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요번 주 수업

요번 주 월화수는 지난 주 감회를 올렸던 '오늘 수업'과 다른 현장이었습니다.

 

***

여긴 아주 아주 작은 학교였던 지난 주 '오늘 수업'의 학교 보다는 쫌 크다.

이 학교에서는 무슨무슨 교육철학을 보고따라할 교과서로 잡고 있어서 (주먹구구 마구잡이 기분내키는대로 소지가 다분히 있는 방식의) 내 맘대로 수업은 안된다. 생전 처음으로 알게된 그 무슨무슨 교육철학을 덕분에 초스피드로 배우고 있는 중인데, 역시 몇백년 묵은 철학은 몇백년을 살아남은 이유가 있기 마련인지, 이 철학을 배우는 재미가 제법 괜찮다.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인생이 이러하지 않겠는가,(그래서 교육은 이러면 좋지않겠는가)를 만나며 곳곳에서 무릎을 탁 친다. 그리하여 다행히, 내가 속한 조직과 아직은 어떠한 트러블도 맞지않은 채 한 달 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국민학생을 붙잡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무지하게 싫어하였다.

(사실 국민학생이든 누구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다 싫다. 외국어 배우는 일은 좋다. 매력적이다. 그런데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정말 다르다. 당연한 소리지만. 매력적인 일을 하고나서는 고작 이렇게 짜증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에 가끔 환멸을 느끼곤 했지만, 실상 덕분에 거미줄 칠 뻔한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도 하였으니 할 말 없다. 그리고 이것 아니라면 그 매력적인 일을 어디 써먹을 데도 없다. 내가 그렇게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이 통하고 사기가 통하는 건 이 짓 밖에. 아, 이 심심한 현실. 불어처럼 도태되고 말 것이다. 나의 생활에서 불어는 사어(死語). 이렇게 아까울 데가... 어쨌든 나는 환멸을 느끼는 이 일을 조만간 그만두리라, 조만간 그만두리라, 결심하면서 이날까지 오고 말았다. '진중하게' 일을 맞는 기회에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 결국... 암튼)

처음에 이 학교에 지원한 것도 영어선생 자리가 아닌, 담임선생 자리였다.

여차저차해서 난 그냥 영어선생질 할 수 밖에.

그런데 초스피드로 학습해오던 그 교육철학이, 오, 심오하게도 외국어를 가르치는 일에서 또한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며 느꼈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몇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확, 호기심이 불 붙는 걸 느꼈다.

실제로 이렇게 매력적일 주 있을지 직접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갑자기 이 일에 열심하게 되었다.

영어선생 노릇하면서 어깨넘어 담임선생 자리를 넘보려던 생각이 휙 바뀌고.

나는 수십가지의 교육자료들을 사고, 복사하고, 제본하고, 찾아내어, 모든 다른 책들을 보류하고 읽기 시작했고, 읽은 걸 다시 보고 고민하고 생각했다. (참 열심이네. 이런 선생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tolerance of ambiguity, 모호함에 대한 인내

머리가 굵어지면서 오히려 언어감각은 무뎌진다.

언어는 곧바로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이고, 따라서 뜻을 모르는 단어와 알 수 없는 문법의 외국어는 피곤하다. 그러나 모국어를 익히기 전에 언어는 그냥 소리였다. 뜻을 모르는 단어와 알 수 없는 문법들. 그것을 그냥 받아들임. 관대하게. 긴장하거나 불안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으며. 그러면서 언어를 습득한다. 나로서는 (당연히) 기억하기도 전에 잃어버린 능력이다. 나는 언어 앞에서 뻣뻣하다. 긴장한다. 단어의 뜻을 생각하고 문법을 여기저기 끼워맞춘다. 외국어가 아니라 사실 모국어 앞에서도 뻣뻣하다.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해보다 오해가 많다는 경험 때문에도 그렇고,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잘 듣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도 그렇고, 나이를 먹어가며 나의 언어감각은 기름을 쳐도 유연해지지않는 고철고물이 되어간다. 물처럼 유연했을 나의 언어감각, 볼 수는 없는 것이지만, 어쩐지 아름다웠을 것 같다.

 

콤플렉스처럼 규민 앞에서는 절대로 영어 운운 하지 않겠다는 촌스런 방침도 걷었다. 내가 규민에게 처음으로 들려준 영어는 짧은 동시. 노래로도 부르면서 규민이 학교에 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흥얼흥얼, 몇번 했더니 규민은, 거짓말처럼 그 동시를 스르륵 외웠다.

 

아, 정말 맞다, 언어는 아름다운 것, 심오한 것, 본능처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