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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 '장애인 캐릭터 상'을 수여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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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대중에게 친근한 문화 영역이자 인식 구성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매체이기도 하다. 영화는 사회 인식을 반영하기도 하고, 역으로 인식을 구성하기도 한다. 영화의 이런 성격을 바탕으로 우리는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 형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1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개최된 한국장애학회 2016년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장애코드로 다시 보는 한국영화'에 대한 발표가 진행되었다. 발표에 나선 류미례 다큐공동체 '푸른영상' 감독은 지난 10년간 장애코드로 한국영화를 분석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계가 사회의 올바른 장애 인식을 심기 위한 방향을 제안했다.
 
더 많은 영화에서 더 올바른 '장애인' 캐릭터 등장해야
 


 

류 감독은 '명량', '부산행', '표적'과 같은 최근흥행작들에 등장한 장애코드를 짚어가며 영화에서 '장애'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는 "TV 드라마나 극영화에서는 잠깐 지나가는 행인조차도 만들어지고 기획되어 배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애코드로 영화읽기는 아주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그곳에, 왜, 장애인이 등장하는가?"라며 말문을 열었다.
 
'명량'에 등장하는 언어 장애인, 정 씨 여인은 물살이 거세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명량 바다에서 평소 비음성적 의사소통에 익숙한 장애 특성 덕분에 이순신 장군의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명량'은 장애 특성을 활용하여 이야기 전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부산행'에서도 신체 장애가 있는 '노숙인' 인물은 그를 대하는 태도 변화를 통해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를 구축할 뿐 아니라, 좀비에게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빨리 뛸 수 없는 특성으로 인해 위기감을 고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류 감독은 특히 영화 '표적'의 뚜렛 증후군이 있는 인물 '성훈'에 대한 태도에 집중했다. 극 중 성훈은 뚜렛증후군으로 인해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성훈이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하고 나서 자신이 납치한 '희주'에게 사과를 하는데, 이때 희주는 "괜찮아요, 당신한테는 재채기 같은 거잖아요. 참지 못한다는 것 알아요"라고 말한다. 류 감독은 "'성훈' 캐릭터는 뚜렛 증후군을 가진 많은 사람이 실제로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였을 뿐 아니라, 여전히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애를 '형벌'로 설정하고 있는 환경에서 장애에 대한 환상이나 혐오를 배제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도가 영화에서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감독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장애코드의 확장을 위해 한국 영화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을 통해 '장애인 캐릭터 상'을 제안했다. 그는 "영화에서 장애인을 등장시킬 때 캐릭터에 현실정합성이 갖춰져 있는지, 인권적 측면에서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지 등을 모니터링해서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늘 지켜보고 있다'는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 것"이라며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영화 제작 현장에 더 많은 장애인이 있어야...제도적 뒷받침도 필요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더 올바른 장애인 캐릭터'가 더 많이 영화에 등장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더 많은 장애인이 영화 제작 과정에 참여할 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장애'가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치 있음을 영화 속에서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 자체가 문화적으로 가치 있음을 믿고 신념으로 확인해야 한다"라며 "이것이 바로 '장애'가 가진 소수성을 창조하고 획득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장애 코드'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최근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등장시키고는 있지만, 이를 실제 장애인 당사자가 연기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 드라마 '글리(Glee)'를 보면 실제 다운증후군이 있는 소녀가 고등학교 치어리더로 등장해 극의 진행을 이끌고 있으며, '씨에스아이(C.S.I.) 시리즈에서도 시즌별로 약 2편가량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며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스스로 창조하는 장애인들의 영화적 창작 활동이 적극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고, 기존 영화 마당에도 장애인 당사자들이 더욱 많이 뛰어들어야 한다"라며, 다양한 장애 특성을 가진 이들이 영화 제작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수정 서울 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부회장은 이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제도를 제안했다. 백 부회장은 BBC 채널4에서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 권리 보장 가이드라인이나 영국 방송창작산업장애인네트워크(Broadcasting and Creative Industries Disability Network, BCIDN)이 제공하는 가이드라인 등을 소개했다. 특히 BCIDN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보면, △장애인을 리포터로 참여시키기 △장애인을 사회자로 참여시키기 △캐스트 멤버로 장애인 참여시키기 △훈련과 직업 기회 창출을 통한 장애인 취업 보장 등이 담겨있다.
 
아울러,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비평이 이어질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백 부회장은 "현재 방송국만 보더라도, 장애인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이나 행동의 수위가 매우 높음에도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감 없는 장애인의 삶을 표현함으로써 비장애인 중심 사회구조가 장애인에게 어떤 불평등한 환경을 만들고 있는지 드러낼 수 있도록,영화를 비롯한 각종 영상매체에 대한 피드백이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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