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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아카데미 - 기독인으로서 자본, 어떻게 할 것인가?

 

2001년 5월 봄 종로5가 한우리교회에서 열린 1회 평신도아카데미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기독인연대가 미처 결성되기 전 기독사회시민연대에서 평신도협의회로 활동을 할 때이다. 처음이라 지금같이 많은 수가 모이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진행하였다.

처음 아카데미에서는 평신도의 신앙을 새롭게 하기 위해 현대신학의 흐름, 기독교영성, 종교간의 대화를 내용으로 했다. 5강 때는 진보와 복음주의 기독교 인사들이 나와서 토론회도 하였다. 그때 복음주의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와 별다른 점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발맞추어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5강 토론회에서 기독교방송의 장기간 파업으로 오랜 단식을 하고 있던 권혁률 기자가 토론 원고를 읽다가 다 읽지 못하고 사회자가 대신 읽기도 했다. 은혜스럽게도 다음날 265일의 파업이 종결되었다. 환경단체 참가자는 일회용 컵 사용을 보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 후 10년간 계속되어 오던 평신도아카데미가 어제 향린교회에서 다시 열렸다. 그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기독인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신앙과 사회에 대한 여러 면을 공부해 왔다. 이번에는 오늘날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는 ‘자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였다. 특히 하느님을 신앙하고 있는 기독인으로서 자본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어제 첫날 좀 일찍 도착한 예배당에는 이미 여러 명의 교인들이 자리하고 있고, 모든 준비도 해 놓았다. 시작 시간되어갈수록 참가자들이 줄지어서 들어오고 있다. 일찍 도착한 분들은 준비된 차를 마시면서 인사를 나누고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이제의 아카데미 참가자는 대체로 아는 얼굴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모르는 얼굴이 상당히 많았고, 기대를 가지고 참석을 한듯하다. 몇 명인지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100명은 훨씬 넘게 참석한 것 같다.

첫날이라 기독인으로서 자본에 대한 신학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이라 보는데, 2시간 가까이 경청을 하고,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평신도들이 알아듣기 쉽게 평이하게 말씀을 하셨고, 비기독교인 참가자도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조금만 가졌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 듯하다. 말씀 중에 조목조목 성서의 말씀과 비유의 말씀을 들어 설명하여 성서를 기초로 자본주의에 대해 되짚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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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28절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발아래 두어라. 하늘의 새들과 땅에 사는 짐승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다스려라.” 라는 성서의 말씀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인간 중심적으로 자연을 개발하고 착취하여 오늘의 4대강사업까지 왔다고 본다. 문질문명을 발전시키고, 개인의 부를 축척시키는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고 예수를 잘 믿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 오늘 우리를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통해서 먹여 살리시는데, ‘일용’할 만나만 주셨다. 포도원의 일꾼도 아침부터 일하거나, 점심나절부터 일을 하거나, 늦은 오후에 일을 하거나 일용할 품삯만 있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 때 심판자는 너희가 내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옥에 갇혔을 때 나에게 어떻게 하였느냐? 라고 묻는다. 

중세의 기독교는 정권과 결탁하여 정권을 도와주고 아주 많은 영토를 받고 특권을 누렸으며, 그 와중에서도 예언자들은 이를 꾸짖었다. 한국 사회에도 60년 박정희의 집권 후 개발독재로 산업화와 공업화를 하면서 저곡가 저임금 정책으로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 지게 되었다. 반면 자본과 재벌들은 이때부터 지금의 부를 축척할 수 있 되었고, 부정한 권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한국의 기독교도 이농한 민중들에게 축복을 이야기 하고, 피안의 세계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삶만 생각하게 하는 우민들을 만들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권력과 결탁하여 혜택을 누리면서 불의한 사회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중세나 오늘의 잘못된 사회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미미하였고 많은 탄압을 받았다. 

오늘 신자유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본과 동침하면서 성공신화에 매몰되어 신자유주의의 시스템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예수를 믿으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이를 떨쳐 일어나려는 몸부림을 쳐 볼 것인가? 이는 오늘을 사는 기독인 개인이 선택해야 할 몫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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