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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군대 왜 가니?> 토론회 후기

돼지독감(신종플루)으로 순식간에 선생과 학생 모두 큰 공포에 휩쌓여버린 학교를 마치고 <너 군대 왜 가니?>토론회로 발을 뗐다. 연휴 전에 생긴 공짜 휴가기간 동안에 원래 헤치워야 했던 일들을 하루에 몰아서 끝내느라 하루종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을 했다. 그래도 끝내버리니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부장선생님은 재택근무할 것을 좀 챙겨서 가라고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시는데 나도 뭐 겉으로는 웃으며 '네네 그래야죠' 답하며 안심을 시킨다.푸핫

 

토론회 장소를 찾느라 연대 안으로 들어간 뒤에 좀 헤멨다. 밤바람을 맞으며 캠퍼스를 걷는 기분이 꽤나 괜찮았다.

 

패널들의 발제, 이후 질의응답을 지켜보며 든 가장 큰 느낌은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몇 년전(예컨대 2003년,04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나의 질문들.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은 왜 이렇게 잘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럼 내가 기대했던 내용, 내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뭐였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가지를 친다.

 

뭐랄까 병역거부 논의에 있어 일종의 FAQ들. 국방의 의무가 곧 군복무는 아니다,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의는 개인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다 등등. 이젠 더 이상 이런 얘기들을 방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게 병역거부운동 10년의 성과라면 성과랄까. 대체복무의 의의, 실현가능성 등등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변화일지 모르겠다.

 

요 며칠 또 <평화는 나의여행>을 읽다보니 전쟁의 참상에 대한 자각이 다시금 일어오지만, 그리고 이런 평화적 감수성이 병역거부 담론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 토론회에서 특히나 이제 곧 수감을 앞두고 있는 CO들의 입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위와 같은 FAQ 이상의 이야기들이었다.

 

아직도 한국 맥락에선 병역거부자가 되는 순간 놓여지게 되는 논의의 세팅들이 있는 것 같다. 기성품처럼 존재하는 이 프레임은 예컨대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논의, 국방력을 둘러싼 논쟁, 국제관계/전쟁에 관한 이야기 등을 포함한다. 이 프레임에 놓이는 순간 병역거부자는 자기 자신의 몸, 삶의 지향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든다. 예를 들어 수감을 앞두고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은 공론화되지 않는 것이다. 틀에 박힌 병역거부 FAQ들이 여전히 거의 유일하게 유의미한  담론으로 남아있는 것도 기존의 논의 프레임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이유때문이겠지. 동시에 한편으론 이 FAQ들이 여전히 병역거부 운동 그룹이외에선 다루어지지 않고 있거나 혹은 그나마 병역거부자 지위를 획득해야 발언권을 인정받기 때문에 정작 다른 방식 다른 내용의 말하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이 죽고 노무현을 재평가하는 사회적 붐이 일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사람들은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들을 재조명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노무현의 인간적 측면에 오히려 더 주목을 했다. 노무현이 받는 것과 같은 그런 조명을 병역거부자들은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병역거부자들은 자기 소견서를 제외하고는 자기 자신의 '인간적' 측면을 말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어도 표현할수 있는 언어가 없기도 하고, 뭇 사람들은 그에 관심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병역거부와 관련한 많은 얘기들이 나오다가도 결국 법정에선 개인의 양심의 자유보다 우월한 국방의 의무로 논의가 정리되어버린다. 

 

<폭력의 예감>으로 썼던 에 적기도 했지만, 그래서 병역거부와 관련한 요즘 내 고민은 저항의 새로운 언어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프레임에 대한 갈망이랄까. 그런 점에서, 꽤나 도발적이었던 '너 왜 군대가니?'라는 질문이 새로운 저항의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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