진다. 하늘로 오르든 땅에 닿든 비눗방울들의 운명은 비슷하다. 처음엔 빛나다가 문득 무지개빛으로 아롱거리나 싶으면 결국 허무하게 톡 터져버리고 만다. 우리들 사랑이 그렇게 끝나가듯이.

 

사랑이 지나간 자리

<길 잃은 시간>의 두 남자는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싸우더니 선로를 사이에 둔 채 작별한다. 한 쪽은 외면하고 한 쪽은 체념한 채로 머뭇거리며 혹은 단호하게 그렇게 떠나간다.

<모놀로그 #1>의 그녀는 겨울바다에 서있다. 너무 춥다. 추위와 철지난 바닷가의 황량함과 자신의 처지에 대해 투덜거리던 여자가 결국 무릎을 꺾으며 눈물을 흘린다. “우린 다시 시작하지 못하겠지. 울지 마자. 울지 말자”라며 그렇게 흐느낀다.

모두들 지나왔을 시간이다. 변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어 가슴을 쥐어뜯기도 하고, 그 사람이 돌아올거라는 환상에 자신을 맡겨두기도 하고, 맨 정신의 시간들을 견디지 못해 매일 밤을 술로 채우기도 하며 그렇게 지나왔던 시간. 하지만 사랑이 모두에게 공평하듯 시간 또한 공평하게 흘러간다. 달콤했던 시간이 가뭇없이 사라져갔던 것처럼 쓰디 쓴 이 상실의 시간 또한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작

더 이상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을 것같은 시간이 흐른 후,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때론 과거의 상처 때문에 머뭇거리고 때론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망설이지만 사랑은 축복처럼 다시 찾아온다. 친구의 남자친구에게 마음을 주는 <헤이 톰>의 그녀나 첫 데이트가 즐거운 <올 가을의 트랜드>의 남자주인공이 앞으로 어떤 사랑을 꾸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연인들>은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들.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 바로 그것이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랑이라는 이름이 주는 열한가지 색깔을 가장 반짝이는 순간에 담은 영화 <연인들>. 그 빛의 향연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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