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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3월1일, 입학식.

엄마아빠 다 오시라, 이날 입학식을 한다고 함.

시간 외 근무는 절대사절이고 싶은데...

전날부터 무대(!)세팅이며, 식순 정하고 쓰고, 사회자 뽑고 예행연습을 한다만다, 거의 결혼식 수준. 그러나 실상은, 각 교실에 떠도는 커텐자락 같은 천쪼가리 모아 바닥에 깔고, 꽃잎 뿌려놓고, 촛불 켜놓고, 색상지 오려 환영합니다 글자 만들고, 조잡유치한 학급 학예회 수준.

 

 

신입생 한명 한명 엄마나 아빠, 혹은 둘이 손을 잡고 등장.

아이에게는 화관이 씌워져있다. (겨울이라 꽃 한다발을 사서 만들었지만, 작년 9월 편입식에서는 주위에서 칡넝쿨 캐고 꽃 꺾어 만들었다. 이거 만들기가 손품도 만만치 않고, 바뻐죽겠는데 앉아서 이짓거리나 하고 있냐 싶어서 이번부터는 반드시 화관을 회수하기로 하였다.)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이름표를 달아주고, 촛불을 켜서 쥐어준다.

한명한명 그렇게 입장한 후, 한명한명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꽃씨와 화분) 무언가 덕담을 한 마디 한다.

다음에는 담임이 선물을 주고 덕담을 한다.

 

사람들도 버글버글(신입생 가족들과 재학생 가족들)하고, 비좁은 강당과 초라한 학교 시설이라는, 전체적으로 후진 배경에서, 부모와 선생의 선물과 덕담, 아이의 긴장된 행복한 표정이, 그런데 극적이고 놀라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엄마나 아빠의 덕담은 상투적이고도 상투적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푸른 나무가 되길 바란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거라."식의.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에 배어있는 진심, 정말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나왔을 그 진심이 가슴을 울리고 뭉클하게 하였다.

곳곳에서 눈이 벌게졌다.

그리고 또 1학년 담임의 선물.

 

1학년 선생님은, '이제 이곳에 발을 잘 디디라'는 의미로 버선을 준비했다. (수공예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서 모양도 앙징맞고 예뻤다.)

아이 하나하나 선생님은 그 버선을 신겨주었다.

아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이 신발을 벗겨 버선을 신기면서 그 아이 발을 만지게 된다.

이상한 모습이었다.

저런 선생님이 있던가.

선생님의 그런 모습 자체가 보고있자니 기기묘묘하게 극적이었다.

 

 

아이들은, 기기묘묘하게 감동을 준다.

어른도 생각하지 못 했던 배려, 웃음, 시선.....

 

개학 후 며칠,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몸살이 났다.

아이들과 만난다는 것은 더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덜컥 부담이 되었나보다.

직장에서는 적절하게 웃고 적절하게 말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적절하게 관심과 무관심을 섞고 적절하게 처신해야하는 사회의 법칙이 이 곳 직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또 이곳에서도, 어른 대 어른의 공간; 교사 대 교사의 공간, 부모 대 교사의 공간에서는 위의 사회의 법칙이 다시 칼날처럼 엄숙하게 등장한다. 어른이란 정말이지 비굴한 존재다.

 

나는 직장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집에 돌아와서도 규민을 만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곤란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

규민을 보면, 나는 다시 새직장에 출근이다.

아침에 아이가 깨기도 전에 엄마 먼저 일을 나가야 하고, 삼일절에도 나가야하고, 일주일에 몇번은 늦어야하는 엄마가 너무나 미안하다.미안할 수록 나의 곤란한 세계는 혹독하다.

 

참, (입학식에 쓰인 화관은 아이들이 절대로 벗지 않겠다고 하여 처음의도와는 다르게 도저히 회수 불가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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