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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 성찰일지

행동주의 심리학의 유용성을 믿는 사람들은 천 명, 만 명의 아이들이 있더라도 특정한 자극과 반응 그리고 강화라는 조건 속에 아이들을 ‘투입’함으로써 교수자가 의도하는 바대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것 같다. 관찰가능하고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만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행동주의 연구에서 개인의 내재적 동기나 주관적 감정 들은 말 그대로 블랙박스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이론을 비판만 하기에는 실제 교육현장에서 갖는 이론의 유용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극들에 대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다는 점에서 긍정할 수 있다면, 보통 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10세 전후의 아이들은 참으로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교사인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수업에 듣지 않을 때 그 아이들을 사로잡는 것은 별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츄파춥스 사탕 한 개일 때가 많다. 아이들의 반응에 따라 강화의 종류를 달리하는 토큰 기법의 효용성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문제는 교사가 특정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특정한 반응양식들을 토큰기법과 같은 행동주의적 접근을 통해 이끌어내고자 할 때, 정작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기대되는 반응의 중요성이나 내재적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외재적 강화물에만 정신을 팔아버릴 때이다. 세부적인 스텝마다 강화를 제공하여 애초에 목표했던 최종적 학습목표에는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특정 행동양식을 학습하고 표출하는 것의 중요성이나 의의를 모른다면 맥 빠진 수업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적절한 내재적 동기를 불러일으키면서 실제 기대한 반응이 도출되었을 때 적절한 강화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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