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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직감

이십대, 대학물을 먹고 책 좀 읽은 후부터, 나의 생각과 말에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가 대충이라도 구색을 갖고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확인해야한다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었다.

 

누군가 한 번 해준 말이거나, 신문에서나 어디에서나 한 번 흘깃이라도 본 것이거나, 무슨무슨 수치 자료가 덧붙어 있어야 그것은 비로소 생각과 말이 되는 것이었지, 내 직감/직관은 절대 어디 갖다댈 것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상물을 나름대로 더 먹고는, 내가 가진, 나름대로 적나라한 사회학적 인류학적 고찰이 단지 누군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해주었고, 신문에서나 어디에서나 흘깃 흘려써있지도 않았고, 무슨무슨 수치로서 증명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학적 인류학적 가치 제로이며, 개인의 소소한 잡념일 따름이라고 치부되기 쉽상인 순간 앞에서, 나는 멈칫했다.

 

 

그 후에, 개인의 소소한 잡념이 진실이 되는 소설도 있었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훼미니즘이 있어서, 나는 촌스럽고 각박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의 협박에서 비켜 사는 유연함을 배워갔지만,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나의 직감과 직관을 인정하지 못 하는 병은 여전하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책이나 소설 디게 많이 읽은 것 같다. 탱자탱자 놀면서 가끔 읽은 것도 내 인생에서는 읽은 것이니 그냥 그렇게 쓴 것임.)

 

그랬던 내가 그 병을 싹 고친 것은, 이 블로그에도 올렸지만, 최장집 교수 덕분이었다.

(나의 직감과 직관을 불신하는 병을 고친 것도, 결국 누군가 유명한 사람의 코멘트를 근거로 하였으니 나도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그 때 내가 무릎을 쳤던 내용은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것이 었는데, 최장집 교수라하면 누군가, 북한인권문제라 하면 무엇인가, 그야말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에 살고 죽는 세계 속의 인물과 주제 아니겠는가.

 

 

그 때 그 내용을 다시 찾아보라고 하면 실례일 것이고(이게 무슨 옛날 페이지 들춰가며 봐야하는 토지도 아니고),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가자면, 그날 최장집 교수의 발표 제목은 <한반도 평화의 조건-칸트의 '영구평화론'의 퍼스펙티브에서>였는데, 제목 봐라, 제목에서부터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에 살고 죽는 세계가 징하게 느껴진다.

 

논문 내용은 아주 잠깐잠깐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기도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전혀 기억 안난다. 암튼 알수없는 조건과 퍼스펙티브의 논문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논문 내용 안에 있던 '북한/북한핵'이란 표현에 대한 시비가 일었다. 최장집 교수의 명확한 대답은 국민학생도 이해할 만한 것이었는데, 말꼬리를 잡는 사람들은 또라이들인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듯 피폐한 논쟁을 계속 이어간다. (아, 정말 안기부 사람들한테서 고문받는 사람들 얼마나 괴로웠을까... 또라이의 말꼬리 언쟁은 잠깐 들어도 진저리가 나는데..) 그러고나서 '북한인권문제' 질문이 있었다.

 

최장집 교수의 대답은 이랬다.

정치는 매우 다이나믹한 것이다. 인권문제의 개입은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반드시 정치의 일면으로서 위험한 것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명쾌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지 못했다.

북한/북한핵 말꼬리를 논리와 사실과 수치의 이름으로 지지부진 끌어가던 또라이들 위에 빛나던 그 명쾌한 직관이란!!!!

 

 

 

사람의 오래묵은 판단력으로부터 나오는 직관과 직감의 세계, 나는 그제서야 그 세계를 제대로 보게된 것이다.

그것이 맞다.

사람의 오래묵은 판단력,지혜, 거기에서 나오는 직관과 직감에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라니.. (그리고나서 미안하다, 우리 엄마, 엄마 말이 옳아요. 잘난 척한 딸이 죄인.. )

 

 

'오래묵은'이란 표현을 썼다고, 노인네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섯살 먹은 아이의 직관과 직감도 다섯해나 묵은, 오래묵은 판단력, 직관, 직감이다.

 

그것이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듣는 이의 오래묵은 판단력에서 나오는 직관과 직감이다.

 

 

사람들이 한 입으로 공권력 타도를 외칠 줄 알았던 나는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보상금 문제라는 얘기부터, 행정법상 행정권 행사가 당연했다는 소리, 시민단체가 반미선동했다는 얘기 벼라별 소리가 다 있다.

이것이야말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배경이 독이 되는 경우 자체다.

그렇다고 군대 보낸다는 게 말이 된다는 말인지......

 

그런 말을 떠드는 자, 그곳에 직접 가서 얼마나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를 찾았는지 묻고싶다. 평택의 ㅍ에도 가지 않은 자들일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윤 데스크가 전화 한 통 통화한 것처럼.

 

 

한명숙 총리, 옛날부터 왠지 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왕재수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적극적 폭력행위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라니... 이 사람, 박근혜야?

사람들이 절대자처럼 할렐루야 추종할 때 무언가 구리다고 느꼈던 내 직감이 맞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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