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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의 한풀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꽤 바빴다.

그 바쁜 순간에는 블로그에 쏟아내고 싶은 말이,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고작 하루 지나고 나니 시들시들^^;

 

월요일

대본 내용을 주기로 한 사람이 정오무렵에야 주다. 원래는 토요일 저녁때쯤 주기로 약속....

수요일 녹화인데 어쩌란말인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출근해 부랴부랴 대본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영 쉽지가 않다.

집에 돌아와 아이 목욕 시키고 재우고(나도 같이 두시간정도 자고) 다음날 아침에 대본을 대강 마치다.

 

화요일

아침10시부터 촬영....대본 쓰느라 30분 늦추고 나가 점심때까지 찍다.

덕분에 아이는 아침부터 아빠와 함께^^

촬영을 마치고 사무실로 가서 회의를 하고 대본 토론을 하다가 저녁 9시무렵 귀가....

대본이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내일 녹화인데 출연자들이 대본을 미리 받아봐야하는데....

지난번에도 출연자들로부터 원성이 있었던 터....이번엔 절대 늦지 말아야지 했는데.....

 

아이가 안자고 있다. 아빠는 마지막 타임 정리를 위해 나가고 아이를 재우려고 누웠는데

피곤한 엄마와는 달리 아이는 쌩쌩하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방안을 돌아다니며 논다.

한시간이 정말 소중한 순간인데.....이상스레 아이와 있는 순간엔 그런 긴장이 사라져버린다.

빨리 자주기를 기다리면서도 아이가 놀다가 지쳐서 올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어쩌면 나는 그 순간을, 일때문에 들들 속을 볶다가도 아이로 인해 허용된 이완의 시간을 나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쁜 일과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는 소리내어 웃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참 행복한 순간이다.

아이는 잘놀고 있었는데도 그때부터는 옷갈아입을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을라치면 서럽게 울음을 터트려버린다.

그런 아이가 안쓰러워 가끔은 아이를 안고 손만 대강 씻고 젖을 물린다.

아이도 이 순간을 기다렸지만, 나도 그 순간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해진다.

 

수요일

아침 여섯시쯤에야 모든 출연자들에게 대본을 보내고, 나는 좀 더 수정을 한 뒤

10시까지 녹화장으로 갔다. 역시 아이는 아침 일찍 아빠와 함께^^;

눈도 뻑뻑하고 머리도 맑지가 않다. 커피를 들이부으며 택시를 타고 녹화장으로.....

대본의 기초내용을 주었던 교수는 자신이 늦게 준 사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듯 대본이 너무 늦었다며

질책이다.

대본내용에 대해 출연자들과 공유하고나니 녹화시간인 11시를 훌쩍 넘겨 12시에 다가가 있다.

아무소리도 안하고 기다리는 스텝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런데....30여분만에 녹화를 끝낸 지난번과 달리 NG가 많이 난다.

거의 1시무렵에야 끝이 났다.

 

결과물이 영 마음에 안든다.

출연자들도 기분이 그닥 안좋아 보인다.

스탭들에게도 미안하다.

 

아이를 낳고난 후 다시 시작한 일.....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난 일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계속 미안해해야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시간에 쫒기게 해서 미안하고....

잠못자게해서 미안하고....

대본을 늦게 줘서 미안하고....

아이로 인해 배려받아야 하는 상황들이 미안하고....

 

피말리게 했던 녹화였건만 끝나고나서도 개운함은 커녕 자괴감만 잔뜩......

버스를 타고 사무실로 가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 애써 참았다.

사무실 들렀다 집에오니 저녁 여섯시 무렵.....

아이 저녁 먹이고, 씻기고, 함께 누웠다.

지난 2주의 패턴도 비슷했던 터라 아이랑 논 기억보다는 아이를 주로 재우기만 했던 것 같다.

괜히 아이에게 미안하다.

 

목요일 밤새 편집을 하고(집컴퓨터가 말썽이라 새벽에 사무실에 나가 마저 작업을 했다)

아침무렵에 들어와 잠을 깬 아이 옆에서 두시간 정도 정신없이 잤다.

그 사이 아이는 열심히 내 얼굴 위를, 가슴위를, 배위를 넘어다니며 놀았고, 가끔씩 머리칼을 사정없이

잡아당기며, 얼굴을 퍽퍽 때리며 깨우기를 시도했다.

 

감자를 삶아 아이의 아침을 아빠에게 맡기고

(바쁜 동안 아이가 홀쭉해졌다. 이유식이 영 시원찮았다)

사무실로 다시 나가 마저 일을 마치고 또 종편시간보다 삼십분 늦게 갔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난 점심 대신 삼각김밥을 들고서....

 

그리고

두시간여만에 끝이났다.

정말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시간이 끝이 났다.

하지만 녹화를 마쳤을 때처럼 개운함이 없다.

예전엔 작업 마치고 나면 성과가 내맘에 쏙 들지 않아도 후련함, 속시원함 이런게 있었는데 요즘은

난 왜 매일 이런식으로 작업을 해야하나, 왜 이렇게밖에 못하나 하는 비참함이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끼치지 말고 일을 그만두자,

나도 그만두고 싶은게 아닐까?

그만두고 놀다보면 다시 일을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 때 다시 일을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또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참 여러번 했다.

아이 낳고서 2개월만에 다시 시작한 일,

내 조건이 옛날같지도 않고, 여러가지 제약도 있는 상황에서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세상 엄마들이 다 그렇겠지, 나는 그나마 조건이 좋은거야 하며 나를 다독이기도 여러번.....

정말로 잘 모르겠다. 어떤 것이 정말 내가 행복한 결정이지....

 

암튼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저녁무렵.....

아이와 오랜만에 저녁시간을 함께 한다.

집이 엉망이다. 부엌에는 태수가 싱크대에서 빼놓은 살림들이 널부러져 있고

거실에는 책장에서 빼놓은 책들과 장난감이 그득....발 디딜틈이 별로 없다.

싱크대에는 그 사이 밀린 설거지가 한가득.....

당장 다 치우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하여 그냥 아이 재우다 함께 잠이 들었다.

 

한풀이를 하듯 그동안의 일을 썼지만,

쓰고보니 뭐 그리 대단해보이지도, 어려워보이지도 않는다.

아이키우며 일하는 엄마들이 얼마나 더 힘든 상황에, 어려운 상황에 놓일지.....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건,

쉬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잠시 일을 하지 않고 좀 놀아봤으면 하는거....

그러면 고갈되었던 상상력도, 마음의 여유도, 감수성도 좀 돌아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아이 낳고 난후 누구나 한번쯤 갖게되는, 이러다 그냥 지나가는 그런 생각일까?

 

휴우~~끝났다. 하루지나니 어제의 감정이 어제같지 않다. ㅋㅋ

하지만 풀리지 않는 나의 의문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일은 아이를 데리고 산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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