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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5년 10월 7일 이후의 몸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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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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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말을 가려야한다.

 

1. 어렸을 때 엄마 아빠는 그리고  오빠와 언니들은

내가 좀 모자란 아이라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도 오빠는 나를 모자라다고 하지 않고 특별하다고 말해주었다.

방학 때 집에 다니러온 오빠가 아침녘에 들에 나갔다가

우렁이를 잡아온 적이 있었다.

오빠는 내게 우렁이가 든 그릇을 건네며 저수지에 가서 손질해오라고 했다.

내가 해야할 일은 우렁이를 집에서 꺼내고 씻어서  

된장국에 넣을 수 있도록 손질하는 것이었다.

한마리,두마리 손질하다가 우렁이 집 안에 새끼 우렁이들이 무수히 많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약간 망설이다가 우렁이들을 다 물에 던져넣고 빈 그릇만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내내 논바닥을 훑었을 오빠는 빈 그릇을 들고 온 내가

"우렁이들이 다 새끼를 배고있어서 그냥 살려줬다"고 말하자

어이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금도 가끔 언급되는 이 일은 

오랫동안 '모자란 아이'로서의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오빠가 오빠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의 감성이 특별했다는 근거로 이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며

오빠는 나를 모자란 아이로만 보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약간 놀랍고 좀 기뻤다.

 

가게를 했던 우리 집에는 쥐잡이용 고양이가 머물다 가곤 했는데

나는 고양이들과 친했다.

고양이에게 구술을 굴려주며 같이 놀기도 했고

내가 숙제를 하고 있으면 고양이가 움직이는 연필 끝을 손으로 자꾸 건드려서

내가 연필로 머리를 통,하고 때려준 적도 있었다.

밤이면 쥐를 잡으라고 밖으로 나가야하는데

고양이가 내 품에서 안 떨어지려고 내 옷에 발톱을 박고 몸부림을 쳤다 한다.

나는 그때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한다.

언니는 그런 몇몇 장면들을 말하면서 "너는 마녀"라고 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템플 그랜딘과 캐서린 존슨이 공동집필한『동물과의 대화』에는 

템플 그랜딘의 인상적인  고백이 나온다.

템플 그랜딘은 일명 야스퍼거증후군이라고 하는 고기능 자폐에 속하는 사람인데

동물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콜로라도주립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렸을 때 템플 그랜딘은 고양이와 사람이 왜 다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양이가 달라보이던 순간을 서술한다.

그 부분을 읽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양이와 사람이 다른 존재라는 건 이해하지만

고양이나 개들과 어떤 교감을 주고받는 것같다.

서울에 살 땐 유기견들을 임시보호하고 있다가 입양을 보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상하게도 길에서 개들이 나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런 반복이 피곤해서 피하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는데

어떤 날은 푸른영상 근처에서 만난 어떤 개가 

나를 따라오는 걸 본 건물주 할아버지가 

"그 개가 여러 날 이 근처를 돌아다녔는데

아가씨를 따라가는 걸 보니 아가씨가 책임져야겠다"라고 해서 데려온 적도 있었다.

그 개에게 쫄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무실에서 조연출과 번갈아 개를 돌보면서

'이 개 이야기를 영화에 넣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사람들이 내 말을 믿을 것같지 않아 포기했다. 

 

2.  

한의원에서 선생님한테 "저는 귀신이 무서워요"라고 말을 하니

선생님이 한 템포 쯤 쉬었다가 "귀신은 무서워하지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예요"

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런 식의 대화는 처음이다.

누군가에게 귀신이 무섭다는 말을 망설이지 않고 한 것도 처음이고

실소나 놀라움, 귀신을 믿느냐는 반문 등의 반응을 받지 않은 것도 처음이다.

(남편 빼고). 

 

 9살 겨울방학식 전날,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들을 대접한다고 돼지를 잡았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그 형상을 보았다.

모딜리아니의 여인들처럼 긴 목에 

비누로 만든 조각같은 재질을 가진 어떤 얼굴.

나는 그 형상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울면서 뛰어다녔고

돼지잡는 걸 도우러 온  동네 아저씨들은 내게 돼지 혼이 씌었다고 걱정했다.(^^;;;;;;)

방학식에 참석하지 못한 채 방학을 맞았고 

며칠동안 앓았다. 홍역이었다고 한다.

 

13살 때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를 간 후

러시아 언니와 나만 남아 해남에서 자취를 했었다. 

그 시기 어느 밤, 아니 새벽,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막 울었다.

언니는 그 때 내가 또 이상해지나보다 했다 한다.

나는 계속 울고 잠을 잘 수 없던 언니가 문을 열자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고.

밖으로 나간 언니가 마당에 엎드려있던 장면이 기억난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서울에서 비슷한 일을 한 번 더 겪었다.

그 때에도 나는 새벽에 이상한 불편함과 공포 때문에 소리내어 울었고

어찌어찌해서 또 비슷하게 식구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고

그런 식으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뻔한 식구들이 내 울음 소리 덕분에 위기를 면했다.

 

그 형상은 20대에 한 번 더 나타났다.

그 때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팠었는지 어땠는지 앞뒤 상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자기방어 기제가 있어서 너무 힘든 기억은 뇌가 스스로 삭제한다던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20대엔 그런 기억의 공백기가 있다.

자살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 때였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20대에 한 번 더 보았다.

그 형상은 무엇이길래 그렇게 나를 찾아왔을까.

한의원에서 선생님과 귀신 이야기를 하다

그 하얀 형상을 떠올렸다.

아, 그러니까 나도  귀신을 여러 번 본 거였구나.

 

아버지는 생전에 선행을 많이 베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아버지의 분부로 걸인들을 위한 밥상을 자주 차렸다고 한다.

어느 겨울에는 추위와 병으로 집앞 장터에 걸인이 죽어있어서

아버지가 장례를 치렀다고도 한다.

친척들은 우리집 6남매가 다 잘 된 것이

(엄마는 "6남매 모두를 잘 키우면 내가 신이지" 라며 나를 보곤 하시지만)

아버지의 선행 때문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무엇인지 모른 채

내 삶의 굽이굽이에서 마주쳤던 그 하얀 형상은

나를 지켜주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형상의 모양새에 대한 기억은 희미한데

그 질감에 대한 기억은 여전하다.

이 이야기도 역시 사람들한테는 할 수가 없다.

 

3.

사흘 전 진료실에서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내 손에 단지 손을 가까이 댈 뿐인데 어떤 기운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깜짝 놀랐고 너무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눈을 감았다.

이틀 째가 되어서야 그 현상에 대해서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영화제 집장님이랑 B가 병문안을 왔다.

B는 6년째, 집장님은 20년째 한방치료를 받아왔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한 태도로

자신들이 받고 있는 치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우리 중에서 나만 그렇게 놀라고 흥분되어 있었던 거다.

사실 그런 현상들? 상황들?에 익숙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던 거다.

새로운 세계에 눈 뜬 사람들,

특히나 상식, 이라든가 과학,  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어떤 세계와는

다른 레이어를 인식한 사람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아무한테나 그런 말들을 하진 않는 것같다.

서른 살에 크리스천이 되어서 피정을 가고

신비체험을 하며 놀라워하던 내게

"그런 이야기를 아무 데서나 하면 안돼"라고 당부하던 남편은

내가 이제서야 깨달은 칸막이 대화를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나보다.

사흘 전, 남편에게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니

남편 또한 별로 놀라지 않고 기도법에도 그런 비슷한 게 있다고 말해주었다. 

푸른영상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선배  말에서 어떤 기운이 느껴져요" 하며 장난을 친다.

그러니까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거야.

이 세계는 다양한 레이어로 이루어져있고

비슷한 레이어를 인식하고 있지 않은 사람한테 이야기를 했다가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거지.

 

1번 2번에 대해서도 한 번 얘기를 해볼까?

그런데 그건 표식이나 계기를 쉽게 발견하기가 힘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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